만약에 (what-if)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제약이나 전제 하나를 일부러 풀거나 거꾸로 뒤집어 보고, 그렇게 열린 가능성의 공간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발상법. 이미 벌어진 일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닫혀 있는 미래의 선택지를 펼치는 데 쓰인다는 점이 핵심이다.
너, 어릴 때 이불 속에서 이런 걸 혼자 굴려 본 적 있을 거다. 만약에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만약에 내일 학교가 사라진다면. 만약에 돈이 무한정 있다면. 어른들은 그걸 쓸데없는 공상이라 불렀지. 그런데 가만 보면 이상하다. 너는 그 순간, 세상이 지금 이 모양인 이유 한 가지를 손으로 슬쩍 치워 보고 있었던 거다. 중력이라는 못, 학교라는 못, 돈이라는 못. 그 못 하나를 뽑으면 풍경이 통째로 달라진다. 오늘 이야기는, 그 쓸데없어 보이던 공상을 평생의 무기로 벼린 한 남자에 관한 거다. 그는 그걸 하다가 감옥에 갔고, 감옥 안에서 그걸 더 날카롭게 갈았다.
먼저 한 가지 오해부터 떼어 내자. '만약에'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뒤를 보는 거다. 그때 내가 그 버스를 탔더라면, 하고 이미 끝난 일을 곱씹는 후회. 그건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다른 종류의 사고고, 우리가 오늘 다룰 건 그게 아니다. 우리 것은 앞을 본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향해, 지금 모두가 못으로 박아 둔 전제 하나를 뽑아 던지고 '그럼 어떻게 되지?' 하고 묻는 쪽이다. 후회의 만약에는 세계를 좁히지만, 발상의 만약에는 세계를 넓힌다. 같은 말인데 방향이 정반대다.
이 앞을 보는 만약에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옛 소련에 있었다. 겐리흐 알트슐러. 그는 두 얼굴을 가졌다. 한쪽 얼굴은 공상과학 소설가였다. 외계와 미래를 상상해 글로 파는 사람. '만약에 이런 기술이 있다면'을 밥벌이로 굴리던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다른 한쪽 얼굴은 해군의 특허 심사관이었다. 1946년부터 그는 발명 신청서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부서에 앉아, 남들이 낸 아이디어를 하루 종일 들여다봤다. 바로 이 자리에서 그의 두 얼굴이 포개진다. 수천 건의 발명을 읽다가 그는 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진짜 뛰어난 발명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의 매듭이 들어 있더라는 거다.
그 매듭이 뭐였는지, 끝까지 따라가 볼 만하다. 비행기 날개를 떠올려 봐라. 튼튼하려면 두꺼워야 한다. 그런데 빨리 날려면 얇아야 한다. 두껍게 하면 느려지고, 얇게 하면 부러진다. 이쪽을 좋게 하면 저쪽이 나빠지는 이 답답한 줄다리기, 알트슐러는 이걸 기술적 모순이라 불렀다. 보통 기술자는 여기서 타협한다. 적당히 두껍게, 적당히 빠르게. 절반씩 손해 보고 악수하는 거다. 그런데 알트슐러가 읽은 위대한 발명들은 타협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묻고 있었다. 만약에 둘 다 가질 수 있다면? 만약에 두껍게도 얇게도 하지 않고, 날개가 상황에 따라 모양을 바꾼다면? 모순을 견디는 게 아니라 모순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 이게 평범한 개량과 진짜 발명을 가르는 칼날이었다. 그는 이 깨달음을 1948년 한 통의 편지에 담아 보냈다. 수신인은 '스탈린 동지께 직접'. 편지의 골자는 당돌했다. 누구든 발명하게 만들 수 있는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 대가는 혹독했다. 이듬해 그는 체포돼 25년 형을 선고받고 북극권의 노동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무섭게 비틀린다. 그는 그 얼어붙은 수용소에서, 죄수와 학자들을 붙들고 자기 이론을 더 깎아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못이 박힌 곳에서, 못 뽑는 법을 연마한 셈이다.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그는 풀려났다.
풀려난 그는 이 사고법을 평생에 걸쳐 다듬어, 마침내 손에 잡히는 연장으로 만들었다. 모순을 푸는 마흔 가지 발명 원리, 그리고 어떤 모순에 어떤 원리를 들이대면 좋은지 한눈에 찾는 모순 행렬표. 막연한 '만약에'를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절차로 바꿔 놓은 거다. 1971년에는 발명 창의력을 가르치는 공공 학교까지 세웠다. 사람들은 이 체계를 그 러시아어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 트리즈라 불렀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드 보노라는 사람이 결이 같은 도구를 다른 손잡이로 깎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말이 안 되는 문장을 징검돌처럼 던지라고 했다. 공장이 강 하류에 있다면 자기가 버린 오염수를 자기가 먼저 마시게 된다, 같은 일부러 비튼 가정 말이다. 그는 이런 도발에 '포(po)'라는 새 낱말까지 붙였다. 둘 다 한 가지를 노렸다. 머리를 가둔 전제를 일부러 위반해서, 평소라면 닿지 못할 생각의 빈터로 건너가는 것.
이 사고가 컴퓨터로 넘어간 대목이 흥미롭다. 알트슐러의 모순 행렬은 본디 종이 위의 표였는데, 이게 소프트웨어로 옮겨지면서 전혀 다른 규모가 됐다. 오늘날 어떤 발명 지원 프로그램은 전 세계 수백만 건의 특허를 통째로 삼킨 뒤, 네가 풀고 싶은 모순을 입력하면 인류가 그 매듭을 과거에 어떻게 풀어 왔는지 비슷한 사례를 즉시 끌어다 준다. 사람 하나가 평생 읽을 수 있는 발명의 양을 아득히 넘어선 거다. 여기서 네가 눈여겨봐야 할 게 있다. 기계에게 '만약에'를 시키려면 생각의 윗단추부터 갈아 끼워야 했다. 사람의 발상은 보통 '지금 이게 정상이다'라는 바탕 위에서 조심스레 한 발씩 나간다. 그런데 기계더러 가능성을 펼치게 하려면, '정상'이라는 기준선을 아예 지워야 했다. 멀쩡한 전제를 일부러 위반한 수만 가지 엉뚱한 조합을 겁 없이 쏟아 낸 다음, 그중 말이 되는 것만 사람이 골라내는 방식. 인간이 부끄러워서 입 밖에 못 내던 '만약에'를, 기계는 수치심도 상식도 없이 무한히 내질러 준다. 발상의 윗단추를 '신중함'에서 '무자비한 일탈'로 바꿔 끼우고 나서야, 기계는 비로소 사람보다 더 멀리 공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너가 벽에 부딪혔을 때 — 이쪽을 살리면 저쪽이 죽는 줄다리기 앞에 섰을 때 — 절반씩 손해 보는 타협으로 서둘러 악수하지 마라. 먼저 물어라. 모두가 당연하게 못으로 박아 둔 전제가 무엇인가. 예산은 정해져 있다, 이건 원래 이래야 한다, 이 둘은 동시에 가질 수 없다. 그 못 하나를 골라 손으로 뽑아 던지고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봐라. 만약에 이 제약이 없다면. 만약에 이 둘을 다 가질 수 있다면. 한 공상과학 작가가 수용소의 추위 속에서도 끝내 놓지 않은 건, 바로 그 한 줄짜리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