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MPER
이미 있는 물건이나 아이디어를 백지에서 새로 짜내려 애쓰는 대신, 일곱 가지 정해진 질문을 차례로 들이밀어 변주해 내는 발상법. 대체하면, 결합하면, 응용하면, 변형하면, 다른 데 쓰면, 덜어내면, 거꾸로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를 묻는 그 일곱 갈래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며, 창의를 영감의 운이 아니라 누구나 돌릴 수 있는 점검표로 바꿔 놓은 것이 핵심이다.
너, 빈 종이를 앞에 놓고 '뭔가 새로운 걸 생각해 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거다. 그 순간 머릿속이 어떻게 되던가. 하얘진다. 새것을 무에서 길어 올리라는 요구만큼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게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너한테 빈 종이 대신 낡은 우산 하나를 쥐여 주고 '이걸 더 낫게 고쳐 봐'라고 하면, 갑자기 입이 열린다. 손잡이를 바꿀까, 천을 다른 걸로 댈까, 접는 걸 아예 없애 버릴까. 똑같은 머리인데 왜 하나는 막히고 하나는 술술 풀릴까.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차이를 알아채고, 막히는 쪽을 술술 풀리는 쪽으로 바꿔 버리는 손잡이 일곱 개를 만든 사람들에 관한 거다.
이야기의 뿌리는 광고판에서 시작된다. 알렉스 오즈번이라는 광고쟁이가 있었다. 브레인스토밍을 세상에 퍼뜨린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회의에서 사람들에게 '자, 창의적으로 생각해 봅시다'라고만 하면 다들 멍해진다는 걸 진작에 알았다. 그래서 1950년대 초, 자기 책에 묘한 물건을 하나 끼워 넣었다. 머리가 막힐 때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의 목록이었다. 이걸 다르게 바꿔 쓸 순 없나, 이걸 저것과 합칠 순 없나, 크게 키우거나 작게 줄이면, 거꾸로 돌리면. 그는 이 물음 꾸러미를 아이디어를 쿡쿡 찔러 깨우는 점검표라 불렀다. 발상이란 영감의 번개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질문을 자기한테 차례로 들이미는 노동일 수 있다는 발상. 그게 씨앗이었다.
그런데 이 씨앗을 받아 우리가 지금 쓰는 모양으로 다듬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광고쟁이가 아니라, 뜻밖에도 교육 행정가였다. 밥 에버를리라는 사람인데, 그는 광고 카피가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깨울까를 붙들고 있었다. 오즈번의 길고 두서없는 질문 목록을 아이들 앞에 그대로 펼칠 수는 없었다. 너무 어수선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흩어진 질문들을 추려 일곱 개의 동작으로 묶고, 그 머리글자를 따 한 단어로 외우기 쉽게 만들었다. 대체하라, 결합하라, 응용하라, 변형하라, 다른 데 써라, 덜어내라, 뒤집어라. 영어 머리글자를 이으니 마침 '날쌔게 내달리다'라는 뜻의 한 단어가 됐다. 스캠퍼. 그는 1971년 'SCAMPER: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라는 책에 이 이름을 박아 세상에 내놓았다. 어른의 회의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깔깔대며 돌리는 상상 놀이로 태어난 셈이다.
자, 이름값을 하는지 끝까지 한번 돌려 보자. 아까 그 낡은 우산을 책상에 올려 두고, 일곱 손잡이를 차례로 당겨 보는 거다. 대체부터. 천 대신 투명한 막을 쓰면? 하늘이 보이는 우산이 된다. 결합. 우산에 손전등을 붙이면? 밤길용 우산. 응용. 텐트의 뼈대 펴는 방식을 우산 살에 가져오면? 더 튼튼하게 펴진다. 변형. 덮는 면적을 크게 키우면 둘이 같이 쓰는 우산, 작게 줄이면 가방에 들어가는 우산. 다른 데 쓰기. 우산을 비 막는 물건이 아니라 햇빛 가리는 양산으로, 혹은 거꾸로 들어 빗물 받는 통으로. 덜어내기. 손잡이를 없애고 어깨에 메는 우산. 그리고 마지막, 뒤집기. 여기서 진짜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보통 우산은 젖은 바깥면이 안으로 접히면서 옷과 차 안을 적신다. 그 접히는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 젖은 면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게 하면? 물이 흐르지 않는 우산이 된다. 실제로 이런 거꾸로 접히는 우산은 시중에 나와 있다. 봐라, 빈 종이 앞에서는 한 줄도 못 쓰던 머리가, 일곱 개의 질문을 차례로 받자 우산 일곱 종을 쏟아냈다. 달라진 건 너의 재능이 아니다. 막연한 '창조하라'를 구체적인 '이 동작을 적용하라'로 쪼개 준 그 점검표 하나다.
여기서 이 도구의 묘한 긴장을 짚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점검표를 깔본다. 진짜 창의는 규칙을 깨는 데서 나오는데, 정해진 일곱 칸을 채우는 게 무슨 창의냐고. 일리 있는 멸시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백지의 공포 앞에서 얼어붙는 사람에게 규칙이 없는 자유란 아무것도 못 만드는 마비와 같다. 스캠퍼의 진짜 노림수는 너를 가두는 게 아니라, 평소 네 머리가 절대 안 가 보는 방향으로 억지로 떠미는 데 있다. 사람은 가만두면 늘 '더하기'만 한다. 기능을 보태고 부품을 붙인다. '덜어내라'나 '거꾸로 뒤집어라' 같은 칸은, 그냥 두면 영영 안 들렀을 방이다. 점검표는 상상의 감옥이 아니라, 안 가 본 방마다 불을 켜고 돌아보게 만드는 손전등인 셈이다.
이 오래된 점검표는 컴퓨터 앞에서 또 한 번 쓸모를 얻었다. 요즘은 새 제품 아이디어를 기계에게 시킬 때, '창의적인 걸 내놔'라고 막연히 시키면 기계도 뻔한 평균만 토해 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캠퍼의 일곱 동작을 하나씩 명령으로 쪼개 기계에 들이민다. 이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나, 무엇과 결합할 수 있나, 하고 한 칸씩 따로 묻는 거다. 흥미로운 건, 이게 잘 먹히려면 생각의 윗단추를 한 번 고쳐 끼워야 했다는 점이다. 창의를 '한 방의 영감'으로 보는 한, 기계든 사람이든 시킬 방법이 없다. 창의를 '정해진 변형 조작을 빠짐없이 한 바퀴 돌리는 절차'로 다시 정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일을 쪼개 기계에 맡길 수 있게 됐다. 한 교육 행정가가 아이들 놀이로 만든 점검표가, 창의를 신비에서 절차로 끌어내린 그 한 발짝 덕에 기계의 일거리로까지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너가 다시 빈 종이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을 만나거든, 무에서 새것을 짜내려 애쓰지 마라. 그건 가장 어려운 길이다. 대신 고칠 대상 하나를 책상에 올려놓고, 일곱 개의 질문을 차례로 들이밀어라. 바꿔 보면, 합쳐 보면, 응용해 보면, 키우거나 줄이면, 딴 데 쓰면, 덜어내면, 거꾸로 뒤집으면. 특히 평소 네가 절대 안 하는 '덜어내기'와 '뒤집기' 칸 앞에서는 일부러 더 오래 머물러라. 창의는 빈 종이가 아니라, 이미 있는 것에 정해진 질문을 끈질기게 들이대는 데서 태어난다. 그게 한 광고쟁이가 적어 두고 한 선생이 일곱 글자로 묶어 준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