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창의·확산

이연연상 (remote association)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평소엔 한자리에 놓일 일이 없는 두 영역의 요소를, 일부러 끌어다 한데 이어 붙여 그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을 길어 올리는 사고법. 가까이 있는 뻔한 연상은 누구나 하지만, 멀수록 진부함에서 멀어진다는 역설을 밑천 삼아, 멀리 떨어진 것일수록 더 새로운 발상이 나온다고 본다.

너, 머릿속에 단어 세 개를 한꺼번에 던져 줄 테니 잠깐 멈춰 봐라. 코티지(cottage), 스위스(swiss), 케이크(cake). 이 셋과 동시에 어울려서, 셋 모두의 짝이 되어 줄 단어 하나가 딱 있다. 코티지 뒤에 붙고, 스위스 뒤에 붙고, 케이크 앞에 붙는 그 한 단어. 머리가 처음엔 코티지에서 시골집을 떠올리고 스위스에서 알프스를 떠올리며 제각각 헤매다가, 어느 순간 세 갈래가 한 점에서 만난다. 치즈(cheese)다. 코티지 치즈, 스위스 치즈, 치즈케이크. 찾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탁 하고 맞물리는 그 느낌, 그게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멀찍이 흩어져 아무 상관 없어 보이던 것들이 한 자리에서 만날 때 튀는 불꽃 말이다.

방금 네가 푼 그 수수께끼는 누가 심심풀이로 지어낸 게 아니다. 1962년, 미국의 심리학자 사노프 메드닉이라는 사람이 '창의성이란 도대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인가'를 붙들고 씨름하다 만든 검사다. 그때까지 창의성은 측정도 정의도 안 되는 안개 같은 것이었는데, 메드닉은 그걸 한 문장으로 못 박았다. 창의적 사고란, 서로 멀리 떨어진 관념의 요소들을 끌어다 쓸모 있는 새 조합으로 묶어 내는 능력이라고. 핵심은 '멀리 떨어진'이다. 그는 사람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고 봤다. 누구나 '의자' 하면 곧장 '책상'으로 건너간다. 그건 가깝고 뻔한 연상이라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의자에서 한참 떨어진 데까지 손을 뻗어 엉뚱한 것과 잇는다. 메드닉은 바로 그 멀리 뻗는 힘을 창의성이라 부르고, 그걸 재 보려고 아까 같은 세 단어 묶음을 무더기로 만들어 검사지에 담았다. 이연연상이라는 안개에 처음으로 자를 들이댄 사건이다.

이 발상이 왜 그토록 묵직하냐면, 멀리 떨어진 것을 잇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새것을 만들어 낸 거의 모든 순간의 정체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 이야기를 해 보자. 1940년대,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알프스로 사냥을 나갔다 돌아왔다. 바지와 개의 털에 도꼬마리 가시 열매가 잔뜩 들러붙어 좀처럼 안 떨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짜증 내며 떼어 버리고 잊었을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 성가신 열매를 현미경 아래 놓고 들여다봤다. 가시 끝마다 자그마한 갈고리가 달려 있어, 옷감의 보풀 고리에 콱콱 걸리는 구조였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도무지 한자리에 놓일 일 없던 두 세계가 만난다. 들판의 잡초 가시와, 사람이 매일 여미는 옷의 잠금장치. 이쪽 끝엔 식물학이, 저쪽 끝엔 의복이 있었다. 그는 갈고리와 고리로 붙였다 떼는 그 원리를 옷에 옮겼고, 그렇게 십수 년 매달린 끝에 1950년대에 벨크로를 세상에 내놓았다. 찍찍이 말이다. 누구는 가시에서 귀찮음만 보았고, 그는 가시에서 잠금장치를 보았다. 둘을 가른 건 머리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두 영역을 굳이 한자리에 끌어다 맞대 본 그 한 걸음이었다.

여기서 이 사고법의 묘한 역설이 드러난다. 가까운 것끼리 잇는 연상은 안전하지만 진부하고, 멀리 떨어진 것끼리 잇는 연상은 대개 헛소리가 되지만 어쩌다 한 번 벨크로가 된다. 그러니 이 도구를 잘 쓴다는 건, 무작정 멀리 던지는 게 아니라 멀리 던지되 그중 쓸모 있게 맞물리는 하나를 알아보는 눈을 함께 갖는 일이다. 메드닉이 본 진짜 핵심도 거기 있었다. 멀리 잇는 힘과, 그 먼 조합이 말이 되는지 가려내는 힘. 이 둘이 같이 있어야 창의가 된다. 그래서 그의 검사는 단순히 엉뚱한 답이 아니라, 세 단어 모두에 딱 들어맞는 단 하나의 먼 연결을 요구한 거다.

이 오래된 머릿속 작용은 끝내 컴퓨터 앞에서 전혀 새로운 옷을 입었다. 2010년대 들어 기계에게 말을 가르치려던 사람들은, '단어와 단어가 얼마나 가깝고 먼가'를 사람의 직관이 아니라 숫자로 다뤄야 했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수백 개의 좌표를 가진 한 점으로 바꿔, 거대한 공간 속 위치로 흩뿌렸다. 뜻이 비슷한 말은 가까이, 동떨어진 말은 멀리 놓이도록.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기계가 이걸 해내려면 '연상이란 무엇인가', '뜻이 멀다는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의 가장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메드닉이 거미줄 같은 비유로만 말하던 '관념 사이의 거리'를, 이제는 공간 속 두 점 사이의 실제 거리로 환산해 자로 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사람이 어렴풋이 느끼던 '멀고 가까움'이, 컴퓨터 안에서는 계산되는 좌표 사이의 간격이 되었다. 머릿속 안개였던 이연연상이, 측정 가능한 기하학으로 옮겨 앉은 셈이다.

그러니 너가 도무지 새 길이 안 보여 같은 자리만 맴도는 순간을 만나거든, 머리를 더 쥐어짜지 말고 일부러 멀리 있는 것 하나를 끌어다 네 문제 옆에 억지로 갖다 놓아 봐라. 지금 이 일을, 전혀 상관없는 주방 일이나 곤충이나 도시 교통과 굳이 나란히 세워 보는 거다. 열에 아홉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래도 멈추지 마라. 진부함은 늘 가까운 데 있고, 새것은 언제나 멀리 떨어진 두 영역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는 그 한 번에서 태어나니까. 그게 한 심리학자가 단어 세 개로 보여 준, 멀리 이을수록 멀리 간다는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