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스토밍 (brainstorming)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좋고 나쁨의 판단을 일단 뒤로 미룬 채 떠오르는 생각을 가능한 한 많이 쏟아내는 아이디어 발상법. 비판을 금하고, 엉뚱한 발상도 환영하며, 질을 따지기 전에 양을 먼저 채우고, 남의 생각에 올라타 키운다는 네 가지 약속이 뼈대다. 1950년대 미국 광고계에서 정식으로 이름이 붙었다.
너, 회의실에 둘러앉아 좋은 생각을 짜내야 하는 자리를 떠올려 봐라. 막상 머릿속에 뭔가 하나 떠올라도 입 밖으로 내기가 망설여진다. 이거 너무 엉뚱한가, 비웃음 사는 거 아닌가, 부장님이 어제 한 말이랑 어긋나는데. 그 짧은 사이 네 머릿속 검열관이 아이디어를 죽인다. 좋은 생각의 절반은 입에 닿기도 전에 그렇게 살해당한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검열관을 회의실에서 잠시 쫓아내려고 한 사람이 고안한 방법에 관한 거다. 그리고 그 방법이 세상을 휩쓴 뒤, 한 무리의 과학자가 그것을 실험대에 올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관한 거다. 결말이 좀 얄궂다.
이야기는 1930년대 뉴욕의 광고판에서 시작된다. 알렉스 오즈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비비디오라는 큰 광고 회사를 세운 네 사람 중 하나였는데, 회사 이름에 박힌 그 머리글자들 중 'O'가 바로 그였다. 광고쟁이의 밥줄은 새 아이디어다. 그런데 오즈번은 회의가 늘 이상하게 굴러가는 걸 답답해했다. 누군가 신선한 생각을 꺼내면, 곧바로 옆에서 '그건 예산이 안 돼' '전에 해봤는데 망했어' 하는 비판이 날아들어 싹을 밟아 버렸다. 그는 깨달았다. 사람의 머리에는 새것을 만들어 내는 기능과 그것을 깐깐하게 따지는 기능이 둘 다 있는데, 이 둘을 동시에 켜 두면 따지는 쪽이 늘 이긴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둘을 시간으로 갈라 버리기로 했다. 먼저 한참 동안은 오직 쏟아내기만 하고, 따지는 일은 나중에 몰아서 하자. 그는 이 회의 방식을 자기 회사에서 직원들이 쓰던 표현을 빌려 '브레인스토밍'이라 불렀다. 머리로 문제를 폭풍처럼 들이친다는 뜻이었다. 1942년 책에서 처음 슬쩍 내비친 이 발상을, 그는 1953년 '응용 상상력'이라는 책에서 본격적인 방법으로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거기 박아 둔 네 가지 규칙은 지금도 거의 그대로다. 비판하지 마라. 엉뚱할수록 환영하라. 무조건 많이 내라. 남의 생각에 올라타 키워라.
이 방법은 들불처럼 번졌다. 광고계를 넘어 기업, 학교, 정부 회의실까지, 1950년대 미국은 죄다 둘러앉아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이름 자체가 '창의적으로 일한다'와 동의어가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절정의 순간에, 이야기가 비틀린다.
1958년, 예일 대학의 심리학자 도널드 테일러와 두 동료가 단순한 질문 하나를 품었다. 다들 모여서 하면 더 잘된다고 철석같이 믿는데, 정말 그런가? 누가 실제로 재 본 적은 있나? 그래서 그들은 깔끔한 실험을 짰다. 예일 학생들을 데려와, 한쪽은 네 명씩 진짜 한 방에 모아 오즈번의 규칙대로 브레인스토밍을 시켰다. 다른 한쪽은 똑같은 수의 학생을 혼자 떼어 놓고 같은 문제로 각자 아이디어를 쏟아내게 했다. 그리고 여기에 기막힌 한 수를 뒀다. 혼자 한 학생들을 사후에 무작위로 네 명씩 묶어, 마치 그들이 한 팀이었던 것처럼 아이디어를 합쳤다. 같은 사람이 두 번 적은 똑같은 생각은 한 번으로 친다. 이렇게 만든 가짜 팀을, 연구자들은 명목상의 집단이라 불렀다. 진짜 모인 팀 대 혼자 한 사람들의 합. 공정한 저울이 차려진 거다.
결과가 충격이었다. 혼자 흩어져 일한 사람들을 그냥 합쳐 놓은 가짜 팀이, 진짜로 머리를 맞댄 팀보다 아이디어를 거의 두 배 가까이 쏟아냈다. 개수만 많은 게 아니었다. 겹치지 않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수도, 질을 따져 매긴 점수도 혼자 한 쪽이 위였다. 사람을 한방에 모으는 행위 자체가 창의성을 끌어올리기는커녕 오히려 짓누르고 있었던 거다. 왜 그럴까. 한 사람이 말하는 동안 나머지는 입 다물고 기다려야 하니 그사이 떠오른 생각이 새어 나가 버리고, 남들 앞이라 여전히 엉뚱한 걸 꺼내기 눈치 보이고, 옆 사람 말에 다 같이 끌려가 생각이 한 줄기로 좁아진다. 오즈번이 검열관을 쫓아내려고 차린 바로 그 회의 형식이, 다른 종류의 검열관을 새로 불러들이고 있었던 셈이다. 이 발견은 그 뒤로 수십 번 다시 실험해도 똑같이 나왔고, '집단 브레인스토밍의 생산성 손실'이라는 이름까지 얻으며 한 시대의 상식을 뿌리째 흔들었다.
자, 여기서 사람들이 갈렸다. 한쪽은 '거봐, 브레인스토밍은 사기였어'라며 통째로 내다 버리려 했다. 그런데 더 영리한 쪽은 다르게 물었다. 망가진 건 오즈번의 생각인가, 아니면 그 생각을 담은 그릇인가? 곰곰이 따져 보니, '판단을 미루고 양으로 밀어붙여라'라는 알맹이는 멀쩡했다. 망가진 건 '그러려면 다 같이 한방에 모여 차례로 떠들어야 한다'는 껍데기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알맹이는 살리고 그릇을 갈아 끼웠다. 말로 하지 말고 각자 종이에 적게 한 다음 돌려 보는 방식이 나왔고, 이게 컴퓨터를 만나면서 진짜 날개를 달았다. 모두가 자기 화면 앞에서 동시에, 차례를 기다릴 필요 없이 아이디어를 두드려 넣는다. 누가 말하는 동안 내 생각이 막히는 일도 없고, 남의 시선에 눌릴 일도 없으며, 그러면서도 화면에 흘러가는 남들의 발상에 얼마든지 올라탈 수 있다.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외려 더 강해지는, 오즈번이 꿈꿨으나 회의실에서는 끝내 못 이룬 바로 그 그림이 그제야 실현됐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걸 컴퓨터로 옮기는 일은 단순히 회의록을 키보드로 친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오즈번의 머릿속에서 브레인스토밍은 본질적으로 '둘러앉아 함께 떠드는' 사회적 의식이었다. 그 윗단추를 풀어, '발상이란 본디 혼자 떠오르는 것이고, 모임의 진짜 가치는 함께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각자 떠올린 것을 한곳에 합치는 데 있다'로 생각의 틀을 통째로 뒤집고 나서야, 비로소 기계 위에서 더 나은 브레인스토밍이 가능해졌다. 도구를 디지털로 옮기려다 그 도구를 떠받치던 인간관계의 전제까지 갈아엎은 것이다.
그러니 너가 좋은 생각을 모아야 하는 자리를 만들거든, 두 가지를 기억해라. 첫째, 만드는 시간과 따지는 시간을 절대 섞지 마라. 쏟아낼 때는 아무리 엉뚱해도 비판을 금하고 오직 양만 채워라. 둘째, 그렇다고 무작정 한방에 모아 차례로 떠들게 하지는 마라. 차라리 각자 조용히 쏟아내게 한 뒤 그것을 합쳐라. 머리를 맞대는 것보다, 흩어져 쏟아낸 머리들을 잘 포개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낳는다. 한 광고쟁이가 검열관을 쫓아내려 시작한 일이, 결국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진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