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창의·확산

마인드맵 (mind mapping)

하나의 중심 낱말이나 그림을 종이 한가운데 두고,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줄기처럼 사방으로 뻗어 가며 가지에 매달아, 한 주제를 둘러싼 연상의 그물 전체를 한 장에 펼쳐 보이는 시각적 사고법. 위에서 아래로 줄 맞춰 적어 내려가는 보통의 필기와 달리, 중심에서 바깥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며 가지가 또 잔가지를 치는 나무꼴 구조를 띤다. 색과 그림, 굵기를 더해 머리가 본래 연상하는 방식 그대로 생각을 옮겨 적는 것을 노린다.

너, 학창 시절 공책을 한번 떠올려 봐라. 선생님 말씀을 받아 적는다고 첫 줄부터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한 줄, 그 밑에 또 한 줄, 번호 매기고 들여쓰기 하고. 그렇게 빼곡히 채운 공책을 시험 전날 다시 펴 보면 이상하게 머리에 안 들어온다. 까만 글씨가 위에서 아래로 빽빽이 흐를 뿐, 어디가 중요하고 무엇이 무엇에 매달려 있는지 한눈에 잡히질 않는다. 분명 내 손으로 적었는데 남이 쓴 것 같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답답함을 못 견딘 한 청년이 공책을 아예 옆으로 눕히고 한가운데에서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가 천재적인 새것을 발명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천칠백 년 전 사람이 이미 비슷한 그림을 그려 놓고 있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묘미다.

그 청년은 1960년대 캐나다에서 공부하던 영국 사람 토니 부잔이다. 그는 도서관에 처박혀 노트 정리에 짓눌리다 단순한 의문 하나를 품는다. 우리 머리는 생각할 때 정말 한 줄씩 차례로 떠올리던가? 아니다. '사과' 하면 빨강이 떠오르고 동시에 뉴턴이, 또 동시에 어릴 적 과수원이, 새콤한 맛이 한꺼번에 사방에서 솟구친다. 생각은 줄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지는 폭죽인데, 우리는 그 폭죽을 억지로 한 줄짜리 끈에 꿰어 적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부잔은 종이 한복판에 핵심 낱말 하나를 박고, 거기서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뽑은 뒤 가지마다 잔가지를 치게 하는 필기법을 다듬었다. 색을 칠하고 작은 그림을 그려 넣어, 머리가 본래 연상하는 모양 그대로 종이에 옮기려 한 것이다. 그는 이걸 마인드맵이라 이름 붙이고, 1974년 영국 비비시에서 '유즈 유어 헤드'라는 텔레비전 시리즈와 같은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머리를 한 줄로 쓰지 말고 머리가 생긴 대로 쓰자는 이 단순한 제안은, 들불처럼 번져 백 개 나라가 넘는 곳에 책이 깔렸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이야기의 긴장이 솟는다. 부잔은 종종 자기가 이걸 발명했다는 듯 말했지만, 가지를 쳐서 생각을 펼치는 그림은 그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3세기, 로마 시대의 철학자 포르피리오스에 닿는다. 그는 스승 격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설명하려고, 가장 위에 '존재'를 놓고 그 아래로 둘씩 갈래를 쳐 내려가는 나무 그림을 그렸다. 후대 사람들이 '포르피리오스의 나무'라 부른 이것이, 생각을 가지로 갈라 보이려는 가장 오래된 시도로 전해진다. 13세기에는 라몬 류이라는 신비가가 비슷한 갈래 그림을 즐겨 썼고, 르네상스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공책 한 면에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선을 뻗어 가며 어지러이 적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 필기를 마인드맵의 먼 조상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니 부잔이 한 일은 무에서 유를 만든 발명이라기보다, 천칠백 년을 흩어져 떠돌던 '가지치는 생각'에 또렷한 이름과 규칙을 붙이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다듬어, 학생 공책에까지 들이민 일에 가깝다. 발명가라기보다 이름을 붙여 세상에 퍼뜨린 전도사였던 셈이다.

부잔이 이 도구로 무엇을 이뤘는지를 보면 그가 단순한 필기법 장수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는 마인드맵을 머리를 더 잘 쓰는 법, 즉 '정신의 문해력'이라는 더 큰 깃발의 한복판에 세웠다. 그 깃발이 가장 화려하게 펄럭인 자리가 기억력 대회였다. 1991년, 부잔은 레이먼드 킨과 함께 세계 기억력 선수권을 처음 열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뒤섞인 카드 한 벌의 순서나 끝없이 불러 주는 숫자를 누가 더 많이 외우는지 겨루는, 머리를 운동경기로 만든 무대였다. 첫해 여덟 명으로 시작한 이 대회는 수백 명이 겨루는 국제 행사로 자라났고, 2018년에는 열네 살 중국 소녀가 우승할 만큼 저변이 넓어졌다. 한 줄짜리 공책에 답답해하던 청년이, 결국 인간의 기억과 연상을 겨루는 한 판의 경기 종목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손으로 그리던 그림이 컴퓨터를 만난 대목이 마지막 반전이다. 마인드맵이 화면으로 옮겨 가는 길은, 엉뚱하게도 부잔과 상관없는 자리에서 먼저 닦였다. 1960년대, 사람의 기억 속에서 개념들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연구하던 퀼리언과 콜린스 같은 학자들이 '의미 그물'이라는 발상을 내놓는다. 새는 동물에 매달리고, 카나리아는 새에 매달리고, 노랗다는 성질이 거기 또 매달리는 식으로, 지식을 마디와 그 마디를 잇는 선으로 이뤄진 그물로 본 것이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마인드맵을 기계로 옮기려면, 그것을 더 이상 '사람이 손맛으로 그리는 한 장의 그림'으로 봐서는 안 됐다. 중심에서 뻗은 줄기 하나하나를 '마디(node)'로, 그 사이를 잇는 가지를 '연결(link)'로 바꿔, 생각을 아예 마디와 연결로 짜인 구조물로 다시 보는 관점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 윗단추를 새로 끼우고 나서야, 프리마인드나 마인드매니저 같은 프로그램이 가지를 마우스로 끌어다 접었다 폈다 하고, 마디 하나를 옮기면 거기 딸린 잔가지가 통째로 따라오게 만들 수 있었다. 종이 위에서는 한번 그으면 끝이던 가지가, 컴퓨터 안에서는 언제든 다시 잇고 옮길 수 있는 살아 있는 부품이 된 것이다. 손으로 그리던 연상의 그물을, 기계가 다루는 데이터의 그물로 세계관째 옮겨 앉힌 셈이다.

그러니 너가 머리가 꽉 막혀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주제를 만나거든, 줄 쳐진 공책을 펴고 첫 줄부터 적어 내려가려는 충동을 참아라. 빈 종이를 가로로 눕히고, 한가운데에 그 주제 하나만 큼지막하게 적어라. 그리고 거기서 떠오르는 것들을 순서도 따지지 말고 옳고 그름도 묻지 말고, 굵은 가지로 사방에 뻗어 매달아라. 가지 끝에서 또 잔가지가 돋거든 그대로 둬라. 한 줄로 적으면 끝내 안 보이던,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무엇에 매달려 있는지가, 사방으로 퍼진 그 그물 위에서야 비로소 한눈에 모습을 드러낸다. 천칠백 년 전 한 철학자가 처음 가지를 쳤고, 한 영국 청년이 거기에 이름을 붙여 네 손에까지 쥐여 준, 머리가 생긴 대로 생각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