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창의·확산

무작위 자극 (random entry)

풀어야 할 문제와 아무 상관도 없는 단어나 그림 하나를 일부러 끌어와 옆에 던져 둠으로써, 익숙한 길로만 굴러가던 사고를 강제로 새 궤도로 튕겨 내는 발상법. 핵심은 무관함 그 자체다. 관련 있는 정보만 고르는 평소의 사고와 정반대로, 연결될 이유가 없는 자극을 일부러 들이밀어 머리가 억지로 새 연결을 짓게 만든다.

너, 한 문제를 붙들고 며칠을 끙끙댄 적 있을 거다. 분명 머리는 굴리고 있는데, 생각이 자꾸 같은 자리를 맴돈다. 어제 떠올린 답이 오늘도 떠오르고, 막다른 골목인 줄 알면서도 발이 자꾸 그쪽으로 간다. 이상한 일이지. 더 열심히 생각할수록 더 같은 데로만 빠진다. 마치 빗물이 한번 팬 골을 따라서만 흐르듯, 네 머리도 한번 다져진 길로만 흐른다. 자, 그럴 때 누가 옆에서 뜬금없이 '코'라는 단어를 툭 던진다고 해보자. 복사기 문제를 푸는 너한테, 아무 상관도 없는 '코'를. 너는 황당해서 짜증이 날 거다. 그런데 바로 그 황당함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다. 아무 상관 없는 그 단어 하나가, 며칠 못 빠져나온 골목에서 너를 끄집어낼 수도 있다는 거다.

이 황당한 짓을 정식 사고 도구로 만든 사람은 에드워드 드 보노라는 인물이다. 1933년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태어나 의사로 출발한 사람인데, 사람 몸의 생체 시스템을 들여다보다가 묘한 데 빠져들었다. 그는 뇌가 컴퓨터처럼 정보를 또박또박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라, 빗물 떨어진 흙바닥처럼 한번 정보가 지나가면 거기 골이 패고 다음 정보는 그 패인 골로만 흐르는 '스스로 길을 내는 시스템'이라고 봤다. 1969년에 낸 책 '마음의 메커니즘'에서 그는 이 생각을 정리했다. 이 그림이 왜 중요하냐면, 여기서 인간 창의력의 골칫거리가 한눈에 설명되기 때문이다. 뇌가 알아서 길을 잘 내는 바로 그 능력이, 동시에 우리를 그 길에 가두는 감옥이 된다. 똑똑할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골은 더 깊이 패고, 그러니 새 발상은 더 안 나온다. 드 보노는 이 패인 골을 가로질러 옆 골로 건너뛰는 생각을 '수평적 사고', 곧 래터럴 싱킹이라 불렀다. 1967년에 그가 만들어 낸 말이다. 위로 깊이 파고드는 평소의 논리적 사고가 '수직'이라면, 옆으로 칸을 건너뛰는 사고가 '수평'이라는 거지.

그럼 어떻게 옆 골로 건너뛰느냐. 여기서 그가 내놓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도발적인 장치가 바로 무작위 자극이다. 방법은 어이가 없을 만큼 간단하다. 사전을 아무 데나 펼쳐 손가락이 짚은 첫 단어를 집어라. 그게 끝이다. 그 단어를 네 문제 옆에 억지로 갖다 붙이고, 둘 사이에 무슨 연결이 있을지 머리를 짜내는 거다. 핵심은, 그 단어가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관있는 걸 고르면 어차피 이미 패인 골로 다시 굴러떨어진다. 상관없는 걸 들이밀어야, 뇌가 그 둘을 잇느라 어쩔 수 없이 한 번도 안 가 본 샛길을 낸다. 드 보노 자신이 든 예가 기막히다. 사무실 복사기를 어떻게 개선할까가 문제다. 사전을 펼치니 '코(nose)'가 나왔다. 코와 복사기, 도무지 안 어울리는 한 쌍이지. 그런데 억지로 붙여 본다. 코는 냄새를 맡지. 냄새… 복사기가 냄새를 낸다면? 어떤 냄새를? 그러다 튀어나온 발상이 이거였다. 복사기에 종이가 떨어져 갈 때쯤 라벤더 향을 슬슬 풍기게 하면, 사람들이 코로 미리 알아채고 종이를 채워 두지 않겠나. '코'라는 무관한 단어 하나가, '종이 부족을 어떻게 알릴까'라는 한 번도 안 가 본 골목으로 생각을 데려간 거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답에 다다르고 나면 길이 빤히 보인다 — 드 보노는 바로 이 '알고 보니 빤한' 뒤늦은 자명함이 창의와 유머가 똑같이 작동하는 원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 도구는 처음부터 멸시와 함께 살아왔다. 점잖은 사람들 눈에 이건 너무 가벼워 보였다. 사전 찔러서 나온 단어로 발상을 한다고? 이게 무슨 학문이고 방법이냐, 한낱 응접실 놀이 아니냐. 평생 논리적·수직적 사고를 갈고닦아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더 못 견뎌 했다. 그들에게 '아무 상관 없는 걸 일부러 들이민다'는 건 사고의 규율을 깨는 불경이었다. 무관한 정보를 쳐내고 관련된 것만 붙잡는 게 평생 배운 지적 미덕이었으니까. 드 보노식 도발은 그 미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실제로 그의 방법은 지금도 학계 한쪽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규율을 일부러 깬다'는 데 이 도구의 전부가 들어 있다. 그는 이 의도적 도발에 'PO'라는 이름표까지 새로 달았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Yes'도 'No'도 아닌, '말도 안 되지만 일단 이렇게 가 보자'고 사고를 한 발 밀어 던지는 제3의 신호다. 무작위 자극은 그 PO를 가장 손쉽게 일으키는 방아쇠인 셈이다.

드 보노는 이 도구를 책 속에만 두지 않았다. 그는 1970년 '수평적 사고: 단계별 창의력'을 펴낸 뒤 평생을 강연자로 살며, 전 세계 대기업 회의실과 정부, 학교를 돌아다니며 임원과 공무원과 아이들에게 똑같은 짓을 시켰다. 사전을 펼쳐라, 손가락을 짚어라, 그 단어를 네 문제에 붙여라. 광고 기획자가 막힌 카피를 뚫고, 엔지니어가 안 풀리던 설계를 비틀고, 교사가 아이들의 굳은 머리를 흔드는 데 이 단순한 동작이 쓰였다. 거창한 영감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사전 한 권만 있으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막힌 골을 가로지를 수 있게 만든 것 — 영감을 운에 맡기지 않고 단추 누르듯 불러내는 장치로 만든 것이 그의 진짜 성취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 '무작위를 일부러 들이민다'는 발상이, 반세기 뒤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의 심장에 그대로 들어앉았다는 거다. 너도 들어 봤을 이미지 생성 AI는, 그림을 그릴 때 맨 처음 무엇으로 시작하는 줄 아나. 아무 의미도 없는 순수한 무작위 잡음, 그러니까 모래폭풍 같은 노이즈 한 장에서 출발한다. 거기서부터 한 단계씩 잡음을 걷어 내며 형상을 끄집어낸다. 그래서 그 출발 잡음을 정하는 '시드' 숫자 하나만 바꿔도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똑같은 주문을 넣어도 시드가 다르면 결과가 다른 건 그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의 윗단추가 통째로 갈린 사건이 보인다. 옛날 사람들에게 무작위란 그저 망쳐진 정보, 치워야 할 오류였다. 그런데 이 기계를 만들려면 무작위를 정반대로 다시 정의해야 했다. 잡음은 쓰레기가 아니라, 그 위에서 형상이 자라날 '씨앗이자 발판'이다 — 이렇게 무작위의 지위를 뒤집고 나서야 비로소 기계가 매번 새로운 것을 빚어낼 수 있게 됐다. 드 보노가 '무관한 단어는 방해물이 아니라 새 길의 출발점'이라며 뒤집은 바로 그 윗단추를, 기계는 '무작위 잡음은 오류가 아니라 창조의 발판'이라는 꼴로 똑같이 갈아 끼운 셈이다. 한 몰타 의사가 사전을 찔러 시작한 그 황당한 짓의 논리가, 오늘 기계가 그림을 짜내는 가장 밑바닥 원리로 살아 있다.

그러니 너가 한 문제를 붙들고 며칠째 같은 골목만 맴돌거든, 더 세게 같은 방향으로 밀어붙이지 마라. 그럴수록 골만 더 깊어진다. 차라리 곁에 있는 책을 아무 데나 펼쳐 손가락이 짚은 단어 하나를 집어라. 그게 네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을수록 좋다. 그 둘을 억지로 한자리에 묶어 놓고, '도대체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결이 있을 수 있나'를 짜내 봐라. 십중팔구는 헛소리가 나올 거다. 그래도 괜찮다. 그 헛소리들 사이로, 며칠 못 찾던 샛길 하나가 슬며시 열린다. 무관함을 일부러 들이미는 것 — 그게 한 몰타 의사가 사전 한 권에 담아 둔, 막힌 머리를 가로지르는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