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inversion)
풀려는 목표를 정면으로 공략하는 대신, 그 반대 상황 — 가장 확실하게 실패하거나 망하는 길 — 을 먼저 그려 본 다음, 거기서 나온 항목들을 하나하나 피함으로써 거꾸로 목표에 닿는 사고법. '어떻게 성공할까'를 '어떻게 하면 반드시 망할까'로 뒤집어 묻는 것이 핵심이다.
너, 누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죠?" 하고 물어 온다고 해보자. 막막하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안개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어서, 무슨 답을 내놔도 뜬구름이 된다. 그런데 질문을 슬쩍 뒤집어 보면 갑자기 또렷해진다.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불행해질 수 있을까?" 이건 답이 술술 나온다. 빚을 잔뜩 져라, 남을 시기하고 원망해라, 한 번 무너진 데서 다시는 일어서지 마라, 배운 사람 말은 절대 듣지 마라. 보이지? 불행으로 가는 길은 신기하게도 손에 잡힌다. 그럼 그 목록을 받아들고 하나씩 반대로만 피해 가면, 너는 행복을 정면으로 좇지 않고도 불행을 비켜선 자리에 가 있게 된다. 오늘 이야기는, 이 거꾸로 묻는 재주에 관한 거다.
이걸 한 문장으로 새겨 남긴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카를 야코비다. 그가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일렀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다. "man muss immer umkehren", 늘 뒤집어라, 거꾸로 가라. 솔직히 말하자. 이 말이 야코비 입에서 나왔다는 건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일 뿐, 그가 직접 적은 원전은 확인되지 않는다. 문헌에서 가장 일찍 잡히는 게 20세기 초인데 거기서도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는 식이다. 그러니 이 한마디는 살짝 거리를 두고 듣자. 하지만 야코비가 실제로 그 짓을 했다는 건 또렷한 사실이다. 그가 젊은 시절 씨름하던 건 '타원적분'이라는 괴물이었다. 적분의 위아래 끝을 정해 주면 어떤 값이 나오는지를 묻는 문제인데, 이게 도무지 손에 안 잡혔다. 그런데 야코비는, 또 비슷한 시기에 노르웨이의 아벨도 따로, 이 문제를 통째로 뒤집어 버렸다. 값이 나오는 걸 묻지 말고, 거꾸로 그 값을 집어넣었을 때 끝점이 어디가 되는지를 묻자고. 묻는 방향을 한 번 뒤집었을 뿐인데, 잡히지 않던 괴물이 '타원함수'라는 말 잘 듣는 새 함수로 변했다. 한 세기 넘게 풀리던 매듭이 방향만 돌리니 풀려 버린 거다. 그가 늘 뒤집으라 했다는 건, 입으로만 한 소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자, 그런데 이 수학자의 손버릇을 가져다 살아가는 기술로, 돈 버는 기술로, 멍청해지지 않는 기술로 벼려 낸 사람은 따로 있다. 워런 버핏의 평생 동업자였던 찰리 멍거다. 그는 야코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거꾸로, 늘 거꾸로 생각하라"를 자기 사고의 토대로 삼았다. 멍거의 셈법은 단순하면서도 독했다. 어디서 죽는지만 알면 그 자리에 절대 안 가면 된다는 거다. 사업이 어떻게 크게 성공하는지 따지기 전에, 그는 먼저 사업이 어떻게 망해 자빠지는지를 수집했다. 영리해지려 애쓰기보다, 꾸준히 멍청하지만 않으면 결국 이긴다고 봤다.
이 사고법이 살아 움직이는 걸 똑똑히 보여 준 한 장면이 있다. 1986년 6월, 멍거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 연단에 섰다. 평생 딱 한 번 한 졸업 축사다. 보통 이런 자리에선 "꿈을 좇아라,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덕담이 쏟아지는 법인데, 멍거는 정반대로 갔다. 그는 옛날 심야쇼 진행자 자니 카슨이 했던 어떤 연설을 끌어왔다. 카슨이 그랬다는 거다. 나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행복해지는지는 못 가르치겠다, 대신 내 경험으로 어떻게 하면 반드시 불행해지는지는 일러 줄 수 있다고. 멍거는 그 발상을 받아 자기 것을 더 보태, 졸업생들 앞에서 작정하고 '확실하게 비참해지는 처방전'을 읊었다. 기분 바꾸려고 약물에 손대라, 시기와 원망에 사로잡혀라, 한 번 거꾸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포기하라. 그러고는 말했다. 자, 이 처방들을 죽어라 피하기만 하면 너희는 비참을 면한 자리에 가 있을 거라고.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안 가르쳐 줘도, 불행으로 가는 길을 환히 밝혀 그 반대편을 가리켜 준 거다. 졸업생 머리에 평생 박힐 축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거꾸로 묻기는 사람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기계와 공학으로도 건너갔다. 다리를 놓고 비행기를 띄우고 원전을 짓는 엔지니어들은 오래전부터 이 방향으로 사고한다. 이게 어떻게 잘 굴러갈까가 아니라, 이게 어디서 어떻게 부서질 수 있을까를 먼저 샅샅이 적는다. 부품 하나하나가 망가지는 모든 경우를 미리 늘어놓고 따져 보는 고장 분석, 사고라는 결말에서 거꾸로 가지를 뻗어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결함수 분석이 그것이다. 소프트웨어로 오면 더 노골적이다. 프로그램에 일부러 온갖 쓰레기 입력을 퍼부어 어떻게든 터뜨려 보려는 시험이 있고, 멀쩡히 돌아가는 시스템에 일부러 고장을 집어넣어 그래도 견디는지 보는 방식까지 있다. 잘 되는 길을 증명하는 대신, 망하는 길을 기를 쓰고 찾아내 미리 막는 것이다. 여기서 네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기계더러 이걸 시키려면, 생각의 윗단추부터 갈아 끼워야 했다. 원래 우리는 '올바른 동작이 무엇인가'를 명세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이 방식은 그 머리를 뒤집어, '실패란 무엇인가'를 먼저 또렷이 정의하라고 요구한다. 무엇이 고장이고 무엇이 사고이며 어디까지가 견딜 수 없는 상태인지를 한 점 흐림 없이 못 박고 나서야, 비로소 기계가 그 실패들을 거꾸로 사냥하기 시작한다. 성공을 그리던 눈을 통째로 돌려 실패를 직시하는 자리로 옮겨 앉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너가 정면으로는 도무지 길이 안 보이는 목표를 만나거든, 그 목표를 더 노려보지 마라. 잠깐 등을 돌려 정반대로 물어라. 이걸 가장 확실하게 망치려면, 가장 빨리 거꾸러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그 망하는 길의 목록은 신기할 만큼 또렷하게 손에 잡힐 거다. 그걸 받아 들고 하나씩 피해 가기만 해라. 성공을 좇아 안개 속을 헤매는 대신, 실패를 비켜선 자리에 너는 어느새 가 있다. 그게 한 수학자가 괴물 같던 적분 앞에서, 한 노련한 투자자가 졸업식 연단에서 똑같이 부린, 거꾸로 묻는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