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분석법 (morphological analysis)
어떤 대상이나 문제를 이루는 핵심 속성들을 각각 하나의 축으로 잡고, 축마다 가능한 값을 죽 늘어놓아 표(상자)를 만든 다음, 그 칸들을 가로세로로 조합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빠짐없이 펼쳐 보는 방법이다. 흩어진 직관에 기대지 않고, 가능성의 공간 전체를 격자로 만들어 그 안을 체계적으로 훑는 발상 도구다.
너, 새 가방 하나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해보자. 머릿속에 그냥 '멋진 가방'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평소 네가 봐 온 가방들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손잡이가 위에 달리고, 천으로 되어 있고, 지퍼로 여는. 상상력이라는 게 사실은 기억의 재탕인 셈이다. 그런데 누가 옆에서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가방을 이루는 게 뭐냐, 여는 방식·메는 방식·재료·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 보자. 여는 방식엔 지퍼도 있고 단추도 있고 자석도 있고 둘둘 말아 끼우는 것도 있지. 메는 방식엔 어깨끈, 손잡이, 등에 지는 것, 허리에 차는 것. 재료엔 가죽, 천, 금속, 실리콘. 자, 이제 이 세 줄을 가로세로로 곱해 봐라. 갑자기 '자석으로 여닫고 허리에 차는 실리콘 주머니' 같은, 네 기억엔 없던 물건이 칸 하나에서 툭 튀어나온다. 방금 너는 상상한 게 아니라, 상상의 빈칸을 발견한 거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격자를 진지한 방법으로 벼려 낸 사람은, 뜻밖에도 별을 보던 사람이었다. 20세기 중반 캘리포니아 공대에 프리츠 츠비키라는 스위스 출신 천체물리학자가 있었다. 성질이 어찌나 사나웠던지, 마음에 안 드는 동료들을 두고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못된 놈이라는 뜻으로 '구형(球形)의 개자식들'이라 불렀다는 사람이다. 그 까칠함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1933년, 은하단 속 은하들이 보이는 질량에 비해 너무 빨리 움직인다는 사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우주를 붙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지금 암흑물질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듬해엔 동료 발터 바데와 함께, 거대한 별이 폭발하고 남긴 자리에 중성자로만 빽빽이 들어찬 별이 생긴다고 내다봤다. 학계는 둘 다 거의 묵살했다. 너무 앞서갔고, 말하는 사람이 미움받았으니까.
여기서 네가 눈여겨볼 긴장이 있다. 그를 무시하게 만든 그 머리가, 사실은 똑같은 한 가지 습관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츠비키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 그것을 이루는 독립된 속성의 축들로 잘게 부수고, 각 축의 가능한 값을 빠짐없이 늘어놓은 다음, 그 칸들을 곱해 가능성의 상자 전체를 들여다봤다. 그는 이 상자를 들고 별만 본 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제트·로켓 추진기관을 설계하는 일에 그대로 가져다 썼다. 추진기관을 결정짓는 속성들을 여러 축으로 세우고 각 축의 선택지를 곱하자, 표 안에는 그 누구도 아직 만들어 본 적 없는 수많은 추진기관 형태가 칸칸이 채워졌다. 전해지기로는 수백 가지에 이르렀다 한다. 그가 한 일은 새 엔진을 '발명'한 게 아니라, 가능한 엔진들이 사는 공간의 지도를 그려서 아직 비어 있는 번지수를 짚어 낸 것이다. 그는 이 접근을 형태학(morphology)이라는 말에서 따와 형태분석법이라 부르며 평생 다듬었고, 죽기 직전인 1969년에야 그 전모를 책으로 묶어 냈다.
다만 이 방법에는 처음부터 그림자가 하나 따라붙었다. 축을 늘릴수록 칸의 수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축 열 개짜리 표라면 경우의 수가 수십만으로 불어나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다 못 본다. 실제로 훗날 스웨덴에서 핵 대피소를 설계하며 만든 열 개 축짜리 표는 가능한 조합이 오십만 가지를 넘겼다. 이 벽을 넘은 발상이 묘하다. 모든 조합을 일일이 펼치려 들지 말고, 칸과 칸을 둘씩 짝지어 '이 둘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나, 논리적으로 모순은 아닌가'만 따지자는 것이다. 가죽이면서 동시에 실리콘일 수는 없는 식으로, 양립 불가능한 짝을 먼저 쳐 내면 살아남은 조합만 추리면 된다. 조합의 수는 축에 따라 기하급수로 늘지만, 둘씩 짝지은 관계의 수는 제곱 수준으로만 느니까, 오십만 조합짜리 표도 수백 번의 짝 검사면 쓸 만한 답의 공간이 추려진다. 이 발상이 1990년대 중반 스웨덴 국방연구소에서 톰 리치라는 연구자의 손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옮겨졌고, 그 뒤로 백 건이 넘는 정책·미래 기획 문제에 형태분석의 격자가 깔렸다.
바로 이 대목이, 종이 위 장난 같던 표가 진짜 도구로 올라선 전환점이다. 컴퓨터에 이걸 시키려고 보니, 사람들은 '경우의 수를 모두 나열한다'는 처음의 생각을 버려야 했다. 그 대신 '칸들의 양립 가능성을 짝으로 판정한다'는, 한 단 위의 틀로 갈아타야 했다. 빈칸을 채우는 일에서 모순을 솎는 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간 것이다. 츠비키가 별에서 보였던 그 조합적 상상력이, 결국 우주에선 1967년 펄서의 발견과 1970년대 베라 루빈의 관측으로 뒤늦게 옳았음이 드러났듯, 그의 표도 한참 뒤에야 제 왕좌를 찾았다.
그러니 너가 '뭔가 새로운 걸 떠올려야 하는데 자꾸 본 것만 맴돈다' 싶은 순간을 만나거든, 머리를 쥐어짜지 마라. 그 대상을 이루는 독립된 축 서너 개를 종이 왼편에 세우고, 축마다 가능한 값을 옆으로 끝까지 늘어놓은 다음, 칸을 가로질러 곱해 봐라. 네 상상력의 한계는 재능이 아니라, 아직 그려 보지 않은 빈칸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