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Z
어떤 발명 문제든 그 속에는 '이걸 좋게 하면 저게 나빠진다'는 모순이 숨어 있다고 보고, 그 모순을 또렷이 정의한 다음 수많은 특허에서 추려낸 발명 패턴의 목록을 도구 삼아 타협 없이 풀어내는 문제해결 이론. 러시아어 '발명 문제 해결 이론'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며, 창의는 천재의 영감이 아니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술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너, 무언가를 더 좋게 만들려다 다른 쪽이 망가지는 경험을 해봤을 거다. 자동차를 튼튼하게 하려고 철판을 두껍게 하면 무거워져 연비가 죽는다. 커피를 진하게 뽑으면 쓴맛이 따라 올라온다. 상자를 크게 만들면 운반이 불편해진다. 보통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한숨을 쉬고 가운데 어디쯤에서 타협한다.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게, 적당히. 그 '적당히'가 어른의 지혜라고들 한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타협이야말로 게으름이고 실패라고 못 박은 사람이다. 좋은 발명이란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한 마리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둘 다 잡는 길을 기어이 찾아내는 것이라고. 더 놀라운 건, 그가 이 생각을 가다듬은 장소가 북극권의 강제수용소였다는 거다.
1946년, 소련 해군의 한 부서에 겐리흐 알트슐러라는 젊은 기술자가 있었다. 카스피해 함대에서 그가 맡은 일은 특허였다. 군인들이 낸 발명 제안서를 검토하고 다듬어 특허로 정리하는 자리. 남의 발명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직업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그는 묘한 것을 알아챘다. 별것 아닌 개량과 진짜 돌파구가 되는 발명이 따로 있는데, 그 진짜배기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어떤 '모순'을 정면으로 깨부수고 있었던 거다. 무게를 줄이면서 동시에 강도를 높였다든가, 빨라지면서 동시에 정밀해졌다든가. 보통 사람이 타협하고 마는 그 자리에서, 뛰어난 발명가들은 둘 다를 가져갔다.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순을 깬 방식에도 어떤 되풀이되는 패턴이 있지 않을까. 그게 있다면, 천재가 아닌 사람도 그 패턴을 배워 쓸 수 있지 않을까. 창의를 영감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공학의 영역에 앉히겠다는, 당시로선 불경하기까지 한 발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잔혹하게 꺾인다. 1948년 12월, 스물두 살의 알트슐러는 무려 서른 장에 달하는 편지를 써서 '스탈린 동무에게 직접'이라는 수신인을 달아 부쳤다. 소련의 발명 행정이 얼마나 무지하고 엉망인지를 조목조목 따지고, 누구든 발명가로 만들 수 있는 이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답장 대신 돌아온 건 체포였다. 그는 심문받고 고문당한 끝에 25년 형을 선고받고, 북극권 너머 보르쿠타의 악명 높은 강제노동수용소 탄광으로 보내졌다. 문제해결의 이론을 만들겠다던 사내가, 자기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문제 속으로 던져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수용소에는 같은 운명으로 끌려온 교수와 학자가 즐비했다. 알트슐러는 하루 열두어 시간씩 그들에게 강의를 청해 들으며 자신만의 '감옥 대학'을 열었고, 탄광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기술 사고를 그 모순 분석법으로 풀어 가며 자기 이론을 다듬었다. 가장 자유를 빼앗긴 자리에서, 창의의 자유를 공식으로 만들고 있었던 거다.
스탈린이 죽고 풀려난 그는 바쿠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특허를 파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까지 그와 동료들이 들여다본 특허가 수만 건에 이른다. 그 방대한 더미에서 그는 결국 두 가지 보물을 건져 올렸다. 하나는 발명가들이 모순을 깰 때 쓰는 방법이 사실 마흔 가지 패턴으로 추려진다는 발견이다. 쪼개라, 거꾸로 뒤집어라, 미리 해 두어라, 한쪽을 일부러 넘치게 하라, 시간을 나눠라, 공간을 나눠라 같은 것들. 다른 하나는 '모순 행렬'이라 불리는 일종의 대조표였다. 무게를 줄이고 싶은데 강도가 걸린다 — 이렇게 충돌하는 두 변수를 표의 가로와 세로에서 찾아 만나는 칸을 보면, 과거의 발명가들이 바로 그 충돌을 깰 때 가장 자주 쓴 패턴 번호가 적혀 있다.
자, 이 도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처음의 자동차 철판으로 끝까지 따라가 보자. 모순은 이거다. 강해지려면 두꺼워야 하고, 가벼우려면 얇아야 한다. 타협하는 사람은 중간 두께를 고르고 끝낸다. 알트슐러의 방식은 다르다. 먼저 모순을 또렷이 적는다 — '강도'와 '무게'의 충돌. 그다음 행렬을 펼치면 '쪼개라'와 '비대칭으로 만들라' 같은 패턴이 추천된다. '쪼개라'를 이 문제에 들이대 본다. 통짜 철판을 잘게 나누면? 속을 비운 벌집 구조나 골이 진 주름판이 떠오른다. 실제로 종이도 평평하면 힘없이 휘지만 골판지처럼 주름을 잡으면 제 무게의 몇 배를 버틴다. 두께를 늘리지 않고도 강도가 솟은 거다. 비행기 날개 속이 텅 빈 격자로 차 있는 이유, 철골이 그냥 막대가 아니라 H자나 ㄷ자로 파여 있는 이유가 다 이것이다. 무게와 강도라는 두 토끼를, 가운데서 어정쩡하게 나누지 않고 '구조를 쪼갠다'는 한 수로 둘 다 잡았다. 이게 모순을 정의하고 패턴으로 해소한다는 말의 실체다. 영감이 와서 푼 게 아니라, 문제를 모순의 꼴로 번역하고 검증된 패턴 서랍을 뒤져서 푼 거다.
알트슐러는 이 모든 것을 'TRIZ'라 불렀다. 발명 문제 해결 이론이라는 긴 러시아어의 머리글자다. 1971년 그는 바쿠에 세계 최초의 TRIZ 교육기관을 세웠고, 한낱 변방의 비주류 기법이던 이것은 소련이 무너지며 흩어진 기술자들을 따라 서방으로 건너가 삼성, 보잉,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거대 기업의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천재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던 일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절차로 바꿔 놓은 공로다.
그리고 이 도구는 컴퓨터로 내려가 앉았다. 마흔 가지 패턴과 모순 행렬이라는 게 본디 사람이 책장을 넘겨 가며 찾던 것인데, 이걸 기계가 거대한 특허·논문 더미를 뒤져 '네 모순과 같은 충돌을 과거에 이렇게 풀었다'고 자동으로 길어 올리는 소프트웨어로 만들었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걸 기계에 시키려면, 사람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강하면서 가볍게'라고 뭉뚱그리던 소망을 통째로 갈아야 했다. 모든 문제를 반드시 두 변수의 충돌이라는 엄격한 꼴로 — 무엇을 좋게 하려다 무엇이 나빠지는가 — 빠짐없이 번역해 넣어야 비로소 기계가 그 충돌을 알아보고 패턴을 짚어 준다. 막연한 '더 좋게'는 기계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문제를 모순으로 환원하는 그 윗단추를 새로 끼우고 나서야, 발명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의 일부가 기계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니 너가 '이걸 살리면 저게 죽는다'는 벽 앞에서 가운데 어디쯤 타협하려는 순간을 만나거든, 잠깐 멈춰라. 먼저 그 충돌을 두 개의 변수로 또렷이 적어 봐라 — 나는 무엇을 좋게 하려다 무엇을 잃고 있는가. 그리고 묻는 거다. 정말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길밖에 없나, 아니면 이 둘을 시간으로, 공간으로, 구조로 갈라놓아 둘 다 가질 길이 있나. 타협은 문제를 푼 게 아니라 덮은 거라는 것. 그게 북극의 탄광에서 한 사내가 길어 올린 생각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