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사고 (lateral thinking)
정면의 논리를 한 칸씩 밟아 내려가는 대신, 문제를 보는 각도 자체를 옆으로 비틀어 전혀 다른 진입로를 찾는 사고법. 옳은 답을 향해 똑바로 파고드는 수직적 사고와 짝을 이루며, 답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틀'을 바꾸는 데 초점을 둔다.
너, 어느 고층 호텔에 묵었는데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려서 짜증이 났다고 해 보자. 로비에 그런 불평이 빗발친다. 자, 네가 이 호텔 지배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머릿속에 답이 벌써 줄을 선다. 모터를 더 센 걸로 바꾼다, 엘리베이터를 한 대 더 놓는다, 제어 장치를 손봐 더 빨리 돌린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공사 동안 손님은 더 불편하다. 이 답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 전부 '엘리베이터를 빠르게 만든다'는 한 줄 위에 서 있다. 너는 지금 그 줄 위에서 위로 아래로만 답을 찾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어느 호텔에서 이 문제를 풀어낸 방법은, 그 줄을 통째로 벗어난 데 있었다. 엘리베이터 옆 벽에 큼지막한 거울을 달았다. 그게 전부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동안 거울에 비친 자기 매무새를 보고 넥타이를 고치느라 바빠졌고, 불평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누구도 엘리베이터를 1초도 빠르게 만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바로 봐 둬라. 모든 정상적인 답은 '느리다'를 '빠르게'로 고치려 했다. 그런데 거울은 문제를 다시 정의했다. 손님이 진짜로 괴로운 건 느린 속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히 기다리는 그 시간'이라는 것. 문제의 정의가 바뀌니 답이 통째로 다른 동네에서 튀어나왔다. 이게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다. 똑바로 파고들어 풀리지 않는 문제는, 답을 더 세게 미는 게 아니라 옆으로 비껴서 문제 자체를 다른 각도로 다시 봐야 풀린다는 것.
이 발상에 정식 이름을 붙인 사람은 몰타 출신 의사 에드워드 드 보노다. 1933년에 태어나 의학을 전공하고 의사로 일하던 사람이 어쩌다 평생을 '생각하는 법'에 바쳤다. 그는 사람의 머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고들다 한 가지에 꽂혔다. 우리 뇌는 한번 만든 길로만 자꾸 다니려 한다는 것. 처음 들어온 정보가 한 번 패턴을 만들면, 그다음부터는 비슷한 게 들어올 때마다 그 패턴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효율은 좋지만, 그래서 우리는 늘 다니던 길로만 생각하고 같은 함정에 반복해서 빠진다. 드 보노는 1967년에 낸 책 '수평적 사고의 활용'에서 이 갇힌 길을 옆으로 끊고 다른 줄기로 건너뛰는 일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다. 정면으로 논리를 한 칸씩 밟아 내려가는 보통의 사고를 그는 '수직적 사고'라 부르고, 그 옆으로 비껴 가는 쪽을 '수평적 사고'라 했다. 짝을 이루는 한 쌍으로 세운 거다. 둘 중 어느 게 더 잘난 게 아니라, 땅을 깊이 파는 삽질과 아예 다른 자리에 새로 구멍을 뚫는 일이 다르듯 쓰임이 다른 거다.
여기서 이야기가 멸시로 한 번 꺾인다. 점잖은 학자들은 이걸 한참 깔봤다. 기업 강연장이나 채우는 가벼운 말장난, 머리 좋은 의사가 만든 자기계발 상품쯤으로 여겼다. 엄밀한 증명도 없고, '거울을 달아라' 같은 잔재주나 가르치는 거 아니냐는 거였다. 그럴 만도 했던 게, 드 보노는 일부러 말이 안 되는 도발을 던지라고까지 가르쳤거든. 그는 '포(Po)'라는 단어 하나를 새로 만들어 그 도발의 신호로 삼았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내놓는 말이 아니라 생각을 튕겨 내려고 일부러 던지는 헛소리라는 표시다. 가령 강을 더럽히는 공장 문제를 두고 그는 이렇게 도발했다. '포, 공장이 자기 하류에 있다고 치자.'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이 헛소리를 진지하게 굴려 보면 한 발상이 튀어나온다. 공장이 강물을 끌어 쓰는 취수구를, 자기가 폐수를 버리는 배출구보다 더 하류에 두게 만든다면? 그러면 공장은 제가 버린 더러운 물을 제가 도로 마셔야 하니 알아서 깨끗이 버릴 수밖에 없다. 황당한 한마디에서 출발한 이 생각은 실제로 몇몇 나라에서 법으로 굳어졌다. 학자들이 잔재주라 비웃던 그 옆걸음이, 강물의 운명을 바꾸는 제도가 된 거다.
그러면 이 도구를 가장 거침없이 휘두른 사람은 누구냐. 드 보노 자신이다. 그는 한 권의 책에 멈추지 않고 같은 발상을 거듭 다른 모양으로 깎아 냈다. 머릿속이 자꾸 한 가지 색으로만 생각하는 걸 떼어 놓으려고, 사실만 보는 모자·감정만 보는 모자·위험만 보는 모자처럼 생각의 종류마다 빛깔이 다른 모자를 번갈아 써 보게 하는 '여섯 색깔 모자'라는 방법을 1985년에 내놓았다. 회의 테이블에서 한 번에 한 색으로만 다 같이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가 만든 말 '수평적 사고'는 끝내 영어 사전에까지 올랐다. 누가 원래 쓰던 말을 정리한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지어낸 표현이 온 세상의 공용어가 된 거다. 그가 이룬 것 중 가장 놀라운 건 교실에서 벌어졌다. 그가 설계한 생각 훈련 교재가 여러 나라 학교로 퍼졌고, 베네수엘라는 한때 '생각하는 법'을 수학이나 국어처럼 모든 학교의 정식 과목으로 못 박은 나라가 되기도 했다. 잔재주라 멸시받던 옆걸음이, 한 나라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정규 교과로 올라앉은 셈이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드 보노가 이 모든 걸 세우려면, '머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의 가장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옛 그림에서 머리는 들어온 정보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도서관 같은 것이었다. 그 그림 위에서는 똑바로 논리를 밟는 수직적 사고만이 옳은 길이고, 옆으로 새는 짓은 그저 산만함이다. 그런데 드 보노는 머리를 다르게 봤다. 머리는 들어온 정보가 스스로 길을 내고 패턴을 굳히는, 자기 조직하는 정보 체계라는 것. 이 그림으로 윗단추를 갈아 끼우고 나서야 비로소 수평적 사고가 그냥 산만함이 아니라 꼭 필요한 기술로 자리를 잡는다. 머리가 제 길로만 미끄러지는 기계라면, 그 길을 일부러 옆에서 끊고 다른 줄기로 건너뛰는 의도된 비약이 반드시 있어야 새 생각이 나오니까. 도구 하나가 제값을 받으려고 그 위에 깔린 '마음에 대한 그림'까지 통째로 갈아 치운 사건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문제 앞에서 답을 아무리 세게 밀어도 꼼짝 안 하거든, 그 자리에서 더 힘주지 마라. 십중팔구 너는 지금 한 줄 위에서만 위아래로 답을 찾고 있는 거다. 그 줄을 의심해라. '내가 풀려는 게 정말 이 문제가 맞나, 진짜 괴로운 건 다른 데 있는 거 아닌가' 하고 한 발 옆으로 비껴서 문제를 다시 그려 봐라. 정 막히면 일부러 말 안 되는 한마디라도 던져 놓고 그게 어디로 튀는지 따라가 봐라. 엘리베이터를 빠르게 만드는 대신 거울을 달았던 그 한 수 — 그게 한 몰타 의사가 평생을 바쳐 우리에게 가르친, 옆으로 비껴 가는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