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창의·확산

강제연결 (forced connection)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두 대상을 일부러 한자리에 묶어 놓고, 둘 사이에 억지로라도 연결고리를 찾아내 새로운 발상을 끌어내는 방법. 흔히 풀어야 할 문제와 전혀 무관한 단어나 사물 하나를 무작위로 끌어와 짝지은 뒤, 그 어색한 짝에서 비로소 보이는 의미를 캐낸다. 발상이 익숙한 길로만 미끄러지지 않도록, 생각을 낯선 곳으로 강제로 끌고 가는 장치다.

너, 책상 앞에 앉아 도무지 새 아이디어가 안 나와 본 적 있을 거다. 머리를 쥐어짜는데 떠오르는 건 죄다 어디서 본 듯한 뻔한 것들뿐이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열심히 생각하는데, 생각이 자꾸 늘 다니던 길로만 미끄러진다. 자, 그럼 내가 좀 엉뚱한 걸 시켜 보겠다. 지금 네가 풀어야 할 문제가 뭐든 간에, 눈을 들어 방 안에서 아무 물건이나 하나 골라 봐라. 우산이든 양말이든 전자레인지든 상관없다. 그리고 그 물건과 네 문제를 억지로 한 줄에 묶어라. "내 문제는 전자레인지와 무슨 상관이 있지?" 말도 안 되는 물음 같지? 그런데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짝짓기에서, 혼자 머리 굴릴 땐 죽어도 안 나오던 것이 튀어나온다. 오늘 이야기는, 이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재주를 아예 정식 기술로 깎아 낸 사람들에 관한 거다.

끝까지 한번 따라와 봐라. 네가 감자칩 회사에 다니는데, 칩이 봉지 속에서 자꾸 부서지고 부피만 차지한다는 골칫거리를 받았다고 하자. 보통은 더 두껍게 튀길까, 봉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까, 그 근처에서만 맴돈다. 자, 여기서 강제연결을 건다. 칩과 아무 상관 없는 단어 하나를 무작위로 뽑는다 — '낙엽'이 나왔다 치자. 마른 낙엽 한 더미를 떠올려 봐라. 부피만 차지하고 부스러지기 쉽다, 딱 네 문제 그대로다. 그런데 그 낙엽을 물에 적셔 차곡차곡 누르면? 젖었을 때는 서로 착 달라붙어 납작하게 포개지고, 마르면 그 형태 그대로 굳는다. 부피가 확 줄고 잘 안 부서진다. 여기서 생각이 튄다. 칩도 낱장으로 흩어 두지 말고, 반죽을 똑같은 곡면으로 찍어 차곡차곡 포개 통에 세워 넣으면 어떨까. 똑같이 휜 모양이라 빈틈 없이 포개지고, 곡면이라 눌러도 잘 안 깨진다. 낙엽과 감자칩 — 평생 한자리에 놓일 일 없던 두 물건을 억지로 묶었더니, 거기서 포개 쌓는 칩이라는 발상이 걸어 나온 거다. 이게 강제연결의 알맹이다. 답이 문제 안에 있던 게 아니라, 문제와 무관한 것을 들이대니 비로소 답이 보였다.

이 재주에 처음으로 또렷한 이름과 절차를 붙인 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다. 전해지기로는 찰스 휘팅이라는 사람이 1950년대 후반, 대략 1958년 무렵 '강제연결법'이라는 걸 정리해 내놓았다. 풀어야 할 대상과 아무 관계 없는 물건을 의도적으로 끌어다 억지로 잇는다는, 바로 그 발상이다. 곧이어 윌리엄 J. J. 고든이라는 사람이 이 씨앗을 훨씬 크게 키웠다. 그는 1940년대부터 '대체 발명가의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나'를 파고들던 사람이었는데, 1950년대에 아서 D. 리틀이라는 컨설팅 회사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모아 실제로 발상 훈련을 시켜 봤다. 그 결실을 1961년 '시넥틱스'라는 책으로 묶어 냈다. 시넥틱스란 그리스말로 '서로 무관한 것들을 한데 잇는다'는 뜻이다. 이름부터가 강제연결 그 자체인 셈이다. 고든은 여기에 '포스 핏', 곧 '억지로 끼워 맞추기'라는 단계를 정식으로 박아 넣었다. 전혀 안 어울리는 비유와 문제를 일부러 충돌시켜, 거기서 튀는 불꽃을 받아 적게 한 거다.

그런데 이 어수선해 보이는 기술이 왜 통하는지, 그 밑바닥을 가장 깊이 파고든 사람은 따로 있다. 헝가리 태생의 작가이자 사상가 아서 케스틀러다. 그는 1964년 '창조 행위'라는 두툼한 책에서, 인간이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내는 순간을 한 단어로 꿰뚫었다 — '이연연상', 영어로 바이소시에이션이다. 말장난도, 과학적 발견도, 예술도, 그가 보기엔 전부 같은 일이었다. 평소엔 따로 놀던 두 개의 사고 틀, 서로 무관하던 두 세계가 갑자기 한 점에서 겹쳐지는 순간, 바로 거기서 웃음이 터지고 발견이 일어나고 시가 태어난다는 거다. 농담이 우리를 웃기는 이유도, 멀쩡히 다른 줄 알았던 두 맥락이 마지막 한 마디에서 덜컥 포개지기 때문이라고 그는 봤다. 강제연결이 손으로 더듬어 하던 일에, 케스틀러가 비로소 '이게 창조의 정체다'라는 깊은 이름표를 달아 준 셈이다. 휘팅이 절차를 짰고 고든이 훈련법으로 깎았다면, 케스틀러는 그 모든 게 왜 먹히는지의 뿌리를 밝혔다.

이 도구를 가장 알뜰히 써먹은 건 고든의 시넥틱스 모임 자신이었다. 그들은 발명을 운에 맡기지 않고 회의실에서 공장처럼 찍어 내려 했다. 핵심 구호가 둘이었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라. 늘 보던 물건을 일부러 처음 보는 것처럼 비틀어 엉뚱한 것과 짝지으면, 너무 익어 버려 보이지 않던 새 길이 드러난다는 거다. 실제로 이들은 기업의 골치 아픈 제품 문제들을 이 강제연결 회의에 걸어 풀어냈고, 시넥틱스는 이후 수십 년간 광고, 디자인, 신제품 기획 현장에서 발상을 쥐어짜는 표준 도구로 퍼져 나갔다. 혼자 천재의 영감을 기다리는 대신, 여럿이 둘러앉아 무관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부딪쳐 발상을 양산하는 길 — 그걸 처음으로 작동하는 절차로 만들어 보인 게 이들의 성취다.

이 사고법은 끝내 컴퓨터 안으로도 걸어 들어갔다. 기계에게 새것을 만들라 시키려면, 결국 누군가 '새롭다는 게 뭐냐'를 먼저 못 박아야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창조를 이렇게 다시 규정했다 — 창조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이 아니라, 이미 있는 조각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일이라고. 발상을 '조합의 공간을 뒤지는 탐색'으로 본 거다. 이 윗단추를 갈아 끼우고 나니 길이 열렸다. 이른바 유전 알고리즘이라는 게 그렇다. 생물이 짝짓기로 두 부모의 유전자를 섞어 자식을 만들듯, 기계가 두 개의 후보 답을 토막 내 서로 엇갈려 이어 붙인다. 이 '교차'라는 연산이야말로 강제연결을 기계가 무수히 반복하는 꼴이다. 무관해 보이는 두 조각을 억지로 결합해 새 후보를 쏟아 내고, 그중 쓸 만한 놈만 살아남겨 다시 섞는다. 요즘은 한발 더 나가,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한자리에 떠올리지 못할 만큼 멀리 떨어진 개념들끼리 일부러 뒤섞어, 인간의 상상 바깥에 있던 조합을 기계가 길어 올리게 하는 연구까지 있다. 여기서 네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기계가 창의를 흉내 내게 하려면, '창조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의 가장 윗단추부터 '신비로운 영감'에서 '조합의 탐색'으로 갈아 끼워야 했다. 강제연결은 바로 그 새 윗단추 위에서, 사람이 손으로 더듬던 짝짓기를 기계가 초당 수백만 번 해치우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니 너가 책상 앞에서 뻔한 생각만 맴돌아 답답하거든, 더 세게 쥐어짜지 마라. 쥐어짤수록 생각은 늘 가던 길로만 깊이 팬다. 차라리 눈을 들어 네 문제와 아무 상관 없는 것 하나를 무작위로 끌어와라. 사전을 펴 손가락 닿는 단어든, 방 안에 굴러다니는 물건이든 좋다. 그리고 그 둘을 억지로 한 줄에 묶고 물어라 —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결이 있지?" 그 어색함을 견디며 끝까지 답을 짜내는 순간, 혼자선 죽어도 못 가던 자리에 발상이 와 있을 거다. 그게 한 무리의 발명가들이 회의실에서 깨우친, 무관한 것을 억지로 잇는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