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창의·확산

자유연상 (free association)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옳고 그름이나 논리, 부끄러움의 검열 없이 떠오르는 순서 그대로 줄줄이 이어 가는 사고법. 한 단어가 다음 단어를, 그 단어가 또 다음을 끌어내며 사슬처럼 번져 나가게 둔다. 의식이 통제를 늦추는 그 틈으로, 평소엔 가려져 있던 연결과 속마음이 드러난다고 본다.

너, 누가 갑자기 '바다' 하면 머릿속에 뭐가 떠오르냐고 물었다고 해보자. '소금'이 떠오르고, 거기서 '엄마'가 튀어나오고, 또 거기서 난데없이 '빚'이라는 단어가 솟구친다. 너는 당황한다. 바다랑 빚이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얼른 그 단어를 입 밖에 내기 전에 삼켜 버린다. 우리는 늘 이렇게 산다. 떠오르는 것의 절반은 말이 안 된다며, 부끄럽다며, 쓸데없다며 문턱에서 쳐낸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정반대다. 그 쳐내는 손을 아예 묶어 버리는 기술, 떠오르는 건 뭐든 검열 없이 줄줄이 흘러나오게 두는 기술에 관한 거다. 얼핏 게으른 헛소리 같지만, 놀랍게도 이건 사람 마음을 들여다본 가장 정밀한 도구 중 하나였다.

이 이야기를 흔히들 정신분석의 소파에서 시작하지만, 진짜 첫 삽은 엉뚱하게도 측정에 미친 한 영국 신사였다. 다윈의 사촌이자 손대는 학문마다 숫자를 들이댔던 프랜시스 골턴. 그는 1879년에 묘한 자기실험을 한다. 단어 목록을 만들어 놓고, 하나를 보면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 두 개를 붙잡되, 떠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을 크로노그래프라는 정밀 시계로 잰 거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연상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초 단위 자를 들이댄 사건이었다. 그가 거기서 발견한 건 더 섬뜩했다. 무심코 떠올랐다 싶은 단어들이 알고 보니 자기도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깊은 과거에서 자꾸 길어 올려지더라는 것. 아무렇게나 튀어나오는 줄 알았던 연상이 실은 제멋대로가 아니었다. 골턴은 이걸 두고 마음의 지하실을 엿본 기분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생각의 윗단추가 한 번 갈린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머릿속 잡념을 그냥 의미 없는 소음, 정신의 부스러기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골턴의 자를 거치고 나니 의심이 든다. 이 떠도는 연상들이 혹시 무작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단단히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 이 의심을 붙잡고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 스위스의 젊은 정신과 의사 카를 융이다. 그는 20세기 초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병원에서, 환자에게 백 개의 단어를 하나씩 던지고 떠오르는 첫 단어를 즉각 말하게 했다. 그러면서 반응 시간을 재고, 손에는 피부의 미세한 전기 변화를 잡아내는 검류계까지 물렸다. 그랬더니 어떤 특정 단어 앞에서만 유독 대답이 늦어지고, 말을 더듬고, 손바닥 전기가 튀더라는 것. 융은 그 머뭇거림이 가리키는 자리에 본인도 모르게 묻어 둔 아픈 응어리가 있다고 봤고, 거기에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유연상이 마음속 지뢰의 위치를 알려 주는 탐지기가 된 순간이다.

이 도구를 가장 멀리, 가장 대담하게 휘두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지크문트 프로이트다. 그는 한때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 속을 캐내려 했지만 영 신통치 않자, 방법을 통째로 갈아엎는다. 환자를 소파에 눕히고 딱 하나만 주문했다.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아무리 사소하고 부끄럽고 말이 안 돼도 한 톨도 빼지 말고 다 말하라. 그는 이걸 정신분석의 '근본 규칙'이라 못 박았다. 검열만 풀면, 환자가 애써 피하려는 그 지점으로 연상이 저절로 흘러가 막힌 매듭을 드러낸다고 본 거다. 여기에 이 사고법의 핵심 역설이 박혀 있다. 아무렇게나 떠들라고 풀어 주는 그 순간, 정작 튀어나오는 건 가장 제멋대로인 게 아니라 가장 강하게 정해진 것, 네가 가장 누르고 있던 바로 그것이라는 거다. 자유롭게 두니까 오히려 속이 들통난다.

그런데 이 도구는 치료실 담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1919년, 앙드레 브르통이라는 청년이 전쟁통의 신경과 병동에서 정신질환자들의 두서없는 말을 받아 적다가 무릎을 친다. 검열을 끄고 손이 가는 대로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면, 의식이 다듬지 못한 날것의 이미지가 쏟아진다는 것. 그는 동료와 함께 펜을 멈추지 않고 갈겨쓴 글을 '자기장'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1920년에 내놓았고, 이게 초현실주의 문학의 첫 작품이 된다. 마음을 고치려던 연상의 기술이, 이번엔 아무도 본 적 없는 이미지를 길어 올리는 창작의 펌프로 변신한 거다. 같은 한 가지 원리 — 검열을 끄면 숨은 것이 흘러나온다 — 가 의사 손에서는 진단이 되고 시인 손에서는 예술이 됐다.

이 머릿속 기술이 기계와 만난 자리도 짚고 가자. 융이 단어에 대한 반응 시간과 손의 전기 변화를 함께 쟀던 그 장치, 거짓말이나 동요 앞에서 몸이 자기도 모르게 반응한다는 그 발상이 훗날 거짓말 탐지기, 곧 폴리그래프의 직계 조상이 된다. 마음속 연상을 숫자로 잡아내려던 시도가 기계에 그대로 이식된 셈이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 두자. 자유연상의 알맹이, 그러니까 검열을 풀고 떠오르는 대로 잇는다는 그 행위 자체는 끝내 사람의 머릿속에 남았지 컴퓨터가 통째로 대신해 주지는 못했다. 기계가 가져간 건 연상의 '결과'를 측정하는 부분이었지, 연상하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니었던 거다.

그러니 너가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머리가 꽉 막혔을 때, 혹은 네 속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도무지 짚이지 않을 때, 이렇게 해봐라. 펜을 들고, 옳고 그름도 부끄러움도 다 내려놓고, 지금 떠오르는 단어 하나에서 그다음, 또 그다음으로 손을 멈추지 말고 이어 가라. '바다'에서 튀어나온 그 난데없는 '빚'을 삼키지 말고 종이에 적어라. 그 엉뚱한 연결이야말로, 네가 평소에 문턱에서 쳐내느라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너의 진짜 속일 때가 많다. 검열을 끄는 그 잠깐이, 막힌 곳을 뚫는 가장 게을러 보이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