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법 (combinatorial / Llull)
새로운 아이디어를 영감이 내려오기만 기다리지 않고, 가진 요소들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짝지어 가며 만들어 내는 발상법. 개념을 더 쪼갤 수 없는 기본 부품들로 분해한 뒤, 그 부품들을 빠짐없이 재조합해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경우의 수까지 길어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너, 머릿속이 텅 빈 채로 새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던 밤이 한 번쯤 있었을 거다. 책상 앞에 앉아 '뭔가 기발한 게 떠올라라' 하고 기다리는 밤. 그런데 영감이라는 놈은 부른다고 오는 법이 없지. 그러다 너는 슬그머니 의심하게 된다. 새로운 생각이라는 게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사실은 이미 내 손안에 있던 조각들을 남들과 다르게 이어 붙인 것뿐일까. 오늘 이야기는, 이 의심을 칠백 년 전에 먼저 품고서 아예 '생각을 만들어 내는 기계'를 손으로 깎은 한 수도사에 관한 거다.
대략 13세기 끝자락, 지중해 마요르카 섬에 라몬 룰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젊을 땐 궁정의 한량이었다가 중년에 회심해 수도사가 된, 좀 별난 이력의 인물이다. 그가 평생 매달린 꿈은 묘했다. 말로 설득해도 안 통하는 신학 논쟁을, 누구든 돌리기만 하면 참인 결론이 굴러 나오는 '장치'로 끝장내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가 1305년 무렵 완성한 것이 『아르스 마그나』, 큰 기술이라는 뜻의 책이다. 생긴 건 우습도록 단순하다. 종이로 만든 동심원 바퀴 여러 장을 실로 꿰어 겹쳐 놓은 것. 안쪽 바퀴엔 선함, 위대함, 영원함 같은 기본 개념들을 글자로 적어 칸칸이 박아 넣었다. 바퀴를 한 칸씩 돌리면 안쪽 글자와 바깥쪽 글자가 새로운 짝을 이룬다. 선함과 위대함, 영원함과 선함, 돌릴 때마다 한 번도 따로 생각해 본 적 없는 개념의 조합이 눈앞에 척척 나타난다. 룰은 이 발상을 맨바닥에서 지어낸 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슬람 점성가들이 글자를 시계처럼 바퀴에 둘러 박고 돌려서 점괘를 뽑던 '자이르자'라는 도구가 있었는데, 룰이 거기서 힌트를 얻었으리라 보는 사람이 많다. 어느 쪽이든 그가 한 일의 핵심은 분명하다. 생각을 더 쪼갤 수 없는 부품으로 분해하고, 그 부품을 기계적으로 다시 섞어 사람 머리가 게을러 놓치는 경우의 수까지 빠짐없이 끄집어낸 것.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이 이야기의 가시가 박혀 있다. 룰의 동시대인들에게 이건 신성한 진리를 종이 바퀴 따위로 점치겠다는 불경하고 우스꽝스러운 짓으로 보였다. 더 뼈아픈 건, 한참 뒤의 천재마저 그를 반쯤 비웃었다는 거다. 17세기 독일의 라이프니츠 — 미적분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이다 — 는 겨우 열아홉 살이던 1666년에 『조합술에 관하여』라는 글을 내놓는데, 거기서 그는 룰의 아이디어에 깊이 빚지면서도 한 가지를 매섭게 꼬집었다. 룰이 바퀴에 박아 넣은 기본 개념들의 목록이 제멋대로라는 것. 무엇을 더 쪼갤 수 없는 부품으로 삼을지가 자의적이면, 아무리 부지런히 돌려 봐야 나오는 건 신뢰할 수 없는 잡동사니라는 지적이다. 이 비판이 핵심이다. 조합법의 힘과 함정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부품 목록이 좋으면 보석이 쏟아지고, 부품 목록이 엉성하면 쓰레기가 쏟아진다. 라이프니츠는 그래서 더 멀리 갔다. 모든 개념을 정말로 더 쪼갤 수 없는 원자까지 분해해 각각에 수를 매기고, 그러면 모든 추론과 발견이 곱셈과 나눗셈처럼 계산이 될 거라 꿈꿨다. 논쟁이 벌어지면 칼을 뽑는 대신 '자, 계산해 봅시다'라고 말하면 끝나는 세상. 그 꿈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지만, 훗날 모든 것을 0과 1로 셈하는 디지털 세계의 먼 밑그림이 되었다.
룰의 종이 바퀴가 비웃음을 벗고 실무의 연장으로 다시 선 건 20세기 와서다. 캘리포니아의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 — 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다는 암흑물질을 처음 들이민 그 괴짜 — 가 1940년대에서 60년대 사이, 룰의 발상을 '형태분석 상자'라는 실용 도구로 벼려 냈다. 방식은 룰과 똑같다. 풀어야 할 문제를 독립된 축들로 쪼갠다. 예를 들어 새 운송수단을 설계한다 치자. 동력원이라는 축엔 전기·휘발유·증기·압축공기를, 바퀴 수라는 축엔 둘·셋·넷·여섯을, 가는 환경이라는 축엔 도로·물·눈·공중을 적는다. 그다음 각 축에서 하나씩 뽑아 격자의 모든 칸을 빠짐없이 채운다. 압축공기로 가는 여섯 바퀴 눈길 차량, 증기로 가는 세 바퀴 수상 탈것 — 사람이라면 상식에 막혀 거들떠도 안 봤을 칸까지 강제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이 격자의 노림수다. 머리가 좋아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빠짐없이 훑었기에 놓친 칸이 없어서 답이 나온다. 츠비키는 이걸로 제트엔진과 로켓 추진 방식의 가능한 형태들을 체계적으로 뒤져 실제 항공우주 설계에 써먹었다.
마지막 반전은 역시 컴퓨터다. 룰이 손으로 한 칸씩 돌리던 일을 기계는 초당 수억 번씩 돌린다. 약을 설계할 때 기본 분자 조각들을 컴퓨터가 가능한 조합으로 마구 이어 붙여 후보 물질 수백만 개를 하룻밤에 길어 올리는 일, 부품 목록을 주면 기계가 그 조합을 끝없이 교배하고 변이시키며 사람은 상상 못 한 구조를 진화시켜 내는 설계 알고리즘 — 그 바탕에 흐르는 건 룰의 바퀴와 똑같은 발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기계에게 조합을 맡기려면, 생각의 가장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라이프니츠가 칠백 년 전에 짚은 바로 그 지점 — 무엇을 더 쪼갤 수 없는 기본 부품으로 삼을 것인가, 어떤 조합을 좋다고 판정할 것인가 — 을 사람이 먼저 한 치 빈틈 없이 정해 주지 않으면, 기계는 그저 쓰레기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양산할 뿐이다. 조합의 속도는 기계가 거저 주지만, 무엇을 조합할지 그 부품 목록의 질만큼은 끝까지 사람의 몫으로 남았다. 룰의 자의적 목록을 라이프니츠가 꼬집은 그 오래된 숙제가, 형태만 바꿔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가 다시 텅 빈 책상 앞에서 새 아이디어를 기다리게 되거든, 영감이 내려오길 빌지 마라. 대신 종이를 꺼내 네 문제를 서너 개의 독립된 축으로 쪼개라. 이 서비스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대가를 받고 — 각 축에 떠오르는 선택지를 죄다 적은 다음, 한 칸씩 강제로 짝지어 격자를 채워라. 평소 같으면 상식에 걸려 거들떠도 안 봤을 칸에서 네가 찾던 한 수가 튀어나온다. 새로운 생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조각을 남들이 게을러서 안 돌려 본 각도로 돌려 본 데서 나온다. 그게 마요르카의 한 수도사가 종이 바퀴에 담아 남긴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