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창의·확산

오블리크 스트래티지 (oblique strategies)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미리 적어둔 짧은 지시문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지금 붙들고 있던 정면 돌파를 일부러 비껴가게 만드는 발상 도구다. 카드마다 '네 실수를 숨은 의도로 받들어라' 같은 수수께끼 같은 한 줄이 적혀 있어, 곧이곧대로 따르려 애쓰는 과정에서 막힌 길의 옆구리가 열린다.

너, 녹음실 한가운데서 사흘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해보자. 곡은 분명 거의 다 됐는데 무언가 어긋나 있고, 고치면 고칠수록 더 평범해진다. 다들 지쳐서 말이 없다. 이럴 때 보통 사람은 더 세게 정면으로 민다. 더 오래 앉아 있고,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똑같은 방식을 더 많이 반복한다. 그런데 바로 그 '더 똑같이'가 너를 가두고 있는 거라면? 막힌 벽을 정면에서 밀 게 아니라, 누가 옆에서 네 어깨를 툭 쳐서 엉뚱한 데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 거라면?

1970년대 초, 영국에 그런 막막함을 자주 겪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음악을 만지던 브라이언 이노, 다른 한 명은 그림을 그리던 피터 슈미트였다. 둘은 서로 모르는 채로 각자, 작업이 막힐 때 스스로에게 건넬 짧은 명령 같은 문장들을 종이쪽지에 적어 모으고 있었다. 이노는 스튜디오에서, 슈미트는 화실에서. 그러다 둘이 자기들이 거의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1974년 말 두 사람의 쪽지를 한 벌의 카드로 합쳤다. 이듬해인 1975년 초에 그것을 세상에 내놨다. 백 장 남짓한 카드에, 손으로 서명한 한정판 오백 벌. 이름은 '오블리크 스트래티지', 곧 비스듬한 전략이었다. 부제가 더 솔직하다. '백 가지가 넘는, 곱씹어볼 만한 딜레마들.' 답을 주는 카드가 아니라, 너를 다른 딜레마로 옮겨놓는 카드라는 뜻이다.

여기서 너는 의심이 들 거다. 무작위로 뽑은 한 줄짜리 지시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그 의심이 정확히 이 도구의 급소다. 카드의 힘은 내용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네가 그 말을 진지하게 따르기로 한 순간 네 머리가 지금까지의 사고 회로를 강제로 벗어나는 데서 나온다. 이를테면 '네 실수를 숨은 의도로 받들어라' 같은 카드를 뽑으면, 방금 지우려던 그 엇나간 음, 그 잘못 칠해진 자국이 갑자기 후보가 된다. 우연이 의도의 자리로 승격되는 거다.

이 카드가 가장 빛난 자리는 1970년대 후반, 데이비드 보위가 베를린에서 만든 석 장의 앨범 작업이었다. 이노가 그 세션에 카드를 들고 들어갔다. 전해지는 한 장면이 이 도구의 정체를 통째로 보여준다. 한 기악곡을 두고 둘이 각자 카드를 뽑았는데, 보위가 뽑은 건 '차이를 강조하라'였고 이노가 뽑은 건 '모든 걸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라'였다. 정반대 지시 두 장이 한 곡 위에서 동시에 작동한 거다. 한 사람은 벌리고 한 사람은 붙이고. 보통 같으면 둘 중 하나가 이겨야 끝나는데, 카드가 명령권을 쥐고 있으니 누구도 자기 취향을 고집할 명분이 없었다. 그 팽팽한 모순 위에서 곡이 만들어졌다. 같은 작업에서 어떤 곡은 연주자들이 서로 악기를 바꿔 들게 했고, 어떤 곡은 옛 코드를 거꾸로 뒤집어 깔았다. 전부 정면 돌파였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옆길들이다.

카드를 만든 두 사람 중 슈미트는 1980년 초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 바람에 초기 카드 묶음은 한동안 구하기 힘든 귀물이 됐다. 그런데 이 도구는 종이를 벗어나서 오히려 더 멀리 갔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 문장들을 웹페이지와 앱으로 옮겨, 버튼 한 번에 한 장이 무작위로 뽑히게 만들었다. 카드 한 벌을 살 필요도, 손에 쥐고 섞을 필요도 없어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생긴다. 원래 이 카드의 핵심 중 하나는 종이를 직접 만지고 뒤집는 그 물리적 의식, 우연에 몸을 맡기는 그 작은 굴복이었는데, 디지털로 옮기자 그 무게가 가벼워졌다. 클릭은 너무 쉬워서,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 뽑게 된다. 그러면 우연에 졌다기보다 우연을 쇼핑한 셈이 되고, 도구의 본래 약효가 빠진다. 그러니 디지털판을 쓰더라도 규칙 하나는 사람 머릿속에 남겨둬야 한다. 한 번 뽑았으면 그 한 장과 끝까지 씨름한다는 규칙 말이다.

그러니 너가 정면으로 사흘을 밀어도 벽이 꿈쩍 않거든, 더 세게 밀지 마라. 막히기 전에 미리, 평소의 너라면 절대 안 할 법한 짧은 지시문 여남은 개를 적어 한쪽에 모아둬라. 그리고 진짜 막힌 순간, 그중 하나를 눈 감고 뽑아 그 말이 멍청해 보여도 일단 진지하게 따라라. 이기려고 뽑는 게 아니라, 네가 못 보던 옆길을 우연에게 대신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