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 구하기 (seeking counsel)
자문 구하기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뢰할 만한 외부의 견해를 일부러 찾아 듣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야에 갇히지 않기 위해 더 잘 아는 사람, 다른 자리에서 보는 사람의 판단을 빌려 자기 생각의 빈틈을 메운다. 최종 결정의 책임은 여전히 듣는 사람에게 남는다는 점에서 결정을 떠넘기는 것과는 다르다.
너, 큰 결정 하나를 앞에 두고 밤에 잠이 안 와 본 적 있을 거다. 이직을 할까, 이 사람과 평생을 갈까, 가진 돈을 여기 다 걸까.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을 백 번 굴려도 답이 안 난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튿날 친구를 만나 그 고민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혹은 먼저 그 길을 가 본 선배가 딱 한마디 던지는 순간, 안개가 걷힌다. 정보가 새로 추가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은 자기 머릿속만 들여다보면 같은 자리를 맴돈다. 자기 눈으로는 자기 뒤통수를 못 보니까. 그래서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결정 앞에서 일부러 바깥의 입을 빌리는 습관을 만들어 왔다.
이게 얼마나 오래된 일이냐면, 기원전 8세기경부터 그리스 사람들은 큰일을 앞두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았다. 전쟁을 할지, 식민시를 어디에 세울지, 왕이 누구를 후계로 삼을지. 무녀 피티아의 모호한 신탁을 들으러 폴리스의 사절들이 줄을 섰다. 흥미로운 건, 신전 입구에 새겨졌다는 그 유명한 문구 '너 자신을 알라'다. 바깥의 지혜를 구하러 온 자에게 신전이 던진 첫 마디가, 정작 네 한계부터 인정하라는 말이었다. 자문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거기 있다.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자각이 없으면,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이야기가 이 함정을 정확히 보여 준다. 헤로도토스가 전하기로,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를 칠지 델포이에 물었고 '강을 건너면 대제국이 무너진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신이 페르시아의 멸망을 약속했다 믿고 전쟁을 일으켰다. 무너진 대제국은 자기 나라였다. 자문을 구하는 것과, 듣고 싶은 답만 골라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그는 나라를 잃고서야 알았다. 외부의 견해를 빌리되 그것을 내 욕망의 거울로 쓰면, 차라리 안 묻느니만 못하다.
신탁이 신비의 옷을 벗고 사람의 일이 된 자리에 철학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신전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는 답을 주는 자가 아니라 묻는 자였다. 누구든 붙잡고 '정의가 뭐냐, 용기가 뭐냐' 캐물으며, 상대가 스스로 자기 생각의 빈틈을 발견하게 했다. 자문의 가치는 답을 받아 베끼는 데 있지 않고, 다른 머리에 내 생각을 부딪쳐 보는 마찰 그 자체에 있다는 걸 그가 보여 줬다. 이 정신은 동양에서도 또렷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위징이라는 신하를 두고, 듣기 싫은 직언을 일부러 청해 들었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득실을 안다.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가장 잘 다스린 군주가, 자기에게 반대하는 입을 옆에 두는 것을 통치의 핵심으로 삼은 것이다.
시대가 한참 내려와 이 지혜는 한 가지 날카로운 발견에 부딪힌다. 같은 편끼리 모인 자문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1961년 케네디 정부가 쿠바의 피그스만을 침공했다 참담히 실패한 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그 회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고들었다. 똑똑한 참모들이 둘러앉았는데도, 화목한 분위기를 깨기 싫어 아무도 의심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이걸 집단사고라 이름 붙였다. 그래서 그가 권한 처방이 묘하다. 회의 때 한 사람에게 일부러 '반대자'역할을 맡겨, 모두가 좋다 할 때 굳이 흠을 찾아 따지게 하라는 것이다. 가만 보면 이건 천 년 전 위징을 제도로 만든 것이다. 자문은 따뜻한 동의가 아니라 건강한 반대를 들으려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여기서 하나의 방법으로 굳었다.
그러니 너가 정말 중요한 결정 앞에 서거든, 네 편을 찾아가 위로받지 말고, 너와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보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가라. 그리고 '내 말이 맞지?'가 아니라 '내가 뭘 놓쳤지?'라고 물어라. 단, 마지막에 결정의 버튼을 누르는 손은 끝까지 네 것으로 남겨 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