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협업 (adversarial collaboration)
서로 반대 결론을 믿는 두 연구자가 싸움을 멈추는 대신, 어느 쪽이 옳은지 가려 줄 실험을 함께 설계하고 그 결과에 미리 승복하기로 약속하는 방식이다. 각자 따로 논문을 내 서로를 반박하는 평범한 학술 논쟁과 달리, 시작 단계에서 '무엇이 나오면 누가 진 것인지'를 합의해 두는 점이 핵심이다.
너, 학회 뒤풀이 자리에서 같은 분야 사람과 멱살만 안 잡았지 거의 그 직전까지 간 적 있나. 한 사람은 사람의 직관이 의외로 영리하다 하고, 한 사람은 직관이란 게 편향 덩어리라 한다. 둘 다 데이터가 있고, 둘 다 똑똑하고, 둘 다 물러설 생각이 없다. 보통 여기서 끝난다. 각자 집에 가서 자기 실험만 또 한 번 돌리고, 자기 결론을 재확인하고, 상대 논문은 방법이 틀렸다고 한 줄 깎아내린다. 십 년이 지나도 둘은 그대로다. 학계가 굴러가는 흔한 풍경이고, 사실 좀 한심한 풍경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그 한심함을 못 견딘 한 사람이 있었다. 대니얼 카너먼. 나중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인간 판단의 오류를 평생 파헤친 그 사람이다. 그가 보기에 심리학 논쟁은 결판이 안 났다. 영원히 안 났다. 왜냐하면 진 쪽이 결과를 인정하는 장치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누구든 자기에게 불리한 실험은 '설계가 잘못됐다'며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카너먼은 거꾸로 갔다. 너랑 나랑 결론이 정반대지, 좋다, 그러면 우리가 같이 실험을 짜자. 어떤 결과가 나오면 내가 졌다고 인정할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너가 졌다고 인정할지, 데이터를 보기 전에 둘이 합의해서 못 박아 두자.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같이 한 논문에 싣자, 내 마음에 안 드는 결과여도. 이게 그가 이름 붙인 적대적 협업이다. 적이면서 협업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으로 들리는 그 방법.
실제로 그는 이걸 자기 몸으로 했다. 가장 유명한 예가 앞 문단의 그 멱살 직전 풍경 그대로다. 카너먼은 평생 인간 직관을 의심한 쪽이었고, 게리 클라인은 소방관·간호사 같은 전문가의 직관이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걸 현장에서 증명해 온, 정반대 진영의 사람이었다. 둘은 몇 년에 걸쳐 마주 앉아, 자기 결론을 입증할 무기를 모으는 대신 '대체 직관은 언제 믿을 만하고 언제 못 믿을 데인가'를 같이 따졌다. 그 결과로 2009년에 낸 공동 논문 제목이 더없이 정직하다. '직관적 전문성의 조건: 의견 일치에 이르지 못한 기록'. 끝까지 모든 지점에서 합의하진 못했다는 걸 제목에 박아 넣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미합의의 기록 속에서, 둘 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경계선이 드러났다. 규칙이 안정적이고 피드백이 빠른 환경에서는 직관이 믿을 만하고, 무질서한 환경에서는 자신감만 부풀 뿐 빗나간다는 것. 혼자 자기 가설만 검증했다면 절대 안 보였을 선이다. 적을 옆에 앉히니, 내가 혼자서는 절대 안 던졌을 까다로운 질문이 실험 설계 안으로 강제로 들어온 것이다.
여기서 핵심을 놓치지 마라. 이 방법이 작동하는 진짜 이유는 순서에 있다. 데이터를 보기 전에 패배의 조건을 정한다는 것. 일단 결과를 보고 나면 인간의 머리는 귀신같이 변명을 짜낸다. 유리하면 받아들이고 불리하면 흠을 잡는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그러니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 양쪽 다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일 때, 미리 '이게 나오면 내가 틀린 거다'에 서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후의 자기합리화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시간순으로 봉쇄하는 장치다. 그래서 이건 단순한 토론 예절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못 속이게 묶어 두는 설계다.
이 발상은 학회를 넘어 번졌다. 오늘날 심리학에서 연구자가 실험 전에 가설과 분석 방법을 공개 등록하고 그 약속을 못 바꾸게 하는 사전등록 제도, 서로 다른 입장의 여러 팀이 같은 가설을 동시에 검증하는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가 다 같은 정신의 자식들이다. 다만 적대적 협업 자체는 컴퓨터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알고리즘이 두 인간의 자존심을 합의시켜 주진 못한다. 이건 끝까지 사람이 사람과 마주 앉아, 지기로 미리 약속하는 용기로만 굴러간다.
그러니 너가 누군가와 도무지 결판이 안 나는 의견 충돌에 빠지거든, 한 번 더 너 입장을 설명하려 들지 마라. 대신 이렇게 물어라. 어떤 결과가 나오면 내가 틀린 거고, 어떤 결과가 나오면 네가 틀린 건지, 지금 둘이 정하자. 그 한 문장을 양쪽이 결과를 보기 전에 합의하는 순간, 싸움은 비로소 앎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