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협상 (principled negotiation)
협상에서 서로 내건 입장 대신 그 밑에 깔린 실제 이해관계를 파고들어, 양쪽이 함께 이득을 보는 해법을 찾는 방법이다. 누가 더 세게 버티느냐의 줄다리기를 객관적 기준에 따른 문제 해결로 바꾼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고, 입장이 아니라 이익에 집중하며, 결정 전에 선택지를 넓히라는 네 가지 원칙으로 정리된다.
너, 자매 둘이 부엌에서 오렌지 하나를 두고 다투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둘 다 그 오렌지를 갖겠다고 한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칼을 들고 와 반으로 뚝 잘라 하나씩 나눠 준다. 공평해 보이지? 그런데 한 아이는 받은 반쪽의 과육을 먹고 껍질을 버린다. 다른 아이는 과육을 버리고 껍질만 강판에 갈아 케이크에 넣는다. 한 아이는 즙을 원했고, 한 아이는 껍질을 원했던 거다. 만약 누군가 처음에 왜 오렌지가 필요한지 한 번만 물었다면, 한 아이는 과육을 통째로, 다른 아이는 껍질을 통째로 가져가 둘 다 두 배로 만족했을 거다. 반으로 자른 '공평한' 해법은 사실 둘 다 절반밖에 못 가진 패배였던 셈이다.
여기서 함정의 정체를 보자. 두 아이가 입으로 외친 건 '오렌지를 달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원한 건 즙과 껍질이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였다. 입장은 충돌하지만 이해관계는 충돌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툴 때 거의 항상 입장끼리 부딪힌다. 내가 100만 원 부르면 너는 60만 원 부르고, 우리는 80만 원 어디쯤에서 서로 진 기분으로 악수한다. 이게 흥정이고, 흥정은 본질적으로 누가 더 뻔뻔하게 버티고 더 잘 속이느냐의 시합이다.
이 함정에 정확한 이름과 출구를 붙인 건 1970년대 말 하버드 로스쿨의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였다. 두 사람은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제 노사 분규와 국제 분쟁을 수없이 들여다본 끝에 1981년 한 권의 책을 냈다. 제목이 '예스를 이끌어내는 협상법(Getting to Yes)'이다. 그들이 말한 핵심은 단순하다. 입장 위에서 줄다리기하지 말고, 그 밑에 깔린 이해관계로 내려가라. 그리고 그 이해관계를 더 많이 채우는 객관적 해법을 함께 만들어라. 그들은 이걸 원칙에 입각한 협상이라 불렀고, 네 기둥으로 세웠다. 사람과 문제를 떼어 놓을 것. 입장이 아니라 이익에 집중할 것. 결정하기 전에 선택지를 여럿 만들 것. 누구의 고집이 아니라 시장가격이나 법, 전례 같은 객관적 잣대로 판가름할 것.
말로는 쉽지만 진짜 위력은 사람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 드러났다.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두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점령한 시나이의 일부라도 갖겠다고 했고, 이집트는 단 한 뼘도 못 내준다고 했다. 지도 위에 선을 어디 긋느냐의 입장 싸움으로는 영원히 답이 없었다. 카터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양측을 가두고 중재하면서 비로소 질문이 바뀌었다. 너희는 왜 그 땅이 필요한가. 파고드니 이스라엘이 진짜 원한 건 영토가 아니라 국경 너머에서 탱크가 밀려오지 않는다는 안전이었다. 이집트가 진짜 원한 건 땅 자체가 아니라, 수천 년 자기 영토였던 곳에 대한 주권의 회복이었다. 안전과 주권은 충돌하지 않는다. 그래서 답이 나왔다. 시나이 전체를 이집트 주권으로 돌려주되, 그 땅 대부분을 비무장지대로 묶어 이스라엘 국경에 위협이 닿지 않게 한 거다. 양쪽 다 진짜 원하던 걸 가졌다. 피셔와 유리가 책에서 즐겨 든 바로 그 사례다.
이 틀에는 힘의 불균형에 대비하는 장치도 함께 들어 있다. 상대가 나보다 힘이 셀 때를 대비해 '협상 결렬 시 내가 택할 최선의 대안', 곧 배트나(BATNA)를 미리 정해 두라는 거다. 같은 책에서 이미 제시된 개념인데, 협상장의 헛된 자존심 싸움 대신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내게 무엇이 남는지를 알면 휘둘리지 않는다는 발상이다. 이렇게 다듬어진 방법은 하버드를 넘어 기업 인수합병, 인질 협상, 이혼 조정, 심지어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거래 조건을 맞춰 가는 전자상거래 시스템 설계에까지 스며들었다.
그러니 너가 누군가와 팽팽하게 맞서거든, 상대가 외치는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 그 위에서 밀고 당기지 마라. 한 걸음 내려가 물어라. 당신은 왜 그것이 필요한가. 거기서 갈라지는 이해관계를 찾으면, 자르지 않고도 오렌지를 통째로 둘이 나눠 가질 길이 거의 늘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