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회적·집단적 숙의

형식 토론 / 디베이트 (formal debate)

형식 토론은 하나의 논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 두 편이 정해진 규칙과 시간 안에서 번갈아 주장하고 반박하며 겨루는 말의 시합이다. 이긴 쪽은 더 옳은 사람이 아니라 그날의 규칙 안에서 더 잘 입증하고 더 잘 무너뜨린 쪽이다. 진실을 합의로 찾는 게 아니라, 양쪽에서 동시에 두들겨 약한 주장을 골라내는 장치다.

너, 혼자 어떤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어 본 적 있지. 머릿속에서는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누가 정면으로 "그거 틀렸어, 왜냐하면" 하고 받아치는 순간, 네가 빠뜨린 구멍이 갑자기 환해진다. 형식 토론이라는 건 바로 그 순간을 일부러, 규칙을 정해서, 시간을 재 가며 만들어 내는 장치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자기 편만 들어 줄 변호사밖에 안 사는데, 토론장에는 검사도 같이 앉혀 두는 셈이다.

이게 어디서 왔느냐. 놀랍게도 아주 오래됐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정이라는 게 처음 굴러가기 시작했을 때다. 민회에서 손 들어 정책을 정하고, 법정에서 시민이 직접 변론했으니, 말로 설득하는 기술이 곧 권력이자 생존이었다. 그때 프로타고라스라는 사람이 도발적인 말을 남겼다. 어떤 문제든 서로 맞서는 두 개의 주장이 성립한다고. 그래서 소피스트들은 학생에게 같은 사안을 찬성으로 한 번, 반대로 한 번 변론해 보게 시켰다. 디소이 로고이, '두 갈래의 말'이라는 연습이다. 너라면 어떻겠나. 어제 죽도록 옹호하던 입장을 오늘은 내 손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처음엔 괴롭지만, 그걸 해 보고 나면 비로소 상대가 어디를 찌를지 미리 보인다.

여기서 긴장이 하나 선다. 소크라테스는 이 기술을 미워했다. 양쪽 다 그럴듯하게 변론하는 자는 진실을 찾는 게 아니라 약한 주장을 강한 척 꾸미는 사기꾼이라고. 실제로 소피스트 중엔 돈 받고 궤변을 파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토론술에는 처음부터 의심이 따라붙었다. 말 잘하는 게 옳은 거냐. 이 물음에 형식 토론은 영리하게 답했다. 한 사람한테만 맡기면 사기지만, 똑같이 유능한 반대편을 같은 무대에 세우고 같은 시간을 주면, 둘이 서로의 거짓을 벗겨 낸다. 약한 논거는 상대의 반박을 못 견디고 무너진다. 그러니 토론은 누가 진실을 아느냐가 아니라, 양쪽에서 동시에 두들겨 더 잘 버틴 쪽을 골라내는 시험인 거다.

이 시험에 단단한 형식을 입힌 건 한참 뒤다. 중세 대학으로 가면 '디스푸타티오'라는 게 학문의 중심에 있었다. 교수가 명제를 걸면 한쪽이 반론을 펴고, 다른 쪽이 답하고, 마지막에 스승이 판가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 방대한 책이 통째로 이 구조다. 먼저 자기 결론에 반대되는 주장부터 가장 세게 정리해 늘어놓고, 그다음에 답한다. 자기 입장의 가장 강한 적을 제 손으로 세워 두고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근대로 넘어와 의회와 대학 동아리에서 규칙이 더 촘촘해졌다.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유니언, 그 형식이 식민지를 따라 퍼지며 오늘날의 학생 토론 대회가 됐다. 찬성·반대를 동전 던지기로 배정하고, 입론과 반론과 최종발언의 순서와 분초를 못 박고, 심판은 누가 옳은 주제냐가 아니라 누가 규칙 안에서 더 잘 입증하고 더 잘 무너뜨렸느냐로만 채점한다.

가장 잘 쓴 장면을 하나 들자면, 1858년 미국 일리노이의 들판이다.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링컨과 더글러스가 일곱 번을 맞붙었다. 한 사람이 한 시간을 말하면 상대가 한 시간 반을 받고, 다시 처음 사람이 삼십 분으로 닫는다. 노예제라는, 나라를 두 쪽 낼 문제를 수천 명이 들판에 서서 몇 시간씩 들었다. 링컨은 그날 의석을 졌다. 하지만 그 토론에서 더글러스를 몰아붙여 받아낸 말 한마디가 남부와 북부를 갈라놓았고, 이 년 뒤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토론은 그 자리의 승패를 넘어, 무엇이 쟁점인지를 온 나라 앞에 또렷이 세워 놓는 일을 했다.

그러니 너가 어떤 사안을 두고 마음이 한쪽으로만 기운다고 느끼거든, 혼자 결론 내리지 말고 일부러 반대편 변호사를 한 명 세워라. 네가 직접 그 역을 맡아도 좋다. 네 생각의 가장 강한 적을 네 손으로 가장 세게 만들어 보고, 그게 버티는지 두들겨라. 무너지면 버리고, 버티면 그제야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