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회적·집단적 숙의

협의체 / 카운슬 (council)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차례로 의견을 내고, 그것을 견주고 다듬어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의사결정 구조다. 한 명의 머리가 아니라 여러 머리가 같은 문제를 동시에 비추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자문 기구, 평의회, 위원회 같은 이름으로 정치와 종교, 학문 전반에 퍼져 있다.

너, 부족 하나를 떠올려 봐라. 큰일이 생겼다. 가뭄이 들어 어느 골짜기로 옮겨갈지 정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잘못 정하면 모두가 굶는다. 이럴 때 사람들은 본능처럼 한 가지를 한다. 나이 든 이들, 사냥을 잘 아는 이들, 물길을 기억하는 이들을 불러 모아 둥글게 앉힌다. 둥글게. 이게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줄을 세우면 맨 앞이 생기고 맨 뒤가 생기지만, 원에는 끝이 없다. 누구도 남의 등 뒤에 숨지 않고, 누구도 혼자 위에 서지 않는다. 한 사람이 말하면 나머지가 듣고, 그가 끝나면 옆 사람이 받는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또 돈다. 이 단순한 둘러앉기가, 인류가 혼자서는 못 풀 문제를 푸는 가장 오래된 장치다.

이름을 붙여 보자. 협의체, 카운슬이다. 라틴어 콘킬리움에서 왔는데, 그 말 자체가 '함께 불러 모음'이라는 뜻이다. 누가 발명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둘러앉아 의논하는 일은 글자가 생기기도 전부터 있었으니까. 다만 그걸 또렷한 제도로 처음 굳힌 자리를 우리는 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는 불레라는 오백인 평의회가 있었다. 제비뽑기로 시민 오백을 뽑아 한 해 동안 나랏일을 미리 추렸다. 한 사람도 권력을 독차지하지 못하게, 매일 의장을 새로 뽑고 그 임기는 단 하루였다. 로마에는 원로원이 있었다. 세나투스, '늙은이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나이가 곧 경험이고, 경험이 곧 판단의 무게라고 본 거다.

그런데 둘러앉기만 한다고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니다. 여기서 진짜 긴장이 생긴다. 사람이 모이면 목소리 큰 자가 분위기를 휘어잡고, 먼저 말한 자의 말에 다들 끌려간다. 합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 생각에 모두가 고개만 끄덕인 것일 수 있다. 협의체의 역사는 이 함정과 싸워 온 역사다. 가장 멀리, 가장 깊이 싸운 자들이 누구였는지 아느냐.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일어나 곧 아메리카 식민지로 건너간 퀘이커 교도들이었다. 이들은 모임에서 표결을 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다수가 소수를 누르는 걸 거부했다. 대신 한 사람이 말하면 잠시 침묵하고, 그 말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다음 사람이 입을 열었다. 끼어들기도, 반박을 위한 반박도 없었다. 그렇게 의견이 한 곳으로 천천히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합의가 안 나면 결론을 미뤘다. 표결의 51대 49가 남기는 진 자의 앙금을, 이들은 아예 만들지 않으려 했다. 이 방식이 오늘날 '센스 오브 더 미팅', 모임 전체의 뜻을 읽어 낸다는 숙의 기법의 뿌리가 된다.

이 둥근 탁자의 힘이 가장 극적으로 쓰인 자리를 하나만 더 보자. 1945년 이후, 세계는 또 한 번의 큰 전쟁을 막을 장치를 짜야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다. 이름에 그대로 평의회, 카운슬이 박혀 있다. 강대국들을 한 탁자에 둘러앉히고, 쏘기 전에 먼저 말하게 했다. 완벽하진 않았다. 거부권 때문에 자주 막혔다. 하지만 그 막힘조차도, 총을 들기 전에 말로 먼저 부딪치게 한다는 둘러앉기의 원리가 작동한 흔적이다.

그러니 너가 혼자 풀기 버거운 결정을 만나거든, 답을 아는 한 사람을 찾지 말고 둥근 탁자를 차려라. 서로 다른 곳을 보는 머리들을 불러 앉히고, 한 명씩 끝까지 말하게 하고, 먼저 말한 자의 말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다음을 열어라. 결론은 가장 큰 목소리가 아니라, 모두를 통과하고도 살아남은 생각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