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회적·집단적 숙의

시민배심 / 합의회의 (citizens' jury)

제비뽑기로 뽑힌 평범한 시민 십수 명이 며칠간 전문가의 증언을 듣고, 서로 캐묻고 따진 끝에 하나의 권고나 결론으로 모이는 숙의 방식. 표결로 다수의 선호를 세는 대신, 충분한 정보를 받은 보통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면 어떤 판단에 이르는지를 보려는 장치다.

너, 어려운 결정 하나를 두고 사람들 의견을 모은다고 해 보자. 흔한 방법은 둘이다. 여론조사를 돌려 찬반 비율을 재거나, 전문가 몇을 불러 결론을 받거나. 그런데 여론조사로 잡히는 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30초 만에, 머리 꼭대기에서 즉흥으로 내뱉은 반응이다. 정작 그 문제를 며칠 붙들고 자료를 뒤지고 양쪽 말을 다 들었다면 같은 답을 했을까. 거의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가에게 통째로 맡기자니, 전문가는 자기 분야는 밝아도 '이걸 감수하면서까지 그걸 얻을 가치가 있나' 같은 가치의 저울질에서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오늘 이야기는, 이 둘 사이에 끼워 넣은 제3의 장치에 관한 거다.

발상의 씨앗은 법정에서 왔다. 영미의 형사 배심을 떠올려 봐라. 살인 같은 중대한 일을, 법을 한 줄도 모르는 길거리의 보통 사람 열둘에게 맡긴다. 왜? 검사와 변호사가 며칠 동안 증거를 펼쳐 보이고 증인을 세우고, 그걸 다 들은 다음 배심원들끼리 방에 들어가 끝장 토론을 한다. 정보를 충분히 받고 한자리에 모여 따지기만 하면, 전문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도 꽤 미더운 판단에 이른다는 오래된 믿음이 거기 깔려 있다. 1970년대 초,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서로 모른 채 같은 생각을 했다. 그 법정의 지혜를 정책 결정에 옮겨 오면 어떨까. 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네드 크로스비로, 1974년 미네소타에 제퍼슨 센터를 세우고 이 방식에 '시민배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한 사람은 독일의 페터 디넬로, 거의 같은 무렵 같은 골격의 장치를 만들어 '계획세포'라 불렀다. 한쪽은 배심을, 한쪽은 살아 있는 세포 한 조각을 은유로 골랐을 뿐, 속은 같았다.

작동 방식은 단순하면서 까다롭다. 먼저 인구를 닮도록 — 나이, 성별, 지역, 학력이 사회의 축소판이 되게 — 제비뽑기로 시민 열다섯 안팎을 뽑는다. 손드는 사람이 아니라 뽑힌 사람이라는 게 핵심이다. 목소리 큰 활동가나 이해당사자가 몰려와 판을 흔드는 걸 막아야 하니까. 이들을 며칠 모아 놓고, 입장이 갈리는 전문가들을 차례로 불러 증언을 듣게 한다. 시민들은 마음껏 캐묻는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숙의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한 가지. 표결로 머릿수를 세는 게 목적이 아니다. 서로 이유를 내놓고, 그 이유가 버티는지 같이 두들겨 보고, 처음 생각이 틀렸다 싶으면 고쳐 가며, 가능하면 함께 납득할 결론으로 좁혀 가는 것 — 그게 숙의다. 들어올 때의 선호를 세는 게 아니라, 충분히 알고 나면 선호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는 장치다.

이 도구가 장난감이 아님을 세상에 보여 준 무대가 둘 있다. 하나는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다.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꿀지를 정치인이 아니라 제비뽑기로 뽑은 시민 백예순 명에게 통째로 맡겼다. 그 '시민의회'는 1년 가까이 공부하고 토론한 끝에 새 투표제를 설계해 주민투표에 부쳤다. 정치인은 자기 당선에 유리한 제도를 고르게 마련이니, 이 일만큼은 이해관계 없는 시민에게 맡기는 게 외려 깨끗하다는 논리였다. 더 멀리 간 무대는 아일랜드다. 낙태는 그 가톨릭 국가에서 누구도 입에 올리기 무서운 화약고였고, 정치인들은 수십 년을 회피했다. 그래서 2016년, 제비뽑기로 뽑은 시민 아흔아홉 명에게 그 뜨거운 감자를 넘겼다. 시민의회는 주말마다 모여 의사, 법학자, 윤리학자, 당사자들의 증언을 듣고 숙의한 끝에 헌법의 낙태 금지 조항을 풀자고 권고했다. 정부는 그 권고대로 2018년 국민투표를 열었고, 국민은 압도적으로 그 길을 택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차분히 끝까지 따져 낸 결론이, 한 나라가 수십 년 묵힌 매듭을 푸는 열쇠가 된 거다.

그러니 너가 답하기 어려운 물음, 특히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사람들의 뜻을 묻고 싶거든, 아무나 붙잡고 즉석에서 찬반을 묻지 마라. 그 답은 무지의 메아리일 뿐이다. 대신 인구를 닮게 몇을 골라, 양쪽 자료를 충분히 쥐여 주고, 한자리에 앉혀 서로 캐묻게 한 뒤 답을 받아라. 사람들이 모르고 내지른 소리가 아니라, 알고 나서 다듬어 낸 판단 — 들어야 할 건 늘 그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