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시장 (prediction market)
예측시장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두고 사람들이 돈을 걸어 사고파는 시장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1, 일어나지 않으면 0을 지급하는 계약의 가격이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의 집단 추정치가 된다. 흩어진 사람들의 믿음과 사적 정보를 가격이라는 하나의 숫자로 모으는 장치다.
너, 친구 열 명한테 다음 달 비가 올지 물어본다고 해보자. 다섯은 온다 하고 다섯은 안 온다 한다. 그럼 너는 어쩔 거냐. 그냥 반반이라 치고 끝낼 거냐. 그런데 그 열 명 중에 한 명은 농사를 지어서 하늘을 평생 읽어 온 노인이고, 또 한 명은 그냥 아무 말이나 던진 애라고 해보자. 두 사람의 한 표가 똑같이 한 표로 세어지는 게 영 억울하지 않냐. 머릿속으로는 알지. 더 잘 아는 사람 말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걸. 그런데 누가 더 잘 아는지를 네가 어떻게 알아내느냐. 그게 문제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다 자신 있게 말하니까.
여기서 누군가 묘한 꾀를 낸다. 말로 묻지 말고, 돈을 걸게 하자. 비가 오면 1000원 주는 표를 만들어서, 사고팔게 풀어 두자. 그 노인은 진짜로 비가 올 것 같으면 그 표를 비싸게라도 사들일 거다. 자기 돈이 걸려 있으니까. 아무 말이나 던지던 애는 막상 자기 지갑이 열리는 순간 슬그머니 발을 뺀다. 그렇게 한참 사고팔다 보면 그 표의 시세가 한 700원쯤에서 멈춘다. 그게 무슨 뜻이냐. 이 무리 전체가 비 올 확률을 한 70퍼센트로 본다는 뜻이다. 입이 아니라 지갑이 말하게 만든 거다. 아는 사람은 크게 걸어 가격을 끌고, 모르는 사람은 알아서 빠진다. 누가 전문가인지 따로 가려낼 필요도 없다. 돈이 알아서 가중치를 매긴다.
이 물건의 이름이 예측시장이다. 뿌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뉴욕 월스트리트 한복판에는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거액이 오가는 베팅 시장이 버젓이 돌아갔다. 여론조사라는 게 아직 변변히 없던 시절이라, 신문들은 오히려 이 베팅 시세를 보고 누가 이길지 점쳤다. 경제사학자 폴 로드와 코울먼 스트럼프가 뒷날 그 기록을 파 보니, 1884년부터 1940년 사이 열다섯 번의 대선 중 열한 번을 이 도박판이 맞혔을 만큼 적중률이 높았다. 그러다 과학적 여론조사가 등장하고 도박이 단속당하면서 한동안 묻혔다가, 1988년 아이오와 대학의 경제학자들이 이걸 학문의 실험실로 끌어올린다. 학생들에게 진짜 돈을 조금씩 쥐여 주고 선거 결과 계약을 사고팔게 한 아이오와 전자시장, 그게 현대 예측시장의 출발점이다. 결과는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래켰다. 수백 명 학생의 베팅이 빚어낸 가격이, 비싼 돈 들인 갤럽 여론조사보다 자주 더 정확했다.
왜 이게 먹히는지를 가장 멀리까지 밀어붙인 사람이 경제학자 로빈 핸슨이다. 그는 시장이란 게 결국 흩어진 정보를 가격 하나로 빨아들이는 기계라는 점에 사로잡혔고, 사람이 적게 모여도 작동하도록 가격을 자동으로 매겨 주는 방식까지 고안했다. 그가 던진 더 큰 물음은 이거였다. 우리가 투표나 회의로 정하는 일들을, 차라리 시장에 물어보면 안 되나. 핸슨이 미국 국방부와 함께 테러 발생 가능성에 베팅하는 시장을 설계하려다 정치권에서 끔찍하다고 두들겨 맞아 무산된 일도 있다. 끔찍하긴 해도, 발상의 칼날만큼은 분명했다.
이게 컴퓨터를 만나면서 진짜로 펼쳐진다. 시장이 돌아가려면 수많은 호가를 실시간으로 맞춰 줘야 하는데, 그건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안 되고 알고리즘이라야 한다. 핸슨이 만든 그 자동 가격 결정식이 코드로 돌면서, 오늘날 폴리마켓 같은 온라인 예측시장에선 선거든 전쟁이든 누가 상을 탈지든 수백만 명이 24시간 베팅하고, 그 시세가 곧바로 세상의 확률 추정치로 인용된다. 구글이나 여러 회사가 사내에 예측시장을 깔아, 신제품이 제때 나올지를 임원 회의가 아니라 직원들 베팅으로 가늠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각의 윗단추 하나가 바뀐 거다. 진실을 알려면 권위자에게 묻는다는 오래된 틀에서, 진실은 이해관계를 건 다수가 가격으로 합의한다는 틀로.
그러니 너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두고 사람들의 말이 엇갈려 갈피를 못 잡거든, 누구 말이 맞나 따지느라 진을 빼지 말고 이렇게 물어라. 그래서 너, 그 말에 얼마 걸 수 있어. 지갑을 여는 순간, 진심과 허풍이 갈리고 흩어진 앎이 숫자 하나로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