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consensus)
여럿이 함께 결정할 때, 다수결처럼 표를 세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더는 막아서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반대를 끌어내 풀어 가며 합의에 이르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모두가 똑같이 찬성하는 만장일치와는 다르다. 적극 찬성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걸 막지 않겠다'는 동의의 문턱만 넘으면 함께 간다.
너, 열두 명이 둘러앉은 방을 하나 떠올려 봐라. 모두가 한 사건을 두고 한 사람의 운명을 정해야 하는데, 규칙이 하나 있다. 열두 명 전부가 같은 쪽으로 손을 들지 않으면 아무 결론도 못 낸다. 처음엔 열한 명이 유죄라 하고 단 한 사람만 고개를 젓는다. 다수결이라면 11대 1, 게임 끝이다. 그런데 이 방에서는 그 한 명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짜증을 내면서도 그에게 묻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 한 사람은 자기도 확신은 없다고, 다만 한 사람을 죽이기 전에 이야기 정도는 나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답한다. 그렇게 한 명씩, 자기가 미처 보지 못한 의심을 꺼내 놓는다. 이게 시드니 루멧의 1957년 영화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이 그리는 풍경인데, 픽션이긴 해도 영미 배심제가 실제로 굴러가는 원리를 정확히 비춘다. 만장일치가 나올 때까지 반대를 끝까지 들어 풀어내는 것. 표를 세는 게 아니라 반대가 사라질 때까지 다투는 것.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사고법, 합의가 바로 이 모양이다.
합의의 핵심은 묘하다. 모두를 열렬한 찬성으로 끌어오는 게 아니다. '나는 이 결정에 적극 찬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로막지도 않겠다'는 자리까지만 데려오면 된다. 막아서는 사람, 그러니까 거부권을 쥔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이 곧 결정의 순간이다. 그래서 합의를 잘 굴리는 집단은 회의 끝에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막을 사람?"을 묻는다. 침묵이 흐르면 통과다.
이걸 가장 오래, 가장 진지하게 갈고닦은 사람들이 17세기 북아메리카의 퀘이커교도다. 그들은 표결을 거부했다. 다수가 소수를 눌러 이기는 순간 공동체에 패배자가 생기고, 패배자는 결국 떠나거나 곪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센스 오브 더 미팅', 모임 전체에 가라앉은 한 가지 뜻이 떠오를 때까지 침묵하고 또 발언했다. 한 사람이 끝내 마음에 걸리는 바를 거두지 못하면, 그 사안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며 다음으로 미뤘다. 이 느린 방식이 놀랍게도 노예제 폐지에서 빛을 냈다. 퀘이커 공동체는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대신 수십 년에 걸쳐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이 돌아설 때까지 기다렸고, 그렇게 18세기에 자기들 안에서 노예 소유를 거의 완전히 걷어냈다. 누구도 억지로 진 사람이 없으니, 돌아선 마음은 다시 뒤집히지 않았다.
그 정신은 20세기 들어 합의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운동과 협동조합, 반핵 시위대 속으로 번졌고, 그 끝에서 뜻밖의 곳에 가 닿았다. 인터넷의 뼈대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세계다. 인터넷 기술 표준을 정하는 모임은 흩어진 수천 명이 한 방에 모일 수 없는데도 표결을 마다하고 '러프 컨센서스', 대략의 합의라는 규칙을 세웠다. 다수가 옳다고 머릿수를 세는 게 아니라, 남은 반대가 충분히 다뤄졌는가를 본다. 게다가 이들은 손을 들어 세는 대신 회의장에서 다 같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어떤 안에 찬성하면 함께 허밍하고 반대하면 또 허밍해서, 그 소리의 크기를 귀로 가늠하는 것이다. 머릿수를 또렷이 세지 않으려는 그 우스꽝스러운 장치 안에, 진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합의의 오래된 고집이 그대로 들어 있다. 표준 하나에 한 곳이라도 결사반대하면 결국 그쪽은 따로 놀아 인터넷이 두 갈래로 쪼개질 판이었기에, 사람들은 다수결이라는 익숙한 윗단추를 풀고 합의라는 단추로 갈아 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너가 여럿이 모여 무언가를 정해야 하는데 누군가 끝내 고개를 젓고 있거든, 그를 표 하나로 세어 묻어 버리려 들지 마라. 그 반대야말로 네가 아직 못 본 구멍이다. "왜 막느냐"를 끝까지 캐물어 그 한 가지를 풀어라. 모두가 박수 칠 필요는 없다. 더는 막을 사람이 없어지는 그 조용한 순간, 거기서 결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