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철학적 방법

반성적 평형 (reflective equilibrium)

보편 원리와 개별 사안에 대한 직관적 판단이 어긋날 때, 어느 한쪽을 무조건 떠받들지 않고 양쪽을 번갈아 손질해 서로 들어맞는 안정된 상태로 데려가는 사고법. 원리가 직관을 다듬기도 하고 직관이 원리를 고쳐 쓰게도 하며, 그 왕복이 멎어 더 흔들 데가 없을 때를 균형점으로 본다.

너한테 그럴듯한 규칙이 하나 있다고 해 보자.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선택이 옳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원칙이지. 그런데 누가 이런 경우를 들이민다. 멀쩡히 살아 있는 환자 한 명을 데려다 장기를 떼면, 그걸 기다리던 다섯 명이 산다. 다섯이 하나보다 많으니, 네 규칙대로라면 그 한 명을 갈라야 한다. 너는 즉각 '그건 아니지' 한다. 머리로 따진 규칙과 가슴이 내지르는 거부가 정면으로 들이받는 거다. 자, 이때 너는 뭘 버리겠는가. 규칙을 지키자고 사람을 가르겠는가, 아니면 멀쩡한 규칙을 통째로 내던지겠는가. 오늘 이야기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제3의 길에 관한 거다.

이 길의 골자는 이렇다. 규칙도 함부로 믿지 말고, 네 직관도 함부로 믿지 마라. 둘이 어긋나면 둘 다 의심하라. 장기 사례 앞에서 너는 규칙을 손본다 —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되, 누군가를 한낱 도구로 쓰는 짓은 빼고'라고 단서를 붙인다. 그러면 다섯을 살리자고 하나를 가르는 결론은 사라진다. 거꾸로 어떤 직관은 규칙 앞에서 도리어 무너져야 한다. 한때 사람들은 신분이 낮은 자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직관적으로' 느꼈지만,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하라는 원리가 그 낡은 직감을 틀렸다고 판정해 끝내 갈아엎었다. 어떤 때는 직관이 규칙을 고치고, 어떤 때는 규칙이 직관을 고친다. 이 왕복을 더는 흔들 데가 없을 때까지 밀고 가, 원리와 판단이 한 몸처럼 들어맞는 자리 — 거기가 평형점이다.

이 왕복운동을 처음 또렷한 방법으로 그려 보인 사람은 미국의 논리학자 넬슨 굿먼이다. 그가 1955년 책에서 붙든 물음은 윤리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귀납을 어떻게 정당화하나'였다. 우리는 무슨 권리로 어떤 추론은 옳고 어떤 추론은 틀렸다 하는가. 굿먼의 답이 묘했다. 추론의 규칙은 우리가 실제로 받아들이는 추론들과 들어맞을 때 정당해지고, 거꾸로 개별 추론은 그 규칙에 어긋나면 버려진다. 규칙과 사례가 서로를 고쳐 가며 합의에 이른다는 것. 정작 '반성적 평형'이라는 이름은 그가 붙이지 않았다. 그 이름을 달아 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름을 짓고, 이 도구를 가장 크게 휘두른 사람이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다. 그는 1971년 '정의론'에서 굿먼의 왕복운동을 윤리와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와 '반성적 평형'이라 불렀다. 그가 이 도구로 한 일이 어마어마했다. 사회의 정의로운 규칙이 무엇일지 머리로 세운 원리와, 노예제는 그르다 같은 우리가 도저히 못 버리는 개별 확신을 양쪽에 놓고, 둘이 맞아떨어질 때까지 번갈아 깎아 정의의 두 원칙을 빚어냈다. 20세기 정치철학의 지형을 통째로 바꾼 그 작업의 엔진이 바로 이 평형 맞추기였다. 뒤이어 노먼 대니얼스가 1979년에 이 틀을 한 겹 넓혔다. 원리와 직관 둘만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이고 사회에서 도덕이 무슨 구실을 하는가 같은 배경 이론까지 셋을 함께 맞춰야 한다고 본 거다. 이걸 '넓은 반성적 평형'이라 부른다. 좁게는 원리와 직관의 줄다리기, 넓게는 그 뒤에 깔린 세계관까지 끌어들인 줄다리기로 자라난 셈이다.

이 오래된 철학의 방법이 뜻밖에 요즘 기계 윤리의 현장에서 다시 불려 나온다. 인공지능에 가치를 입힐 때, 사람들은 추상적인 큰 원칙을 한 줌 던져 주고는 수많은 개별 사례에서 그게 어떻게 굴러야 하는지를 일일이 맞춰 가며 양쪽을 거듭 고쳐 쓴다. 연구자들은 이 작업을 대놓고 '반성적 평형'이라 부르며 끌어다 쓴다. 다만 여기엔 생각의 윗단추 하나가 걸려 있다. '옳음이란 무엇인가'를,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한 번 세우면 끝나는 것으로 보는 한 이 방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절대 기준도 없이 오직 믿음들이 서로 얼마나 잘 들어맞느냐로 정당함을 따지는 관점 — 그 윗단추로 갈아 끼우고 나서야 비로소 이 왕복이 돌아간다.

그러니 너가 그럴듯한 원칙 하나와, 그 원칙이 도저히 못 견디게 만드는 구체적 사례 사이에 끼이거든, 둘 중 하나를 서둘러 죽이지 마라. 원칙을 지키려 직관을 짓밟지도 말고, 사례 하나에 멀쩡한 원칙을 내던지지도 마라. 양쪽을 책상에 나란히 올려놓고 물어라. 이 원칙을 어디까지 손봐야 저 사례를 품을 수 있나, 아니면 저 사례가 실은 내가 버려야 할 낡은 직감은 아닌가. 그 왕복이 더는 삐걱대지 않고 멎는 자리, 거기가 네가 지금 디딜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