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archaeology)
땅을 파는 고고학이 아니라, 한 시대가 무엇을 '말할 수 있었는지'를 떠받친 보이지 않는 규칙을 캐내는 사고법이다. 어떤 생각이 옳은가를 묻기 전에, 애초에 그 생각이 떠오를 수 있게 한 시대의 무의식적 격자를 발굴한다. 사상사를 위인의 발견들로 잇는 대신, 시대마다 끊겨 있는 앎의 지층을 들춰낸다.
너, 도서관에서 우연히 펼친 어떤 책 한 줄을 읽다가 웃음이 터진 적 있냐. 그냥 웃긴 게 아니라, 웃는 동안 발밑이 살짝 꺼지는 그런 웃음 말이다. 1960년대 초 파리의 한 학자가 정확히 그런 일을 겪었다. 그는 보르헤스가 인용한 어느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를 읽고 있었다. 거기서 동물은 이렇게 나뉜다. 황제에게 속한 것, 박제된 것, 길들여진 것, 젖먹이 돼지, 인어, 전설적인 것, 길 잃은 개,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것, 멀리서 보면 파리처럼 보이는 것. 너도 지금 헛웃음이 나지. 그런데 왜 웃기지. 이 목록의 어디가 틀렸는지 너는 한 줄도 짚지 못한다. 다만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묶을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안다. 바로 그 웃음의 정체를 끝까지 따라간 사람이 미셸 푸코다.
푸코가 깨달은 건 이거였다. 너를 웃게 한 건 그 분류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의 머릿속에 이미 '사물을 이렇게 묶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격자가 깔려 있어서다. 그 격자는 네가 만든 게 아니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네 시대가 깔아 둔 것이고, 너는 그 위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포유류와 어류를 같은 칸에 넣지 못하는 건 네 논리력이 아니라 네 시대의 무의식이다. 그는 이 시대마다 다른 앎의 밑바닥 질서를 에피스테메라 불렀다. 그리고 그것을 캐내는 자기 작업에 묘한 이름을 붙였다. 고고학.
왜 하필 고고학이냐. 보통 우리는 사상의 역사를 위인들의 릴레이로 배운다. 누가 무엇을 발견했고 그 다음 사람이 그걸 이어받아 더 발전시켰다는 식으로. 푸코는 그 매끈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한 시대의 앎과 그 다음 시대의 앎 사이에는 계단이 아니라 단층이, 끊긴 지층이 있었다. 그러니 발굴자처럼 땅을 수직으로 파 내려가, 각 지층이 어떤 규칙 위에 서 있었는지를 드러내야 한다는 거다. 누가 옳았나를 묻지 않는다. 그 시대에는 도대체 무엇이 '말해질 수 있는 것'으로 허락되었나, 무엇은 애초에 생각조차 될 수 없었나를 묻는다.
이 발굴은 책상물림의 말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1961년 광기의 역사에서 이걸 실제로 파 보였다. 우리는 미친 사람을 병자로 여겨 치료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만, 푸코는 그게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특정 지층에서 솟아난 약속임을 보였다. 17세기 유럽에서 어느 순간 광인, 부랑자, 빈민, 게으른 자가 한꺼번에 수용소에 갇히는 '대감금'이 일어났다. 광기는 그때 의학의 문제이기 전에 도덕과 노동의 문제로 분류되었다. 즉 '미쳤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시대의 격자에 따라 다른 칸에 들어갔던 거다. 네가 지금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그 선조차, 알고 보면 어느 지층에서 그어진 역사적 산물이라는 얘기다.
이 사고법이 가장 빛난 자리는 1966년 말과 사물이었다. 거기서 그는 17세기 중엽과 19세기 초, 두 번의 거대한 단절을 발굴해 낸다. 압권은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를 해부하는 첫 장이다. 화가가 그리는 캔버스의 앞면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정작 그려지는 왕과 왕비는 뒤편 흐릿한 거울 속에만 잡힌다. 푸코는 이 한 장면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자리가 통째로 재배치되는 한 시대의 질서를 끄집어낸다. 흥미로운 건 그가 죽 파 내려가 19세기 지층에 닿았을 때다. 거기서 비로소 '인간'이라는 것이 앎의 중심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인간이란 영원한 주제가 아니라 최근에야 발명된 형상이고, 바닷가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처럼 지층이 또 바뀌면 지워질 수도 있다고 그는 적었다. 1969년 지식의 고고학에 와서 그는 이 발굴 절차를 하나의 방법으로 벼려 낸다. 처음엔 직관과 도발로 시작한 작업을, 무엇을 캐고 무엇은 캐지 않는지까지 규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너가 '이건 너무 당연하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만나거든, 그 자리에서 삽을 들어라.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한 칸 밑을 파고 물어라. 누가, 언제, 무슨 규칙 아래 이걸 '당연한 것'으로 묻어 두었나. 가장 자명해 보이는 바닥이야말로, 누군가 깔아 둔 가장 깊은 지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