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철학적 방법

계보학 (genealogy)

어떤 가치나 개념이 마치 영원한 진리이거나 당연한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이 실은 특정한 시대·이해관계·힘의 관계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졌음을 그 기원을 거슬러 캐내 드러내는 비판적 방법. '이것이 옳은가'가 아니라 '이 옳음은 대체 어디서, 누구의 필요에서 생겨났는가'를 묻는 데 핵심이 있다.

너, '착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안다고 자신하지? 약한 사람을 돕고, 화를 참고, 욕심을 누르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 너무 당연해서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잠깐. 누가 정했지? 왜 하필 '참고 양보하고 자기를 낮추는 것'이 착함의 이름을 얻고, '당당하고 강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것'은 어쩐지 나쁜 쪽으로 밀려났을까. 마치 처음부터 하늘에 새겨져 있던 것처럼 구는 이 가치가, 사실은 어느 시점에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오늘 이야기는, 가장 신성해 보이는 가치일수록 그 출생의 비밀을 캐물은 한 위험한 철학자에 관한 거다.

19세기 후반 독일에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어서 대학교수가 됐다가 건강이 무너져 그만두고, 알프스와 이탈리아의 하숙집을 떠돌며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는 와중에 글을 썼다. 그가 1887년에 낸 얇은 책 한 권의 제목이 바로 '도덕의 계보'다. 계보(系譜)란 본래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적은 족보를 말한다. 그가 한 일이 정확히 그거였다. 도덕이라는 것의 족보를, 그 출생기록을 캐내려 한 것이다. 당시에도 도덕의 기원을 따지는 사람들은 있었다. 다만 그들은 '쓸모'에서 답을 찾았다. 남을 돕는 행동이 결국 이로우니까 사람들이 그걸 좋다고 부르게 됐다는 식으로. 니체는 그 설명을 비웃었다. 어떤 것이 지금 어떤 쓸모로 쓰인다는 사실과, 그것이 애초에 왜 생겨났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게 그의 칼날이었다. 지금의 용도를 보고 기원을 짐작하지 마라. 그건 게으른 착각이다.

그래서 그는 말 자체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여러 언어에서 '좋다(good)'는 말이 처음엔 도덕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데 주목했다. 그것은 본래 '고귀한', '힘 있는', '높은 신분의' 같은 뜻이었다. 다시 말해 강하고 잘난 자들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우리는 좋은 자들'이라 불렀고, 그들과 다른 약하고 비천한 무리를 '나쁜(저급한) 자들'이라 부른 데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짓밟히고 원한을 품은 약자들이 마음속에서 가치를 통째로 뒤집어 버렸다는 게 니체의 도발적인 가설이다. 강함·당당함·자기긍정을 '악'으로 낙인찍고, 자기들의 처지인 온순함·인내·자기억제를 '선'으로 끌어올리는 거대한 뒤집기. 그는 이 마음의 운동을 '르상티망', 곧 삼키지 못한 원한이라 불렀다. 네가 옳다고 믿는 그 착함의 목록이, 어쩌면 이긴 자의 자부심이 아니라 진 자의 원한이 빚어낸 작품일 수 있다는 것. 이게 사람들을 그토록 불편하게 만든 이야기다. 핵심은 니체가 옳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핵심은 그가 보여준 동작이다. 당연한 가치 앞에서 무릎 꿇는 대신, 그 가치의 출생증명서를 요구하는 동작.

이 위험한 연장을 물려받아 자기 손에 맞게 벼린 사람이 20세기 프랑스의 미셸 푸코다. 그는 니체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광기란 무엇인가', '범죄자란 무엇인가', '정상이란 무엇인가' 같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범주들에 들이댔다. 1975년 그가 펴낸 감옥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죄지은 자를 가두는 일을 인류가 늘 해온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지만, 푸코는 그 '가둠'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특정한 시대가 사람을 길들이고 관리하려고 발명해 낸 장치임을 파헤쳤다. 그는 니체가 남긴 한 가지 구분을 특히 날카롭게 벼렸다. 어떤 것의 까마득한 출신과, 그것이 지금 이 모양으로 굳어진 갈림길은 다르다는 것. 계보학자는 매끈한 '발전의 역사'를 의심하고, 오히려 단절·우연·힘겨루기의 흔적을 찾아 들어간다. 푸코가 이 도구로 이뤄낸 것은,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 부르며 영원불변으로 떠받들던 것들이 실은 권력관계의 산물이며, 따라서 다르게 만들어질 수도 있었고 앞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임을 드러낸 일이다. 바꿀 수 없다고 믿던 것을 '만들어진 것'으로 되돌리는 순간, 그것은 다시 손댈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 너가 '이건 원래 그런 거야', '상식이지',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말 앞에 멈춰 서거든, 한 걸음 더 들어가 물어라. 이 당연함은 언제부터 당연해졌나. 처음 이걸 당연하다고 말한 자는 누구였고, 그렇게 말해서 누가 이득을 봤나. 영원해 보이는 것일수록 출생의 시점이 있고, 신성해 보이는 것일수록 캐물어야 할 족보가 있다. 가장 의심하기 어려운 가치야말로, 가장 먼저 그 출생증명서를 요구해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