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체계·구조

줌 인-아웃 (zoom in/out)

하나의 대상을 들여다보는 해상도를 의도적으로 바꿔 가며, 잘게 쪼갠 디테일과 멀찍이 물러난 전체상 사이를 오가는 사고법. 가까이 붙으면 세부의 결이 살아나지만 전체 모양을 놓치고, 멀리 빠지면 윤곽은 잡히지만 결정적 디테일이 뭉개진다. 어느 한쪽에 눌러앉지 않고 배율을 자유로이 오르내리며 두 시야를 포개는 것이 핵심이다.

너, 들판에 의자 하나 놓고 앉은 한 아이를 떠올려 봐라. 손등에 햇빛이 떨어지고 있다. 자, 이제 네가 그 장면 위로 둥실 떠오른다고 해보자. 아이가 작아지고, 들판이 보이고, 동네가 보이고, 도시가, 나라가, 지구가 한 점으로 줄어든다. 멈추지 말고 계속 빠져 봐라. 태양계가 손톱만 해지고, 은하가 먼지처럼 흩어지고, 마침내 우주의 가장자리에 닿는다. 거기서 너는 단숨에 거꾸로 빨려 들어온다. 다시 아이의 손등으로, 그 위 살갗으로, 모공으로, 세포로, 분자로, 원자 한 알의 핵 속까지. 방금 너는 같은 아이의 같은 손을 두고 우주 끝과 원자 핵을 한 호흡에 다녀왔다. 똑같은 대상인데, 배율을 돌릴 때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 오늘 이야기는, 이 '배율 돌리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처음 한 권의 책으로 빚어낸 어느 네덜란드 선생에 관한 거다.

그 사람 이름은 케이스 부케다. 20세기 중반 네덜란드에서 학교를 운영하던 교육자였다. 그는 아이가 자기 자신을 우주 속 어디쯤에 놓인 존재로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큰 것과 작은 것을 말로 설명하는 건 한계가 뻔했다. 그래서 그는 묘한 장치를 고안한다. 1957년에 펴낸 책에서, 그는 들판에 앉은 한 소녀의 그림에서 출발해 매번 정확히 열 배씩 시야를 넓혀 갔다. 한 칸 물러설 때마다 거리가 열 배가 된다. 그렇게 마흔 번을 점프해 우주 끝까지 갔다가, 이번엔 거꾸로 같은 소녀에게로 되돌아와 한 칸씩 열 배로 좁혀 들어가 끝내 나트륨 원자의 핵에 다다랐다. 책 제목이 그대로 그 동작이었다. 우주를 마흔 번의 도약으로 본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줌 인-아웃은 누가 어느 날 발명한 거창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는 그 일상의 버릇을, 부케가 '열 배'라는 일정한 눈금을 붙여 처음으로 끝에서 끝까지 밀어붙여 본 데서 또렷한 모양을 얻은 셈이다.

부케의 이 작은 책은 곧 과학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조용히 번져 나갔다. 우주적 규모를 어떻게 한 사람 머릿속에 담느냐 하는, 교육자라면 누구나 부딪히던 난제에 그의 '열 배 점프'가 답이 됐던 거다. 그리고 이 발상을 받아 가장 멀리까지 키운 사람들은 뜻밖에도 디자이너 부부였다. 찰스와 레이 임스. 의자 디자인으로 이름난 그 부부가, 부케의 책을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1968년에 먼저 거친 시험판을 내놓고, 1977년에 완성본을 세상에 내보냈다. 흑백 그림이던 부케의 도약이 거기서 색과 실제 촬영을 입고 살아 움직였다. 시카고 호숫가에 누운 한 사람의 손등에서 출발해 열 배씩 멀어졌다 다시 열 배씩 파고드는, 단 9분짜리 그 영상은 사람들이 '규모'라는 걸 머릿속에 그리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1998년 미국 의회도서관은 이 필름을 문화적으로 길이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국가 등록부에 올렸다. 한 시골 선생의 교실용 그림책이, 인류가 큰 것과 작은 것을 상상하는 공용 언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너는 잠깐 멈춰야 한다. 배율을 마음대로 돌릴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동시에 함정이기도 하다. 1967년, 수학자 브누아 만델브로가 학술지에 짧고 도발적인 글을 하나 실었다. 제목이 이랬다.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 너는 당연히 정해진 답이 있으리라 여길 거다. 그런데 만델브로가 보여 준 건 정반대였다. 100킬로미터짜리 자로 영국 해안을 재면 길이가 대략 2,800킬로미터쯤 나온다. 그런데 같은 해안을 50킬로미터짜리 더 짧은 자로 재면 3,400킬로미터로 늘어난다. 자를 더 잘게 줄일수록 들쭉날쭉한 후미와 갯바위가 자꾸 더 잡혀서, 해안선은 끝없이 길어진다. 그러니까 '해안선의 길이'라는 건 네가 어느 배율로 들여다보느냐를 먼저 정하지 않으면 아예 답이 없다. 가까이 줌 인 한 해안과 멀리 줌 아웃 한 해안은 그냥 다른 그림 정도가 아니라, 길이라는 숫자 자체가 달라지는 다른 세계였다. 더 무서운 건, 어느 배율에서 보든 해안의 들쭉날쭉한 모양새가 비슷하게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멀리서 본 만 하나의 굴곡이, 가까이 들어가 본 작은 곶 하나에서 또 똑같이 나타난다. 만델브로는 이런 성질에 훗날 '프랙털'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지만, 이 1967년 글에서는 아직 그 단어조차 쓰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못 박았다. 어느 한 배율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인 게 아니다. 배율을 고르는 건 측정자인 너의 몫이고, 네가 고른 배율이 곧 네가 얻을 답을 결정한다.

이게 줌 인-아웃의 가장 깊은 가르침이다. 부케가 보여 준 게 '오갈 수 있다'는 자유라면, 만델브로가 보여 준 건 '아무 데나 멈추면 안 된다'는 책임이다. 그리고 이 둘이 가장 치열하게 한 몸으로 돌아가는 곳이 바로 네 손안의 지도 앱이다. 네가 손가락 두 개를 오므렸다 벌릴 때, 화면 속 세상은 단순히 커지고 작아지는 게 아니다. 멀리 빠지면 도시 이름과 큰 고속도로만 남고 골목은 싹 사라진다. 손가락을 벌려 줌 인 하면 그제야 골목과 가게 간판이 솟아오르고, 대신 나라 전체의 윤곽은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화면은 한 번에 다 보여 주지 않는다. 보여 줄 수가 없다. 배율마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지울지를 미리 정해 둔 충충의 설계가 그 밑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컴퓨터로 이걸 해내려면, 사람의 생각 틀이 윗단추부터 갈려야 했다. 종이 지도 시절엔 한 장에 한 배율, 한 진실뿐이었다. 그 한 장을 그냥 화면에 옮기는 걸로는 어림없었다. 사람들은 '지도란 한 장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통째로 버리고, '지도란 배율에 따라 내용이 갈아 끼워지는, 같은 땅의 여러 해상도'라는 새 틀로 옮겨 타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우주 끝에서 골목 어귀까지를 손가락 하나로 오갈 수 있게 된 거다. 부케가 열 배씩 도약하던 그 동작이, 형태만 바꿔 네 손바닥 안에서 매 순간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일 앞에서 길을 잃거든, 먼저 네가 지금 어느 배율에 붙잡혀 있는지부터 물어라. 디테일에 코를 박고 허우적대고 있다면 한 번 크게 빠져 전체 모양을 보고, 큰 그림만 읊으며 헛돌고 있다면 과감히 줌 인 해 결정적 디테일 하나를 손에 쥐어라. 단, 잊지 마라. 어느 한 배율도 그 자체로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해안선처럼, 멈춘 자리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그러니 한곳에 눌러앉지 말고 배율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가까이서 본 것과 멀리서 본 것을 네 머릿속에서 포개라. 그게 한 네덜란드 선생이 의자에 앉은 아이 한 명에서 시작해 우주 끝까지 다녀오며 남긴, 생각의 가장 자유로운 손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