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체계·구조

네트워크 사고 (network)

대상을 낱낱의 개체가 아니라 점(노드)과 그 사이를 잇는 선(연결)으로 이루어진 그물망으로 보는 사고법. 누가 누구와 이어져 있는지, 연결이 어디로 몰려 허브를 이루는지,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어떤 경로로 닿는지를 읽어, 개체의 속성보다 관계의 구조가 전체를 좌우한다고 보는 것이 핵심이다.

너, 옛 도시 하나를 떠올려 보자. 강이 도시를 가르고, 그 강 한가운데 섬이 둘 떠 있고, 양쪽 기슭과 섬들을 잇는 다리가 일곱 개 놓여 있다. 18세기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가 꼭 그랬다. 그 동네 사람들에겐 일요일마다 즐기는 산책 수수께끼가 하나 있었다. 일곱 다리를 모두 건너되, 같은 다리는 두 번 밟지 않고 한 바퀴 돌아올 수 있을까? 다들 해 봤지만 번번이 한 다리가 남거나 한 다리를 두 번 건너게 됐다. 그렇다고 정말 불가능한 건지, 아니면 아직 영리한 길을 못 찾은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냥 풀리지 않는 동네 놀이였다.

이 시시한 산책 문제를 받아 든 사람이 당대 최고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였다. 1736년의 일이다. 보통이라면 다리를 건너는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따져 봤을 텐데, 오일러는 전혀 다른 짓을 했다. 그는 도시를 지워 버렸다. 강도, 섬의 넓이도, 다리의 길이도, 어느 쪽이 예쁜지도 — 전부 군더더기라며 걷어냈다. 남긴 건 딱 두 가지였다. 땅덩어리 넷을 점 네 개로 줄이고, 다리 일곱을 그 점들을 잇는 선 일곱 개로 줄였다. 그러자 산책 문제가 점과 선만의 문제로 바뀌었다. 여기서 오일러는 결정적인 걸 봤다. 어떤 점이든 들어왔으면 나가야 하니, 중간에 거쳐 가는 점에 붙은 선은 짝수여야 한다는 것. 그런데 쾨니히스베르크의 네 점은 모조리 홀수 개의 선을 달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산책은 있을 수가 없다. 못 찾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풍경을 통째로 버리고 연결의 골격만 남겼더니, 수백 년 풀리던 수수께끼가 한 줄로 끝났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 순간, 세상을 점과 선으로 읽는 학문 하나가 태어났다.

오랫동안 이건 수학자들의 깔끔한 장난감에 머물렀다. 점과 선이 사람과 사람 사이로 옮겨 온 건 한참 뒤다. 1930년대, 루마니아 태생의 정신과 의사 야코프 모레노가 뉴욕의 한 소녀원에서 이상한 현상을 마주했다. 멀쩡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떼로 달아나는데,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모레노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누구 옆에 앉고 싶고 누구는 싫으냐. 그러고는 그 호불호를 화살표로 이어 종이에 그렸다. 누가 인기의 중심인지, 누가 외톨이인지, 도주가 어느 아이를 타고 어느 아이로 번졌는지가 그림 위에 드러났다. 그는 이걸 소시오그램이라 불렀다. 개인의 성격을 들여다보는 대신 아이들 사이의 관계 그물을 그렸더니, 한 명 한 명을 따로 봐서는 결코 안 보이던 집단의 결이 보인 것이다. 오일러의 점과 선이 마침내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이 그물을 가장 대담하게 실험한 사람을 꼽자면 스탠리 밀그램이다. 1967년, 그는 미국 한쪽 끝의 낯선 이에게 편지 한 통을 쥐여 주고 반대편 끝의 모르는 목표 인물에게 닿게 하라고 했다. 단, 직접 보내지 말고 네가 이름을 아는 사람을 거쳐서만 전하라는 조건이었다. 사람들은 까마득하다 여겼다. 그런데 목적지에 닿은 편지들을 세어 보니, 출발에서 도착까지 평균 다섯 사람 남짓을 거쳤을 뿐이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여섯 단계 분리라는 말이 나왔다. 칠십억 명이 사는 세상이 실은 몇 다리만 건너면 서로 닿는 좁은 곳이라는 것. 비밀은 마당발에 있었다. 평범한 점들 사이에 어쩌다 수백 명과 이어진 허브가 박혀 있으면, 그 허브 하나가 멀리 떨어진 무리를 단번에 이어 붙여 그물 전체를 확 좁힌다. 1998년 무렵 던컨 와츠와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이 좁은 세상의 짜임을 식으로 풀어냈고, 뒤이어 1999년경 얼베르트라슬로 버러바시는 한술 더 떠, 현실의 그물들이 왜 하필 소수의 거대 허브에 연결이 쏠리는 모양을 띠는지를 밝혔다. 인기 있는 점일수록 새 연결을 더 끌어당겨 더 인기 있어진다는 것. 부익부의 법칙이 관계의 세계에도 똑같이 박혀 있었다.

목사의 산책 놀이에서 출발한 이 점과 선이 왕좌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컴퓨터, 그중에서도 인터넷이었다. 1990년대 끝자락, 스탠퍼드의 두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폭증하는 웹페이지를 어떻게 줄 세울지 고민했다. 그때까지의 검색은 페이지가 무슨 단어를 몇 번 썼는지를 셌다. 두 사람은 생각의 윗단추를 갈아 끼웠다. 한 페이지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페이지들이 그 페이지로 얼마나 링크를 걸어 주느냐 — 즉 그 페이지가 그물 안에서 어느 자리에 놓였느냐로 중요도를 매긴 것이다. 더구나 아무 링크나 같은 한 표가 아니라, 이미 중요한 페이지가 걸어 준 링크일수록 더 무겁게 쳤다. 페이지 하나하나의 내용을 읽는 일에서 링크의 구조를 읽는 일로 틀을 통째로 옮긴 이 발상이 페이지랭크였고, 구글은 여기서 자라났다. 웹을 글의 더미가 아니라 거대한 그물로 본 자가 검색의 판도를 가져간 것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무리나 시장이나 조직을 마주하거든,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능력치를 따로 재는 데서 멈추지 마라. 종이를 펼쳐 점을 찍고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 선을 그어 봐라. 연결이 어디로 몰리는지, 그 허브를 들어내면 그물이 어디서 끊기는지,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길이 몇 다리나 되는지를 읽어라. 개체를 세는 자는 명단을 얻지만, 연결을 읽는 자는 힘이 어디에 고이고 무엇이 어디로 번질지를 손에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