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체계·구조

시스템 사고 (systems thinking)

어떤 대상을 따로 떼어 낸 부분들의 합으로 보지 않고, 부분들 사이의 연결·되먹임·시간 지연이 함께 빚어내는 전체의 거동으로 보는 사고법. 무엇이 무엇을 밀고 당기며 그 영향이 한 바퀴 돌아 자기에게 되돌아오는지를 추적해, 한 곳을 건드렸을 때 엉뚱한 데서 터지는 일을 미리 읽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너, 샤워기 수도꼭지를 떠올려 봐라. 물이 너무 차서 손잡이를 더운 쪽으로 확 돌린다. 그런데 한참 그대로다. 답답해서 더 돌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펄펄 끓는 물이 쏟아져 화들짝 놀라 반대로 확 돌린다. 또 한참 차다. 또 돌린다. 너는 분명 차분하게 맞추려 했는데, 너와 수도꼭지 사이를 오가는 그 잠깐의 시간 지연 하나 때문에 온도가 미지근함 주위에서 진자처럼 출렁인다. 여기서 잘못한 건 너도 아니고 보일러도 아니다. 잘못은 '너와 수도꼭지와 파이프의 길이'가 함께 이루는 그 고리 안에 있다. 오늘 이야기는, 이 출렁임이 실은 세상의 거의 모든 곳 — 공장과 도시와 한 나라의 경제 — 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종이 위에 붙잡아 낸 사람에 관한 거다.

부분이 아니라 부분 사이의 관계가 전체를 좌우한다는 생각 자체는 아주 오래됐다. 살아 있는 몸을 떼어 놓은 장기들의 산수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직관은 옛 의학과 철학에도 흐른다. 다만 이걸 흐릿한 통찰이 아니라 손에 쥐고 계산할 수 있는 '도구'로 벼려 낸 건 20세기 중반, 미국의 공학자 제이 포레스터다. 그는 원래 컴퓨터 기억장치를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1956년 갓 생긴 MIT 경영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무렵 그가 어느 전자회사 공장의 골칫거리를 들여다보다 묘한 걸 발견했다. 시장의 주문은 거의 일정한데도 공장의 생산량과 직원 채용·해고는 미친 듯이 출렁이고 있었던 거다. 그는 공책 한 장에 손으로 그 흐름을 적어 내려가며 첫 모의실험을 해 봤고, 범인을 찾아냈다. 아무도 악의가 없었다. 주문이 들어오고, 재고를 보고, 생산을 늘리라 지시하고, 그게 실제 물건이 되어 나오기까지 — 그 사이사이에 낀 짧은 시간 지연들이 신호를 자꾸 부풀려, 잔잔한 입력을 거센 파도로 바꿔 놓고 있었다. 샤워기의 그 출렁임이, 공장 전체 규모로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포레스터는 이 발견을 1961년 책으로 묶어 내며 '시스템 다이내믹스'라는 이름을 달았다. 핵심 어휘는 단순하다. 어딘가에 쌓이는 양이 있고(재고·인구·신뢰 같은), 그 양을 채우고 빼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다시 양의 상태를 보고 스스로를 조절하는 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고리에는 거의 항상 시간이 끼어든다. 그가 보여 준 건 충격적이었다. 고리 안의 한 사람만 떼어 보면 다들 합리적으로 행동했는데, 그 합리적인 행동들이 고리로 엮이자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난동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시스템 사고의 첫 계율이 여기서 나온다. 무언가 망가졌을 때 '누가 잘못했나'를 먼저 묻지 마라. '이 구조가 어떻게 엮였길래 멀쩡한 사람들이 이런 결과를 만드나'를 물어라.

이 도구는 처음엔 공장 안에 머물렀지만, 포레스터는 멈추지 않고 같은 렌즈를 점점 더 큰 것에 들이댔다. 공장에서 도시로 — 왜 좋은 의도의 빈민가 재개발이 되레 도시를 더 망가뜨리는가. 도시에서 마침내 지구 전체로. 그리고 이 도구를 가장 멀리, 가장 묵직하게 끌고 간 사람은 그의 제자였던 도넬라 메도즈다. 사람들은 그를 다나라 불렀다. 1972년, 다나와 동료 연구진은 인구·산업·식량·오염·자원이라는 다섯 덩어리를 하나의 고리로 묶은 컴퓨터 모형 '월드3'를 돌려, 인류가 이 행성에서 어떻게 굴러갈지를 200년 치 시나리오로 펼쳐 냈다. 그 결과를 담은 책이 성장의 한계다. 결론은 음울했다. 무엇 하나가 고갈돼서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양의 되먹임 고리가 자원과 오염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시스템 전체가 정점을 찍고 무너지는 '초과와 붕괴'의 그림이 나왔다. 책은 30개 언어로 3천만 부 넘게 팔려 나갔지만, 동시에 거센 멸시도 받았다. '종말론 장사', '컴퓨터에 비관을 입력하니 비관이 나온 것뿐'이라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부분이 아니라 고리로 세상을 보자는 이 관점은, 한동안 그렇게 환영과 야유를 동시에 들었다.

다나가 평생을 바쳐 도달한 가장 값진 통찰은, 모형의 어느 숫자가 아니라 '어디를 건드려야 시스템이 진짜로 바뀌나'라는 물음의 답이었다. 그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지렛점을 약한 것부터 강한 것까지 줄 세웠다. 세금이나 보조금 같은 숫자를 만지는 건 가장 약한 지렛대다. 그보다 센 건 고리의 구조를 바꾸는 것, 정보가 누구에게 흐르는지를 바꾸는 것,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맨 꼭대기에 둔 가장 강력한 지렛점은 놀랍게도 숫자도 구조도 아니었다. 그 시스템이 떠받치고 있는 '목표와 사고방식 자체', 곧 패러다임이었다. 작은 부품을 아무리 바꿔도 시스템은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윗단추를 갈면 시스템 전체가 다른 생물이 된다는 것 — 시스템 사고가 도달한 가장 깊은 자리가 여기다.

이 사고법은 태생부터 컴퓨터와 한 몸이었다. 고리가 서넛만 얽혀도, 게다가 시간 지연까지 끼면, 사람 머리로는 그 거동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직관은 늘 직선으로 예측하는데 시스템은 곡선으로, 때로는 거꾸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월드3가 컴퓨터 없이는 한 줄도 못 굴러간 이유가 그거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기계에 이 일을 맡기려면 생각의 윗단추부터 갈아 끼워야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X면 Y'라는 한 방향 인과로 세상을 잘라 설명해 왔는데, 시스템은 X가 Y를 낳고 Y가 다시 X로 돌아오는 둥근 인과로 굴러간다. '하나의 정답값을 맞힌다'는 생각을 버리고, '쌓이는 양과 흐름과 되먹임이 시간을 따라 어떻게 출렁이는가'라는 거동 자체를 모형으로 봐야 한다는 것 — 그 상위 틀을 새로 끼우고 나서야 기계 위의 시뮬레이션이 비로소 말이 됐다. 오늘날 기후 모형도, 전염병 확산 예측도, 도시 교통 설계도 전부 이 둥근 인과의 후예다.

그러니 너가 무언가를 고치려고 한 곳을 세게 누르려는 순간, 잠깐 멈추고 물어라. 내가 누르는 이 힘은 고리를 한 바퀴 돌아 어디로, 얼마나 늦게 되돌아오는가. 범인이 사람인가 아니면 우리를 이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구조인가. 그리고 정말 바꾸고 싶다면, 눈앞의 숫자를 만지기 전에 이 시스템이 대체 무엇을 위해 돌아가도록 설계됐는지 그 목표부터 의심해라. 부분을 더 세게 미는 게 아니라 부분들이 엮인 방식을 다시 그리는 것 — 그게 한 공학자가 공책 한 장에서 시작해 지구만 한 크기로 키워 낸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