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체계·구조

모델링 (modeling)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끌어안는 대신, 다루려는 목적에 비춰 본질적인 요소만 남기고 나머지를 의도적으로 덜어 낸 단순한 모형을 만들어, 그 모형을 가지고 현실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조작하는 사고법. 지도가 땅 전체가 아니듯 모형은 결코 현실과 같지 않으며, 같아지려는 게 아니라 쓸모 있게 틀려 주는 것이 핵심이다.

너, 책상 위에 펼친 지하철 노선도를 떠올려 봐라. 그 알록달록한 그림은 거짓말투성이다. 실제 선로는 그렇게 반듯한 직선으로 깔려 있지 않고, 역과 역 사이 거리도 그림처럼 고르지 않다. 강도 엉뚱한 자리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도 너는 그 거짓말 그림 한 장으로 처음 가는 동네까지 한 번도 안 헤매고 찾아간다. 진짜 땅 위의 구불구불한 사정을 죄다 그려 넣은 정밀 측량도였다면 오히려 길을 잃었을 거다. 노선도를 만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네가 알고 싶은 건 딱 하나, '어디서 갈아타서 몇 정거장 가면 되나'라는 것. 그래서 그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진실을 전부 내다 버렸다. 일부러 틀린 그림을 그려서 너를 정확히 데려다준 거다. 오늘 이야기는, 이 '일부러 틀리기'를 끝까지 밀어붙여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손으로 만지게 만든 한 괴짜에 관한 거다.

본질만 남기고 나머지를 덜어 낸 작은 본뜬 것을 만들어 다룬다는 발상 자체는 까마득히 오래됐다. 옛 건축가들은 신전을 짓기 전에 손바닥만 한 모형을 깎아 왕에게 보였고, 라틴어 모둘루스, 곧 '작은 자, 작은 척도'라는 말에서 '모델'이라는 단어가 흘러왔다. 그러니 모델링은 누가 어느 날 발명한 게 아니라, 사람이 머릿속에 다 담기 벅찬 큰 것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줄여서 손에 쥐려 했던 아주 오래된 버릇에 한참 뒤에 이름이 붙은 것에 가깝다. 문제는 이 버릇을, 만질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한테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였다. 이를테면 한 나라의 경제 같은 것 말이다.

여기서 그 괴짜가 등장한다. 1949년, 런던정경대학의 한 지하실. 뉴질랜드에서 건너온 늦깎이 학생 빌 필립스가 전쟁 때 비행기를 만지던 솜씨로 이상한 기계를 조립하고 있었다. 사람 키만 한 나무판에 투명한 플라스틱 물탱크 여남은 개를 매달고 파이프로 잇고, 펌프와 밸브를 단 물건이었다. 그러고는 빨갛게 물들인 물을 부었다. 그 붉은 물이 곧 돈이었다. 위쪽 탱크에서 물이 흘러내리면 그건 국민의 소득이 풀려나가는 것이고, 중간에 밸브를 비틀어 일부를 옆으로 빼면 그게 세금이며, 다른 탱크로 다시 부으면 정부 지출이었다. 저축으로 고이고, 수입과 수출로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돈이라는, 도무지 눈에 안 보이고 손에 안 잡히는 흐름을 그는 통째로 물의 흐름으로 바꿔 버렸다. 보고 싶은 건 오직 하나, '돈이 어디로 얼마나 흐르고 어디서 고이고 새는가'였으니, 지폐의 모양도 사람의 욕심도 은행의 간판도 다 내다 버리고 흐름이라는 뼈대만 남긴 거다. 누가 세금을 올리면 어떻게 되나? 밸브 하나를 조이면 된다. 그러면 저 아래 탱크의 수위가 출렁이며 내려가는 게 눈앞에서 보였다. 만질 수 없던 경제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로 바뀌어 책상 위에 올라온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너는 당연히 코웃음을 치게 된다. 물장난이잖아. 진짜 경제가 어떻게 빨간 물 같겠어. 맞다, 그 기계는 틀렸다. 한 나라의 살림을 어떻게 플라스틱 탱크 몇 개가 그대로 담겠나. 바로 여기에 모델링의 가장 깊은 역설이 있다. 그 기계는 틀렸기 '때문에' 쓸모가 있었다. 진짜 경제를 빠짐없이 담으려 했다면 그건 또 하나의 경제일 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했을 거다. 필립스는 군더더기를 다 쳐 내고 '흐름'이라는 뼈 하나만 남겼기에, 비로소 세금을 올리면 돈이 어디서 마르는지를 한눈에 보여 줄 수 있었다. 처음엔 그저 학생들 가르칠 교보재로 만든 거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곧 깨달았다. 이게 단순한 교보재가 아니라, 실제로 이리저리 조건을 바꿔 가며 결과를 미리 돌려 볼 수 있는 진짜 모의실험 장치라는 걸. 소문이 퍼지면서 이 물 기계는 적어도 열두 대가 더 만들어져 여러 대학과 기관으로 팔려 나갔다. 만질 수 없는 것을 일부러 틀린 모형으로 바꿔 손에 쥐여 준 그 한 방이, 한 무명 학생을 단숨에 경제학계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이 '일부러 틀리기'의 정신을 가장 정확한 한마디로 못 박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영국의 통계학자 조지 박스. 그는 1970년대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모형은 틀렸다, 그러나 더러는 쓸모가 있다. 처음 들으면 맥 빠지는 말 같지만, 이건 모델링을 하는 모든 사람이 평생 새겨야 할 계명이다. 그가 진짜로 경계한 건 거꾸로였다. 모형을 현실에 가깝게 만들겠다고 자질구레한 변수를 자꾸 욱여넣는 짓 말이다. 그렇게 현실을 빼다 박으려 들수록 모형은 무거워지고 흐릿해져서, 정작 봐야 할 뼈대가 군살에 파묻혀 버린다. 박스는 그걸 두고, 모형은 적을수록 좋고 데이터에 과하게 끼워 맞추려는 욕심이 오히려 진실을 가린다고 누누이 경고했다. 필립스가 물탱크로 보여 준 것을, 박스는 통계학의 언어로 다시 새긴 셈이다. 좋은 모형은 현실을 닮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버릴 걸 용감하게 버린 모형이다.

필립스의 물탱크에 얽힌 가장 큰 반전은, 그 빨간 물이 결국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데 있다. 물이 흐르며 저절로 풀어내던 그 셈을, 사람들은 이제 방정식 몇 줄로 옮겨 적어 기계 안에서 돌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한 나라가 금리를 올릴지 말지, 기후가 몇 도 더 더워질지, 새 약이 몸속에서 어떻게 퍼질지를 따질 때, 그 밑바닥에서 돌아가는 건 전부 이 모델링이다. 현실의 본질만 골라 규칙으로 적고, 그 규칙을 기계가 수백만 번 돌려 '만약 이러면 어떻게 될까'를 미리 살아 보는 것. 그런데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모형을 물탱크에서 컴퓨터로 옮기려면, 모형을 만든다는 생각의 가장 윗단추부터 갈아 끼워야 했다는 거다. 필립스의 기계는 '돈의 흐름을 물의 흐름으로 빼다 박는' 식이었다. 눈에 보이는 닮은꼴을 만들어 손으로 만지는 방식이지. 그런데 컴퓨터한테는 닮은 물건을 보여 줄 수가 없다. 기계는 물탱크를 못 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물을 닮게 만든다'는 생각을 통째로 버리고, '그것이 따르는 규칙만 글자와 숫자로 적어 준다'는 쪽으로 머리를 갈아 끼워야 했다. 닮음에서 규칙으로, 만지는 모형에서 적는 모형으로. 그 윗단추를 새로 끼우고 나서야 만질 수 없던 모형이 무한히 복잡한 것까지 품을 수 있게 됐다. 필립스가 경제에서 흐름만 발라낸 그 손동작이, 형태만 바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모든 시뮬레이션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 너가 도무지 손에 안 잡히게 거대하고 뒤엉킨 무언가를 앞에 두거든 — 우리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사업이 어디서 돈이 새는지 — 그 전부를 머리에 담으려 들지 마라. 그건 또 하나의 현실을 짓는 헛수고일 뿐이다. 대신 물어라. 내가 지금 진짜로 알고 싶은 단 하나는 무엇인가. 그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노선도가 강을 지워 버리듯 과감히 덜어 내, 일부러 틀린 작은 모형 하나를 손에 쥐어라. 단, 잊지 마라. 그 모형은 반드시 틀려 있다. 지도를 땅으로 착각하는 순간 너는 벼랑으로 걸어간다. 모형이 가리키는 대로 가되, 그게 현실 그 자체가 아님을 늘 곁눈으로 붙들고 있어라. 쓸모 있게 틀리기 — 그게 한 괴짜가 빨간 물로 가르쳐 준, 거대한 것을 손바닥에 올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