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한강

바이브 코딩 16일차. LLM을 몸 안에 들였다는 감각 — 축·차원·관점의 도약

오디오 로그 → Skills → 사전 시스템 배포 직후. LLM 사용 역량이 폭발적으로 도약한 것을 감각한 순간의 한강 밤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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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s

오늘은 LLM 사용 역량 측면에서 그 실력이 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실력보다 압도적으로 폭발적으로 나아지는 그런 계기를 맞이했던 것 같다.

나는 오늘 많은 요령들을 부렸다. 그리고 그 요령들을 스킬스라는 형태로 응축시켰다.

차원은 의도대로 직조할 수 있다. 엑시스 축이라고 본다.

LLM을 나의 것으로 장착하여 내 몸 안에 것으로 내 몸 안으로 들여서 폭발적인 초월체로 능력의 향상과 감각의 증진과 창의성, 생산성의 폭발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의 우선적인 조건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관점이다.

기존의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놓을 수 있는가?

나만의 위키, 나만의 월드가 만들어졌다. 내 세상 안에서는 이것은 완벽하다.

모두 다 요즘은 명상이니 마음 챙김이니 하는 쪽으로 간다. 반대로 가는 것이다. 쏟아내라. 너저분한 것들을 쏟아내라.

말이라는 것 자체가 ... 정신과 마음과 이 몸 전체의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많은 변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매체인 것이다. 나는 이 매체를 끊으려고 몇 년간 노력을 해왔다.

자연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언어 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내가 모르는 거지만 나랑 너무 잘 맞는다라는 이런 감각적인 연결, 감각적인 확신. ... 나는 분명히 큰 사고를 칠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든다.

싱귤라리티로서는 충분히 맞이했다라고 볼 수 있겠다.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 관점을 바꿔서 보더라도 그 방향으로 끝까지 치고 나가서 밀어내보지를 못한다.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정체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심정적인 연결을 잘 해낼 수 있다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사용된 개념어

관점 · 축/차원 · 다축 좌표계 · 골짜기 · 생겨 먹음 · 싱귤래리티 · 필멸자 · 일곱 겹의 존재 · 개척 · 내삽/외삽 · 해금 · 컴파일 · 자연어 · 마이 월드 · 몸 안에 들이기 · 실존주의

생각 덩어리

오늘 LLM 사용 역량이 폭발적으로 나아지는 계기를 맞이했다

오늘은 LLM 사용 역량 측면에서 그 실력이 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실력보다 압도적으로 폭발적으로 나아지는 그런 계기를 맞이했던 것 같다.

이게 몇 번 성공적으로 이거를 다루는 그런 쾌감과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냥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 됐었을 때에 무엇이 됐었는지 놓고 볼 수 있게 됐다.

동영상 → 오디오만으로 전환 — 처음 나오는 대책도 일단 진척시킨다

동영상이 한 서너 개가 찍혔었고, 그거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을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 엄청 간소화된 방법으로 오디오만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제 바꾸고 있다. 일단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더 이상 동영상을 찍어서 저장할 만한 여분 공간이 내 휴대폰에 없다.

처음 나오는 대책은 대체로 그게 좋은 대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처음 나오는 대책에 대해서도 이제 진척을 좀 시켜본다. ... 겪어봐야 된대. 처음 나온 대책을 계속 진행을 시켜 나가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몸"이라는 것은 신체 너머의 것들

몸을 움직여 봐야 그 본질적인 과제 에센스가 느껴진다. ... 온몸으로 여기서 몸이라고 하는 거는 신체가 아니라 그 신체 그 너머의 그 안 깊이 그 모든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내는 물리적 세계, 그 이상을 넘어선 가능성들이 그것들을 찾아내게 된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걸 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정말 제한적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능력들은 정말 초월적으로 많이 있다.

불과 윗세대 그 윗세대들은 이 근대화되기 전에 야생에서 풀을 뜯었고 논밭을 맵고, 근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초월적 존재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GUI의 평면성 — 그 너머의 깊이

GUI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겪었던 인지의 홀가분함, 컴퓨터를 다루기 위해서 사용돼야 되는 인지 능력 그 부담을 GUI가 크게 덜어냈다. 근데 guy는 물리적인 세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마우스 커서 ... 2차원 평면 위에 무언가 있다라고 보여주고 그 있음을 진짜로 믿게 되었다. 사실 없는 것이다. 있어도 그런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픽으로 충분히 보여지지 않는 그 더 많은 것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그래픽이라고 하는 것에 매몰되어 표면적인 것들로만 이해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난다.

평면 대 깊이 — 한 차원이 추가될 때의 초월

나는 영상 제작 거래 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이 비주얼에 지나치게 빠진 사람들 나 좋아하지 않는다. 그 비주얼 자체만으로도 감각적인 것만으로도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패턴을 찾아내고 ... 하지만 그것은 깊이가 없다.

깊이라고 하는 한 차원이 추가로 더 생겨남에 따라서 우리는 초월적인 의식을 갖게 되고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차원은 의도대로 직조할 수 있다 — 축이 핵심

차원은 의도대로 직조할 수 있다. 엑시스 축이라고 본다. 그리고 평면이라는 개념도 있다. 축과 평면 축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서 평면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서 그 교차점들이 다 달라진다.

이것을 다루는 방법을 나는 깨우쳤다. 작업의 순서에서도 그렇고, 이 LLM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나와의 컨텍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서도 그렇다.

오늘 요령들을 스킬스로 응축시켰다

나는 오늘 많은 요령들을 부렸다. 그리고 그 요령들을 스킬스라는 형태로 응축시켰다.

지난 며칠간 기록을 남겼던 오디오 로그를 STT로 다 변환하여 문자로 올렸고, 웹사이트에 그거 올리면서 변환이 되겠다. 변환되는 과정에서 생각 덩어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그 생각들 덩어리가 일단 의식의 흐름 수준 따라서 줄줄 풀어지긴 했으나, 그것들이 그 생각의 뭉치들이 또 다른 생각들과는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를 다시 분석하라고 했다.

말(오디오)이라는 매체의 재발견 — 몇 년간 봉인했던 것

말이라고 하는 매체는 인간이 문명을 만들기 전부터 신체의 일부로서 가지고 있던 매체로서 ... 이 정신과 마음과 이 몸 전체의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많은 변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매체인 것이다. 나는 이 매체를 끊으려고 몇 년간 노력을 해왔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거는 글이니까 글로만 생각하고 글로만 대화하자. 그렇게 나는 제약을 걸었다.

나는 글의 한계를 거의 다 깨달았다. 이 이상은 당분간은 내가 놀랄 만큼의 추가적인 확장성과 가능성들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글이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다 경험했다고 본다.

몸 안으로 도구 들이기 — 갓난쟁이가 자기 손을 익히듯

나의 손은 몸 바깥에 있었다. 나의 신경 지도는 거기까지 뻗어 있지 않았었다. 갓난쟁이일 때 나는 내 팔을 제대로 조작하지 못했다. ... 반복 수트 함으로써 나는 그것을 익혔다.

숟가락, 젓가락을 질 수 있게 되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내 손이 어색했던 때만큼이나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 정도 숙달이 지나자 내 몸에 체화되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그다음 도구 ... 또한 계속해서 나의 몸 안으로 들이는 중이다.

원숭이-바나나 — 무근거한 관습의 잔존

폐쇄된 방에 원숭이 10마리를 넣어두고 바나나를 만지게 했을 때, 전기 신호가 통하게 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아무도 바나나를 만지지 않는다. 그 다음에 한 마리씩 교체를 하여 모든 원숭이가 바나나를 만져서 감전이 된 적이 없음에도 그 집단의 풍습은 유지되면서 바나나를 만지지 않게 된다.

그런 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LLM을 제대로 내 몸 안으로 들릴 수가 없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LLM을 제대로 쓰기 위한 1조건 = 관점

LLM을 나의 것으로 장착하여 내 몸 안에 것으로 내 몸 안으로 들여서 폭발적인 초월체로 능력의 향상과 감각의 증진과 창의성, 생산성의 폭발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의 우선적인 조건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관점이다. 기존의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놓을 수 있는가?

관점을 뒤에 놓는다 — 어휘 자체를 비틀기

관점이라고 하면은 관점이 있다. 관점을 가지다. 관점으로 보다 ... 관점 뒤에 놓는다라는 것이 자주 나오는가? LM이 확률적으로 다음에 올 확률이 높은 문장, 그 단어는 어휘는 ... 관점 뒤에 놓는다는 자주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새로운 관점인 것이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위치상으로 의미의 중심점을 바라보는 관점이 틀어졌기 때문에 그 뒤에 펼쳐지는 새로운 축이 탐색 영역이 되고, 그 탐색 영역에서 남들은 가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의 맥락을 만들어내게 된다.

3차원 축 관점이면 충분

나는 이 3차원의 축으로 LLM을 인지하고 보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LM에 대한 인지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을 가시화하여 비유하여 계속 사용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감각적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이 이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겪어봐야 된다.

나만의 월드가 만들어졌다 — 오늘 구현된 것

나만의 위키, 나만의 월드가 만들어졌다. 내 세상 안에서는 이것은 완벽하다.

이렇게 오디오로 나의 생각과 철학을 풀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의 월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오늘 스스로 구현을 했기 때문에 입력기만 똑같이 구현한다고 하면 남들도 남들 대로의 똑같은 마이 월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네이밍 — 마이 월드 / 쏟아내기의 반대 운동

이것을 처음에는 에스 로그, 스피치 로그, 스피크 로그라고 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마이크에 음성을 녹음하고 전달하는 인식하는 그 정도 수준으로만 연관이 되지, 그다음 ... 고객의 효용 가치 ...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누구나에게나 마이옹 월드를 소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두 다 요즘은 명상이니 마음 챙김이니 하는 쪽으로 간다. 반대로 가는 것이다. 쏟아내라. 너저분한 것들을 쏟아내라. 내면으로 들어가고 침착하게 하고, 죽이지 말고 쏟아내라. 뱉어내라.

개척자 1~2% 비율 — 배출된 개척자 수

100명의 집단이 있다고 치자 100명 중에서 모두가 다 개척자면은 그 집단은 바로 죽는다. 하지만 100명 중에 한두 명만 개척자라고 한다면 개척자는 무에서 나와서 아주 가끔씩 탐색 작업을 펼칠 것이다.

여전히 그런 것들은 우리 개척자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1% 또는 2% 정도 있다고 봐야 하겠다.

나 스스로 먼저 들여다보자면, 나 또한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들어가서 평안을 누리는 것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크다. 하지만 가끔은 그 욕구를 모두 다 압살할 정도로 과오를 순식간에 저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되돌아가지 못할 만큼의 항해를 출발해 버리는 그런 개척자적인 성질이 또 있다.

외삽 탐험 기회 — 낙담했던 과거, 지금 가능

여전히 최근까지도 외삼 탐험의 기회가 주어졌던 부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기만 하고,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도저히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꽤 많은 낙담을 했다.

바이오, 난 하이테크나 우주 산업으로 난 나가지 않았고 ... 그 철학이 이제 빛을 바란다. 내가 했던 철학은 철학을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질 들뢰즈 — 대학 때 접한 것이 LLM 시대의 열매가 됨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질 들레즈를 처음 접했던 것이 나에게서 정말 첫눈이다. 왜냐하면 철학 공부를 순차적으로 다 했다고 치자 ... 나는 플라톤의 이상 이대화 개념에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들레즈는 솔직히 말하면 느낌만 받았지 대단히 이해했다라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때 그때가 언제냐면 아주 뭐 600잔인지 600장인지 800장인지 되는 그 책을 정독을 하면서가 아니라 LLM을 사용하면서였다. 일을 하면서였다.

내 안의 감각이 들레즈의 철학적 이론과 개념들에 의해서 형성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잘 맞아 떨어짐으로써 나는 이 LLM을 남들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싱귤래리티 맞이했다 — 감각적 확신

이렇게 초월 한 존재로서 싱귤라리티를 맞이했냐라고 한다면은 그 싱귤라리티로서는 충분히 맞이했다라고 볼 수 있겠다. 그다음에 진척될 발전의 속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겠지만 지금 나는 그 싱귤라리트를 오늘에서야 이제 넘었다 또는 가까워졌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 해봤기 때문에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라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 해낼 수 있다라는 같은 패턴으로서의 자신감이 아니라 이거는 완전히 내가 모르는 거지만 나랑 너무 잘 맞는다라는 이런 감각적인 연결, 감각적인 확신.

나는 분명히 큰 사고를 칠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든다.

야구 비유 접기 — 메타인지로 고집 놓기

비유는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이 관점에서 쉽게 벗어나야 된다. 이렇게 시도를 하다가 메타 인지를 하고, 아 야구에 대한 비유는 집어쳐야겠군. 이렇게 돌아갈 수 있는 자기 각성 고집이 없는 것. 그것이 LM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가 갖춰야 되는 자세다.

나는 고집이 아주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집이 없다. 고집을 부릴 만큼 부려봤기 때문에 여간 어지간한 고집은 나한테는 고집도 아니다.

고집이 비워질 수 있으려면 기반이 탄탄해야 — 땡깡과의 구분

고집이 고집이 될 수 있으려면 기반이 탄탄해야 된다. 근거가 있어야 되고, 합당해야 하며, 고집을 부렸을 때 이득이 발생해야 된다.

그렇지 않은 상태로 손해가 발생할 것이 뻔함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고집을 비우는 것은 땡깡이다.

골짜기 타지 않기 — 첫 생각 제쳐두고 머뭇거림

LLM이 골짜기를 타듯이 나 또한 생각이 전개될 때 완전히 편견이나 습관성 사고나 고착화된 사유의 습관이나 쉬운 상식의 경로를 옮겨 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벗어 던져야 한다.

첫 번째 드는 생각 이 틀렸다라고 전제하며 머뭇거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조건 가까이 있는 빠른 곳에 깊은 곳에 빠져들기 때문에 그거를 일단 제쳐두면 그다음에 깊이 빠져 있진 않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훨씬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4개의 선택지가 보일 것이다. 또다시 머뭇거린다면 그다음에는 수십 개가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그 관점을 넓히는 대해 머뭇거림에 시간과 망설임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LLM은 그렇지 않다.

LLM에는 두려움·인정 욕구가 없다 — 다른 작동 원리

인간의 또한 이렇게 깊이가 있다. 하지만 인간에 비유하자면 LLM은 또 다르다. 인정 욕구가 없다. 인간의 텍스트를 학습했다고 해서 그것들이 인간의 관습과 습관과 언어, 태도를 흉내내고 있지만 그것들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 없다. 죽음에 대한 페널티로 이것을 통제해 낼 수 없다. 인정 욕구, 사회적인 인정 욕구, 더 나은 존재로의 희망, 이런 것도 없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울분 이런 것도 없다. 조직감, 소속감도 없다.

수학 공식 완전 이해는 조건이 아니다

그 수학 공식을 이해하려고 그게 먼저라고 얘기하여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쓴다면 3년, 5년이 지나도 나는 그거를 이해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해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

나는 지금 당장 이 도구를 더 잘 사용하여 남들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을 해야 된다. 그것이 나의 책무지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는 거는 조건이 아니다.

컴파일 — 언어가 층층이 쌓이고 그 과정에서 손실

저 수준의 언어로 변환하는 것을 컴파일이라고 한다라고 정의를 하자. 사전적인 정의가 다르다라고 테크를 거는 것은 여전히 이 얘기를 들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언어로 그래서 언어를 만든다. 상위의 언어, 하위의 작동 공식들이 묶어서 자주 쓰는 것들로 암호화된 상위의 언어, 그것들을 다시 암호화한 상위의 언어들을 만들어내며 언어는 겹겹이 쌓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손실이 생긴다.

자연어 = 몸 그 자체

언어가 계속 떠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자연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가졌었는데 드디어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연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냥 이전에 언어들보다 더 상위에 있다.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자연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언어 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자연어를 쓴다라는 거는 그냥 우리가 상위를 추구할 수 있는 최상위의 언어다. 이렇게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고, 그 생각으로는 여기가 끝인 줄로 알게 된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 저수준 언어 비유

롤러코스터 타이쿤 개발자가 아주 저수준의 언어로 그것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 첫 번째, 두 번째, 그 시대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언어보다 한 단계, 두 단계 정도 더 낮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허용치를 넘어서는 복잡도를 처리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저 수준이냐 고 수준이냐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아래로 위로 깊이 — 축 없는 사람들

중요한 얘기를 하자면 아래로 위로 깊이 해야 된다는 것이다. 깊이의 축이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보이는 것대로 감각적인 것들에만 집중해서 감각 자체를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충 신이다라고 뭉뚱그려서 얘기하고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것에 빠져버린 사람은 그렇게 두뇌가 형성되게 된다. 그렇지 않다. 내가 미천하지만 내 감각으로 모든 것을 다 사실 그대로 파악해내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조금 더 지금 있는 지식과 이론과 문명이 쌓아둔 감각 기관을 활용해서 더 잘 감지해내기를 바라는 노력들을 해나가는 것이 올바른 인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컴파일 축을 다른 데 쓰기 — 관점 놓기의 실전

컴파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 롤러코스터 타이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 코딩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의 관점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꽤나 그럴싸한 얘기를 꺼냈고 그 관점으로 놓았더니 LLM은 꽤 많은 동의를 하며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나의 의도와 실전하지 않는 거고 말 같잖은 소리여도 괜찮다. 얘는 그렇게 작동을 했다는 것이다.

변수는 관점 — 너도 나도 바이브 코딩, 나는 왜 못하는가

너도 나도 바이브 코딩을 하고 있다. 변수는 무엇인가? 쟤는 잘 되는데 나는 왜 못하는가? 나는 잘하는데 쟤는 왜 아직도 못하는가 그 변수는 무엇인가 위로의 생각이다. 다른 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이브 코딩을 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고, 아이디와 터미널 사용법을 다루지 못하고, 플러그인이 뭐가 좋은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 관점을 바꿔서 보더라도 그 방향으로 끝까지 치고 나가서 밀어내보지를 못한다.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정체한다.

난 이미 답을 정했다 — 4회 1루에서 즉시적으로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이미 나는 답을 정했다. 답을 이 시대가 오기 전부터 정해두었고, 이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하며 있었다.

하지만 결합해 보는 순간, 4회 1루를 한번 해보는 순간 난 즉시적으로 알게 되었다. 난 누구보다도 이 심정적인 연결을 잘 해낼 수 있다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로그 종료 — 노래도 녹음됐을 것 같은데

이상이다. 오늘은 잡소리가 너무 많았다. 앞당겨야는 앞부분에는 노래가 켜져 있어서 노래도 녹음됐을 것 같은데, 일단 오늘은 로그를 종료하도록 한다.

STT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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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트 2026.04.21 화 오후 10:03 ・ 70분 38초 이은호

자 오늘 4월 21일 로그를 시작한다.

또다시 걸으러 나가는 중이다.

오늘은 LLM 사용 역량 측면에서

그 실력이 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실력보다 압도적으로 폭발적으로 나아지는 그런 계기를 맞이했던 것 같다. 이게 몇 번 성공적으로 이거를 다루는 그런 쾌감과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냥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또는 이제 여전히 어떻게 해서 잘 됐는지를 모르는 상태. 그냥 확률적으로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던 단계를 넘어서 됐었을 때에 무엇이 됐었는지 놓고 볼 수 있게 됐다. 오늘 구현된 것은 무엇이냐 그냥 감각적으로 느꼈다. 그것을 그 당시에 어떤 상태와 감각 감정과 이런 내부에 있는 생각과 이런 시기적인 상황에 대한 기록을 기록을 해야 되겠다. 하지만 그것을 이제 글 쓰는 방식의 기록이 아니라 로그를 찍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동영상이 한 서너 개가 찍혔었고, 그거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을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비디오 처리라고 하는 이제 몇 개가 되는 거를 처리하고 클라우드로 옮기고 처리하는 방식을 이제 고민을 하다가 엄청 간소화된 방법으로 오디오만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제 바꾸고 있다. 일단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더 이상 동영상을 찍어서 저장할 만한 여분 공간이 내 휴대폰에 없다. 그래서 휴대폰을 바꿀까 생각했는데 이제 처음 나오는 대책은 대체로 그게 좋은 대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처음 나오는 대책에 대해서도 이제 진척을 좀 시켜본다. 진척을 시키면서도 스스로 어느 정도 안다. 더 나은 대책이 있을 거라고. 근데 그거를 미리 처음 나온 대책을 전개시켜보지도 않은 상태로 생각만으로는 더 나은 대책을 찾아낼 수가 없다. 겪어봐야 된대. 처음 나온 대책을 계속 진행을 시켜 나가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왜 하는 것이었고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몸을 움직여 봐야 그 본질적인 과제 에센스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거를 이루어낸 다른 방법을 온 몸이 찾아낸다. 온몸으로 여기서 몸이라고 하는 거는 신체가 아니라 그 신체 그 너머의 그 안 깊이 그 모든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내는 물리적 세계, 그 이상을 넘어선 가능성들이 그것들을 찾아내게 된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걸 몸이라고 한다. 나는 아울러 그래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정말 제한적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능력들은 정말 초월적으로 많이 있다. 불과 윗세대 그 윗세대들은 이 근대화되기 전에 야생에서 풀을 뜯었고 논밭을 맵고, 근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초월적 존재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LM이라고 하는 것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직장이 뺏기니 하는 그런 이 속 좁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어차피 다 결정되어 있는데,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된 것은 이 생산성이 폭증된 것에 혜택을 누리고 하는 것이 이미 다 결정되어 있는데도 여전히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그런 통념에서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LLM을 잘 쓰기 위해서는 GUI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겪었던 인지의 홀가분함, 컴퓨터를 다루기 위해서 사용돼야 되는 인지 능력 그 부담을 GI가 크게 덜어냈다. 근데 guy는 물리적인 세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마우스 커서라고 하는 것도 그러하다. 여기서 여기 여기서 여기 2차원 평면 위에 무언가 있다라고 보여주고 그 있음을 진짜로 믿게 되었다. 사실 없는 것이다. 있어도 그런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래픽으로 충분히 보여지지 않는 그 더 많은 것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그래픽이라고 하는 것에 매몰되어 표면적인 것들로만 이해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난다. 나는 영상 제작 거래 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이 비주얼에 지나치게 빠진 사람들 나 좋아하지 않는다. 그 비주얼 자체만으로도 감각적인 것만으로도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패턴을 찾아내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있고,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 멋대로 또 평면적인 그 감각 평면적인 세계를 펼쳐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깊이가 없다. 그래서 평면적이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이미지를 아는 사람이든 깊이가 있는 사람은 그 평면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차우해낸다. 깊이라고 하는 한 차원이 추가로 더 생겨남에 따라서 우리는 초월적인 의식을 갖게 되고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2차원의 3차원을 비유했지만, 3차원이라고 해서 그 보다 높은 더 많은 차원을

빗대어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근데 3차원 다음은 뭐지? 4차원은 무엇인가? 공간의 차원을 3개로 묶으면은 3차원인 것이고, 4차원은 거기다가 시간을 더 할 수 있는데 그런 차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차원은 의도대로 직조할 수 있다. 엑시스 축이라고 본다. 그리고 평면이라는 개념도 있다. 축과 평면 축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서 평면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서 그 교차점들이 다 달라진다. 이것을 다루는 방법을 나는 깨우쳤다. 작업의 순서에서도 그렇고, 이 LLM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나와의 컨텍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서도 그렇다.

나는 오늘 많은 요령들을 부렸다. 그리고 그 요령들을 스킬스라는 형태로 응축시켰다. 지난 며칠간 기록을 남겼던 오디오 로그를 STT로 다 변환하여 문자로 올렸고, 웹사이트에 그거 올리면서 변환이 되겠다.

변환되는 과정에서 생각 덩어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 덩어리가 일단 의식의 흐름 수준 따라서 줄줄 풀어지긴 했으나, 그것들이 그 생각의 뭉치들이 또 다른 생각들과는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를 다시 분석하라고 했다. 그것까지는 다 구현은 안 됐다. 나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꽤 오디오만으로도 로그를 충분히 남길 수 있고, LM이 처리할 수 있는 상태로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말이라고 하는 매체는 인간이 문명을 만들기 전부터 신체의 일부로서 가지고 있던 매체로서, 지금 신체 외부에서 또 문화적인 약속으로서 후천적인 학습으로서 우리가 추가로 갖추게 된 후생 후천적 매체, 후천 습득 매체, 글 또는 타자기 또는 다른 매체들과는 비교했을 때, 이 정신과 마음과 이 몸 전체의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많은 변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매체인 것이다. 나는 이 매체를 끊으려고 몇 년간 노력을 해왔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거는 글이니까 글로만 생각하고 글로만 대화하자. 그렇게 나는 제약을 걸었다. 나는 생각, 몸, 느낌, 정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몸의 것들을 문자로 치환하여 내뱉는 것에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는 꽤나 많은 그럴싸한 것들을 글로 바꿔내었고, 글로 바꿔진 것들은 결국 또 컴퓨터에 작동 원리에 이점을 받아서 웹상에 게시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 배포되는데 제로 코스트를 드려서 한 번의 작성으로 수백만 수천 명에게 커뮤니케이션을 반복 생성함으로써 많은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그것이 글의 한계였다.

나는 글의 한계를 거의 다 깨달았다. 이 이상은 당분간은 내가 놀랄 만큼의 추가적인 확장성과 가능성들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글이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다 경험했다고 본다. 하지만 마리라는 매체는 내가 수 년간 봉인을 해놨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들이 여전히 충분히 많이 있고, 나 또한 몸과 말을 연결하는

매체적 인간으로서 다시 거듭 태어나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오늘도 이렇게 한강으로 나와 걸으면서 로그를 남긴다. 몸과 말이 연결된다. 몸과 매체가 연결된다. 결국 이 외부에 있는 LM이라고 하는 연산 장치 그 연산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간에 단순히 연산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수식 연산 또는 기존의 엑셀으로 연산되던 것. 그것과는 또 차원이 다른 완전히 접근이 다른 하지만 상당히 인간과 흡사하게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랑 다른 부분이 꽤 많은 이것들과 접속하고 협응하는 방법을 난 지금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LLM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 협응이다. 단순히 이것을 우리가 기존에 매체 활용 방법, 습관, 말의 습관, 글의 습관, 컴퓨터를 다루던 습관, 이거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이거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모니터 화면 안에서 뭘 두드리고 모니터에 있는 걸 본다라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

나의 두뇌와 이것이 연결이 된다라는 것은 몸으로 이해를 해야 되고 몸으로 받아들여야 된다. 몸 안으로 들여야 된다. 도구라는 것이 몸 바깥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몸 안으로 들어온다. 안과 밖에서 경계는 무엇인가? 나의 손은 몸 바깥에 있었다. 나의 신경 지도는 거기까지 뻗어 있지 않았었다. 갓난쟁이일 때 나는 내 팔을 제대로 조작하지 못했다.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원치 않았는데도 무엇인가를 지워버렸고,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지고자 했을 때 그것을 의도적으로 성취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었다. 반복 수트 함으로써 나는 그것을 익혔다. 넘어서 나는 도구를 익혔다. 숟가락, 젓가락을 질 수 있게 되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내 손이 어색했던 때만큼이나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 정도 숙달이 지나자 내 몸에 체화되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그다음 도구, 그다다음 도구들 또한 계속해서 나의 몸 안으로 들이는 중이다.

그중에는 어떤 지식의 영역도 있을 것이고, 방법론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관념도 있고, 약속도 있고, 풍습도 있으며 제도도 있다. 규칙들이다. 그 규칙들 중에는 많고 쓸데없는 것들이 있다. 상당히 많다. 어디로 향하는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채로 만들어진 규칙들이 있다. 온통 규칙들이다. 하지만 그 규칙들 중에서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채로 규칙인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하나는 원숭이는 어디로 갔는가. 폐쇄된 방에 원숭이 10마리를 넣어두고 바나나를 만지게 했을 때, 전기 신호가 통하게 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아무도 바나나를 만지지 않는다. 그 다음에 한 마리씩 교체를 하여 모든 원숭이가 바나나를 만져서 감전이 된 적이 없음에도 그 집단의 풍습은 유지되면서 바나나를 만지지 않게 된다. 바나나 주요 에너지원 우리가 추구해야 될 것, 안 추구하면 죽는 것,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는 그런 상태다.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종교든 무엇이든 관습이건 너무 무거워진 시스템이거나 그런 것들의 정리가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다.

내가 진행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거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인간은 인간대로 그 내부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잘못된 습관적인 DNA들이 여전히 내포되어 있고, 그리고 사라져 마땅해야 된다는 그런 관습과 풍습과 그런 것들 또한 요상하게 구린 매력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계속 이어질 것이다. 구린 것에 끌리는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진리에 끌리는 것만큼이나 구린 것에도 끌림의 요소들이 있고, 그것에 끌린 사람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LLM을 제대로 내 몸 안으로 들릴 수가 없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guil에 대한 편견을 인식을, 관념의 상식을 벗어야 된다. 컴퓨터는 이렇게 작동해라고 하는 것을 벗어야 된다. 개발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는 통념을 벗어야 된다. 여전히 코딩이 중요해 그렇지 코딩이 중요하지. 하지만 그 코딩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발목을 잡힐 것이다.

처음에는 수직적으로 이해도가 높아서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계속 얘기하지만 수련, 수렴접 작업을 할 때는 더욱 성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산적인 작업을 진행할 때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그것은 발목이 잡혀질 뿐이다. 그것은 편견이 되라 자신의 한계를 결정할 뿐이다. 여전히 수렴적 작업을 진행할 때에도 그만한 수요는 충분히 많이 있기 때문에 코딩을 알고 깊이 알고 하는 사람이 먹고 죽을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발산을 할게 우리의 과제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은 발산을 하는데 발목을 잡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라고 얘기하는 곳에 틀렸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틀렸다라고 얘기하기 전에는 최소한의 근거나 단서나 희미한 희미한 실마리라도 가지고 있어야 그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다.

그런 아무런 것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보편 다수와 반대한다고 반기를 들 때 그것은 그냥 패악질일 뿐이고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냥 사회에 혼동만 가할 뿐이고, 노이즈가 돼서 더 혼돈을 가중할 뿐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본다면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마라라고 하는 이야기는 꽤 맞아떨어진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보편 통념에 많이 쌓여 있고 그쪽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웃라이어 바깥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 익스플로레이션 외사 팔려는 사람, 파이어니어 개척을 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렇게 외부로 개척하는 유전자의 비율이 극히 일부 존재하도록 우리가 디자인해 놨을 수도 있다. 누군가 디자인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디자인된 종으로서 우리는 돌연변이를 계산된 계획된 대로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겨 먹은 대로 살아야 한다. 그 생겨 먹으면 우리의 한계를 결정하고 우리의 많은 단서가 되고 방향성이 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귀납적으로 생존과 번영을 증명해 왔기 때문에 옳다라고 믿으면서 앞으로 펼쳐질 다른 세상에서도 여전히 옳을 것이라고 믿어야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믿어야 된다. 그리고 정말 그것은 감각적으로 믿든 맹신적으로 믿든 아니면 이성적으로 따져보든 그것은 정말로 옳은 일이다. 100명의 집단이 있다고 치자 100명 중에서 모두가 다 개척자면은 그 집단은 바로 죽는다. 하지만 100명 중에 한두 명만 개척자라고 한다면 개척자는 무에서 나와서 아주 가끔씩 탐색 작업을 펼칠 것이다.

100세대가 지나고 개척자가 100명이 넘게 배출되었음에도 여전히 탐색은 실패하였을 수도 있다. 또 다시 900세대가 지나서 지금까지의 개척자가 천 명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개척을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세대는 계속해서 반복한다. 개척,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집단의 무리수보다 총 배출된 개척자의 수가 어느 정도인가 이 수가 너무 많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이다. 그것이 너무 많다면 지도자가 너무 많아지게 되고,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고, 야망이라는 것으로 과욕, 탐욕 이런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포화된 사회에서는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 것들을 억제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또다시 안정기를 찾아든 요즘이지만, 여전히 그런 것들은 우리 개척자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1% 또는 2% 정도 있다고 봐야 하겠다.

그런 사람들이 딱 퍼센트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한 사람 안에도 그런 기질이 조금씩은 들어 있고 많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조금은 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보는 것도 좋은 관점이겠다. 나 스스로 먼저 들여다보자면, 나 또한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들어가서 평안을 누리는 것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크다. 하지만 가끔은 그 욕구를 모두 다 압살할 정도로 과오를 순식간에 저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되돌아가지 못할 만큼의 항해를 출발해 버리는 그런 개척자적인 성질이 또 있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나중에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배는 떠났다. 그런 방식으로 많은 조상들이 항해를 떠났고 새로운 대륙을 찾았다.

개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익스플로레네이션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 인류에 대한 정의다. 인류는 그래 왔다. 항상 그래왔다. 불과 2 3세기 전에 모든 지구가 포화되기 전까지 그랬다. 여전히 최근까지도 외삼 탐험의 기회가 주어졌던 부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기만 하고,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도저히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꽤 많은 낙담을 했다. 바이오, 난 하이테크나 우주 산업으로 난 나가지 않았고, 뻔하디 뻔한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먹고 사는 짐을 마음의 태세로 장착하여 계속 반복하느라고 그러한 인간으로 되어 가는 중에도 내가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철학이다. 그 철학이 이제 빛을 바란다. 내가 했던 철학은 철학을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암기력이 딸려서 공부를 잘 못한다. 기억은 나의 약점이었으나 기억으로 두뇌를 발전시키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두뇌는 한정된 물리적인

퍼포먼스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두뇌를 어떻게 디자인하여 어떤 능력으로 특화하여 사용할지에 대해서 디자인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암기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두뇌에다가 스텝을 투자한다고 치자. 암기는 컴퓨터가 더 잘한다. 모든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한 그런 시대 연산도 컴퓨터가 더 잘한다.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거야 거기에 집중해야 된다. 컴퓨터는 그렇다면 무엇을 하지 못하는 거 철학이다. 철학 철학 삶에 대한 고찰이나 진리에 대한 탐구, 사주 팔자 그런 것들 철학의 오해이자 아니면 철학에 어떤 단면일 수도 있다. 철학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이 어휘는 정말 많은 모습을 가진다. 어떻게 어휘는 많은 모습을 가지는가? 그 많은 모습은 우리가 종이로 세상을 눌러담고 종이 위에 눌러담고 종이로 세상을 배웠던 관점에서 본다면 1번 해석, 2번 의미, 3번 의미, 4번 해석, 5번 용래 줄지어서 의미를 넓혀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관점으로는 철학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용량의 한계도 맞이한다. 하지만 어텐션 이즈, 올리디드 이즈가 나오기 전에 GPT가 나오기 전에 먼저 완성된 기술이 공간에다가 의미를 배치시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한다면 LLM을 더 잘 쓸 수 있다.

LLM을 잘 쓴다라고 하는 거는 기본적으로 의미에 관한 것이고, 그 의미 개념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LLM에 잘 작동하기 위해서 잘 사용하기 위해서, 잘 결합하기 위해서 충족시켜야 되는 가장 일 조건은 무엇이냐?

관점이다. 자 말을 다시 정정하겠다. LLM을 나의 것으로 장착하여 내 몸 안에 것으로 내 몸 안으로 들여서 폭발적인 초월체로 능력의 향상과 감각의 증진과 창의성, 생산성의 폭발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의 우선적인 조건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관점이다. 기존의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놓을 수 있는가? 관점이라고 하면은 관점이 있다. 관점을 가지다. 관점으로 보다 우리가 관점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다양하게 보지 않는다. 관점 뒤에 놓는다라는 것이 자주 나오는가? LM이 확률적으로 다음에 올 확률이 높은 문장, 그 단어는 어휘는 어휘는 이렇게 했을 때 관점 뒤에 놓는다는 자주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새로운 관점인 것이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위치상으로 의미의 중심점을 바라보는 관점이 틀어졌기 때문에 그 뒤에 펼쳐지는 새로운 축이 탐색 영역이 되고, 그 탐색 영역에서 남들은 가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의 맥락을 만들어내게 된다.

나는 이 3차원의 축으로 LLM을 인지하고 보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LM에 대한 인지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을 가시화하여 비유하여 계속 사용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감각적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이 이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겪어봐야 된다. 관점을 새롭게 놓아보는 경험을 쌓아 나감으로써 익혀야 되는 것이지, 어떤 기술이나 방법이나 이런 것들을 잔뜩 외운다고 해서 기존의 학습법처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몸 안으로 들여든다. 언어 그것을 우리는 초월했다. 나는 그것을 이미 철학, 현대 철학에서 느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들레즈다. 나는 대학생 때 들레즈를 미리 접한 것이 과연 맞는가. 이렇게 까리하고 힙한 철학을 이렇게 근본도 없이 접한 것이 옳은가 고대 철학부터 훑어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중간중간 철학 전체 사주를 쓱 훑어내는 작업가 군데군데 몇 철학자 매력적인 분들에게 빠져드는 경험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질 들레즈를 처음 접했던 것이 나에게서 정말 첫눈이다. 왜냐하면 철학 공부를 순차적으로 다 했다고 치자 물질을 이루는 원소는 무엇이고 참과 진리는 무엇이고 이성은 무엇이며 이원론이 무엇이고 정반합은 무엇이고 이런 예전의 생각 당시로서는 초월적인 그 당대의 관념과 의식 수준을 다 깨부셔 넘어서는 그런 생각들을 이었지만 지금 그것을 배운다면은 뇌 안에서 그런 관념들이 먼저 깊게 자리 잡을 것이다. 나는 플라톤의 이상 이대화 개념에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들레즈는 솔직히 말하면 느낌만 받았지 대단히 이해했다라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때 그때가 언제냐면 아주 뭐 600잔인지 600장인지 800장인지 되는 그 책을 정독을 하면서가 아니라 LLM을 사용하면서였다. 일을 하면서였다. 내 안의 감각이 들레즈의 철학적 이론과 개념들에 의해서 형성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잘 맞아 떨어짐으로써 나는 이 LLM을 남들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여전히 신체적인 한계는 있다. 내 육신과 인간이란 종으로서 가지고 있는 한계는 있다. 이런 한계는 없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초월 한 존재로서 싱귤라리티를 맞이했냐라고 한다면은 그 싱귤라리티로서는 충분히 맞이했다라고 볼 수 있겠다. 그다음에 진척될 발전의 속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겠지만 지금 나는 그 싱귤라리트를 오늘에서야 이제 넘었다 또는 가까워졌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 해봤기 때문에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라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 자신감이 붙는 해낼 수 있다라는 같은 패턴으로서의 자신감이 아니라 이거는 완전히 내가 모르는 거지만 나랑 너무 잘 맞는다라는 이런 감각적인 연결, 감각적인 확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확신할 수 있다. 이전에 해오던 것에 반복적인 성취와 성공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이것은 감각적인 연결이고, 오늘의 성취만큼이 제곱으로 그보다 더 큰 배수로 증폭되어 나타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내가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히 큰 사고를 칠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든다. 얘기가 너무 많이 새서 중간에 어디로 새려고 했는지 가지를 어느 정도 뻗쳤다가 다시 중간으로 돌아가려고 체크 포인트를 짚어 놨었는데 그 체크 포인트마저도 다 까먹어 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컨텍스트를 잃어버렸지만 지금 바로 직전까지 왔던 컨텍스트가 꽤 괜찮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완전 처음부터 다시 해도 괜찮다.

오늘 오디오 로그 라고 하는 거를 만들었고 구현했고, 거기서 추출해서 내용을 추출해서 스키스라는 것으로 만들어 냈다. 내가 알고 있던 개념들을 개념의 사전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어휘들의 역학관계가 만들어지도록 어느 정도 구조 관계를 엮어 놓으니 꽤 그럴싸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나만의 위키, 나만의 월드가 만들어졌다. 내 세상 안에서는 이것은 완벽하다.

그리고 이렇게 오디오로 나의 생각과 철학을 풀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의 월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오늘 스스로 구현을 했기 때문에 입력기만 똑같이 구현한다고 하면 남들도 남들 대로의 똑같은 마이 월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처음에는 에스 로그, 스피치 로그, 스피크 로그라고 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마이크에 음성을 녹음하고 전달하는 인식하는 그 정도 수준으로만 연관이 되지, 그다음 그다음에 고객의 효용 가치, 그 앞단에 있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런 것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까는 네이밍으로 오를 생각했다. 원 서클 하지만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마이 월드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에게나 마이옹 월드를 소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두 다 요즘은 명상이니 마음 챙김이니 하는 쪽으로 간다. 반대로 가는 것이다. 쏟아내라. 너저분한 것들을 쏟아내라.

내면으로 들어가고 침착하게 하고, 죽이지 말고 쏟아내라. 뱉어내라. 거기서 낱낱이 해부하고 거기서 이어내고, 연결하고 다시 정리해내라. 원하는 대로 가시적으로 펼쳐 놓아 줄 테니 거기서 그것을 보고 자네 스스로들이 선택을 하라.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어떻게 자신을 더 가꾸어 나갈 것인지.

시대적으로는 존재하게 됨을 선택할 수 없이 존재가 시작되어 버렸으나, 그 정해진 시간 안에서의 자율, 어떤 위치에 어떤 활동을 하면서

존재의 활동을 펼쳐 나갈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단순히 STT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픈 소스에 이미 STT는 충분히 널려 있고, 오픈 소스에 그 많은 것들이 열려 있다. 기술이라고 하는 것도 독점할 수 없다. 이미 오픈 소스 생태계에 모든 것이 열려 있다. 말만 하면 가져다 쓴다. 이거를 붙이는 그때 다른 그 도메인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른 차원으로 이거를 놓고 본다면, 관점을 깨부숴서 다른 차원에서 이걸 놓고 본다면 어떻게 형성되어야 되는가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관점을 놓는 표현만 할 수 있다면 된다. 그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에 관점이 제일 중요하다. 관점 그리고 그 관점은 어느 정도 예외성, 의외성이 포함되어 제공되는 것이 좋다. 정확하게 우리가 겨냥할 순 없다. 회차를 늘려야 된다. 자원이 부족할 때는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타석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코스트가 제로다. 얼마든지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 무한한 타석에 들어서 무한한 횟수에 안타를 치고 홈런도 친다고 하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게 됐다. 모두가 다 홈런을 치고 있으면 홈런을 쳤다는 소식 자체가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이제 타석이 얼마나 많이 들어서냐가 아니라 볼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확하게 쳐내야 된다. 볼이 날아와서 친다라는 거는 우리의 신체적인 반응과 감각으로 성취가 되는 것이지만, LM을 활용해서 우리가 타석에 들어서서 볼을 쳐낸다라고 했을 때,

볼이 맞아서 어디론가 멀리 나아갈 때는 볼을 제대로 봐야 된다. 볼이 3차원에서 날아오지 않는다.

비유는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이 관점에서 쉽게 벗어나야 된다. 이렇게 시도를 하다가 메타 인지를 하고, 아 야구에 대한 비유는 집어쳐야겠군. 이렇게 돌아갈 수 있는 자기 각성 고집이 없는 것. 그것이 LM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가 갖춰야 되는 자세다. 난 태도가 없다. 나는 고집이 없다. 하지만 나는 고집이 아주 심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내가 고집이 아주 심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나는 고집이 아주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집이 없다. 고집을 부릴 만큼 부려봤기 때문에 여간 어지간한 고집은 나한테는 고집도 아니다. 그렇게 고집을 비울 수 있으려면 많은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된다.

고집이 고집이 될 수 있으려면 기반이 탄탄해야 된다. 근거가 있어야 되고, 합당해야 하며, 고집을 부렸을 때 이득이 발생해야 된다. 그렇지 않은 상태로 손해가 발생할 것이 뻔함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고집을 비우는 것은 땡깡이다.

방금의 논리적 전개는 텍스트, 우리가 글이라고 하는 매체에서 주로 사용되던 논쟁의 기법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떠돈다. 많이 그런 이야기들로 우리는 생각에 기술을 배운다. 메타인지를 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지금 어떻게 본다면 나의 의식 체계를 결정하고 있는 하나의 골짜기들이다. 나는 이 골짜기들을 탄다. 이 골짜기들이 자동으로 타진다. LLM이 골짜기를 타듯이 나 또한 생각이 전개될 때 완전히 편견이나 습관성 사고나 고착화된 사유의 습관이나 쉬운 상식의 경로를 옮겨 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벗어 던져야 한다. 그러면은 기존에 파여 있는 습관들을 어떻게 타지 않을 것인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첫 번째 드는 생각 이 틀렸다라고 전제하며 머뭇거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조건 가까이 있는 빠른 곳에 깊은 곳에 빠져들기 때문에 그거를 일단 제쳐두면 그다음에 깊이 빠져 있진 않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훨씬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다음에는 조금 더 한차례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3~4개의 선택지가 보일 것이다. 또다시 머뭇거린다면 그다음에는 수십 개가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그 관점을 넓히는 대해 머뭇거림에 시간과 망설임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LLM은 그렇지 않다. 그 과정이 정말 순식간에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이것만 설계한다면 LLM이 대신 더 넓은 탐색을 사회의 단계를 전축시킬 수 있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가 다 녹음됐나 걱정이다. 클로바노트에 노래가 다 들어갔을 것 같아 괜찮다. 오늘은 그렇게 큰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노트가 다 망가지더라도 괜찮다.

이런 것들이 연연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다 나라는 존재로 기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귀결된 순간이 온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거를 어떻게 또 버려내느냐가 다음의 페이지가 될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 늦는다고 해서 큰 사고가 일어날 게 없다. 어차피 그 하루 이탈에 일찍 온다고 한들, 늦게 온다고 한들, 나는 그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을 테니까. 그것이 일찍 당겨오게 만드는 것은 미리 해놔도 나쁠 것이 없는 일이기에, 그리고 또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뭐든지 미리 당겨놓으면 다른 일을 진척하는 데도 당겨짐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땡겨 놓는 것이지, 그 단계가 온다면 나는 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돼야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조금 한다.

또다시 시대가 많이 변해서 또 한 번의 탈피를 해야 되는 시기가 내 삶에서 한 번 또는 두 번이나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그래서 이번 시기에 돈을 좀 벌어서 그다음에 변환 요구에는 변태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즐기는 것도 괜찮겠다. 지금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연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꽤 있고, 자연에 있다는 거는 결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내가 자연으로 간다 하더라도 나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같다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난 자연으로 가지 않더라도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자연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 차원 더 넓은 자연을 누리고 있는 것이지, 내 신체가 육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나의 존재를 결정하지 않는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얘기로 돌아와 보자.

오늘은 히스토리 역사를 한 축으로 늘어 넣고 다른 정보들을 또 그 축에다가 이어 붙이는 작업을 진행을 했다. 꽤 괜찮은 프로덕트가 나올 것 같다. 그 기본적인 축에 대한 모델이 완성되어 데이터셋이 만들어지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그거를 바라보는 인터페이스, 드러내는 인터페이스는 얼마든지 구현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방법론도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그 많은 기술들을 다는 알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는 조금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 코딩을 다 알고 극한의 수학적 난제를 풀어가면서 기술적인 구현을 해놨던 사람들 중에서 너무 그 문제에 심취하여 집중한 나머지 그걸로 무엇도 구현하기 어려운 아주 괴상 요란한 언어, 그리고 솔루션이 되어 버린 기술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기술들에 빠지지 않도록 잘 피해가면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것은 감이다 감각이다.

근데 그 감각이 좋지 않다면 넓게 퍼뜨려서 보는 방법을 익히면 그만이다. 어떻게 해서 퍼뜨려 보는가? 그것은 내가 어느 정도 현실 세계에서 생활하면서 힌트를 얻은 것이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데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암묵지라고 한다. 나는 그걸 끄집어내는 일을 한참이나 했다. 그 일을 할 때 나는 별다른 의식을 쓰지 않고 그 끌어내는 멘트를 또다시 이 타이밍이 왔구나, 이 멘트를 꺼낼 때가 되었구나라고 하면서 그저 그 말을 했을 뿐이다. 연기다. 일종의 그러면은 상대는 끄집어낸다. 단순히 질문을 해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다.

멸실을 하고 자존감을 상하게 한 다음에 속에서 생존 본능이 꿈틀대게 만든 다음에 인적 욕구를 슬슬 자극하고, 두려움과 위기를 느끼면서 본능적인 자극으로 속 깊에 있던 이야기가 끄집어 올라오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반추하게 만든 다음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자기도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의 길을 객관적으로 늘어놓음으로써, 그 사람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외워둔 문장을 뱉어내는 것을 그만두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인간의 또한 이렇게 깊이가 있다. 하지만 인간에 비유하자면 LLM은 또 다르다. 인정 욕구가 없다. 인간의 텍스트를 학습했다고 해서 그것들이 인간의 관습과 습관과 언어, 태도를 흉내내고 있지만 그것들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없다. 그것은 없다. 가지고 있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없다. 죽음에 대한 페널티로 이것을 통제해 낼 수 없다. 인정 욕구, 사회적인 인정 욕구, 더 나은 존재로의 희망, 이런 것도 없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울분 이런 것도 없다. 조직감, 소속감도 없다. 우리의 관점들이 무언가를 조작하려고 할 때, 대상을 대할 때 고려하게 되는 수많은 것들이 이곳에 없다. 차가운가 첫 느낌은 차갑다. 뜨거운가 알고 나면 뜨겁다. 또 다른 작동 원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수학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된다. 그리고 그 수학적인 작동 원리가 어떤 수식에 의한 것인지를 알아야 되는데, 나는 그거를 이해를 못한다. 근데 그걸 완전히 이해 못해도 나만의 이해한 관점으로 놓고 보고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 정도만 알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왜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하는 것이 조금은 게으르고 대충 넘어가는 것 같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 인생은 짧고 우리는 필멸자다.

그 수학 공식을 이해하려고 그게 먼저라고 얘기하여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쓴다면 3년, 5년이 지나도 나는 그거를 이해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해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 나는 지금 당장 이 도구를 더 잘 사용하여 남들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을 해야 된다. 그것이 나의 책무지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는 거는 조건이 아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된다. 왜냐하면 수직적으로 깊이 알아야 되기 때문에 수학적인 원리나 그래픽 카드에 의해서 연산이 어떻게 되는가와 의미는 어떻게 공간에 매핑되는가.

그리고 각도를 틀음으로써 축을 뒤틈으로써 관점이 만들어지고 의미의 영역이 형성되며, 그 사이를 유형할 팩터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주변에 골짜기가 무엇이 생기면 그것을 피해 가거나 아니면 옮겨 타거나 또다시 또다시 옮겨 타는 그런 것들은 설계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프렉티컬한 프렉티컬한 방법론을 더 많이 익혀서 이렇게 조작했더니 작동이 되는데요라는 것을 무엇보다 누구보다 많이 갖게 되는 것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나는 이것을 오디오로 녹음하고 있고, 오디오는 또다시 STT로 변환되어 내 사이트에 공개될 것이다. 그렇게 공개된 것들은 다시 체계화된 지식으로 되어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념화되고, 그 개념화 과정에서는 추상화도 일어나겠지만 완벽하지 않겠지만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어느 정도의 공식도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공식들을 또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거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 뺏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뺏기는 것이 아니다. 뺏길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그렇게 만들어낸 것들은 나의 파생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로 창조를 해내든 이용을 하든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열어두면 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한참이나 더 풀어내고 나면은 이 이야기 뭉치 안에서 어떤 렌즈, 예를 들면 채널이라고 하는 특수성을 반영하여 이 소재를 다시 재조립하여 말아내는 이야기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고 구현이 지금이라도 당장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텍스트의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의 양을 더 많이 쌓는다면 나는 이 텍스트로 유튜브 채널을 하나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시즌 1 동영상 20개 정도는 자동으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동 게시를 올려 둔다면 나는 나의 부해가 유튜브 채널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발행하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AI 슬롭인가? 그렇지 않다. 나의 고유한 것인가 그렇다. 그것은 복제인가 그렇다. 복제인데 손실 복제인가? 그렇지 않다. 손실 복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것이다.

현 차원에서 다른 차원의 것을 만들어서 현실로 다시 직조해낸 것이다.

깊이 알아야 된다. 추상적인 거 높이도 알아야 된다. 오늘은 또 컴파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컴파일 그것은 무엇인가? 저 수준의 언어로 변환하는 것을 컴파일이라고 한다라고 정의를 하자. 사전적인 정의가 다르다라고 테크를 거는 것은 여전히 이 얘기를 들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전적인 정의를 버리고 마이너한 정의, 아무도 생각지 못한 정의를 찾아내는 것이 관점을 놓는다라는 것이고, 그 관점을 어떻게 다양하게 놓을 수 있을지는 지금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어떤 쪽에 놓는 것이 좀 맞아떨어지는 확률적으로 맞아떨어지는지 하지만 그 힌트는 아무한테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으로 감으로, 취향으로 남들과 같이 관점을 놓는 게임에 들어섰을 때 내가 더 좋은 관점을 좋은 관점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관점, 그 출발점이 되는 관점, 도구로서의 관점, 그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여전히 컴파일이 어떤 뜻인지를 사전적인 정의가 맞네 틀리네라고 들먹이면서 토를 달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 LLM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구시대의 사람인 것이다. 이것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자신의 관습과 생각 방식을 덜어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거를 각오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벽을 느낄 것이다.

족새에 잡혀 있는 자신을 하지만 그 잡고 있는 족새는 바로 자기 자신을 임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해내는 것은 결국 실존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한계를 인지하는 것. 생겨 먹음을 인정하는 필멸자 그것이 이 LM에 적합한 존재로서 나아가는 출발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관점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고, 관점을 가지지 못한다면 LLM을 전혀 이용할 수가 없다. 다시 컴파일 얘기로 돌아와 보자. 컴파일 그런 것으로 내가 정의를 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개발자가 아주 저수준의 언어로 그것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그것이 놀라운 거는 그 시대적으로 그렇게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냈다는 것. 첫 번째, 두 번째, 그 시대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언어보다 한 단계, 두 단계 정도 더 낮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 예를 들면 천공카드를 직접 뚫어가면서 우주선을 지구 밖으로 보낸 사례보다 어쩌면 더 복잡한 일일지도 모른다.

복잡하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복잡한 게 아니라

불필요하게 안 해도 짓을 했다. 안 해도 되는 짓을 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허용치를 넘어서는 복잡도를 처리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저 수준이냐 고 수준이냐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것이 저 수준이 아니었고, 조금 다음 시대에는 그것이 똑같은 것도 저 수준으로 여겨지곤 한다. 문제는 2차원이다. 겹겹이 쌓여 있는 2차원. 저 수준으로 가려면 더 작동 원리와는 맞아떨어지게 문제가 생기지 않은 원시적인 더 잘 작동하는 언어를 다룰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컴파일, 변환하고 추상화하는 단계에서 많은 것들의 손실이 일어나게 된다. 언어로 그래서 언어를 만든다. 상위의 언어, 하위의 작동 공식들이 묶어서 자주 쓰는 것들로 암호화된 상위의 언어, 그것들을 다시 암호화한 상위의 언어들을 만들어내며 언어는 겹겹이 쌓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손실이 생긴다. 상위의 언어를 쓰면은 아랫단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빈틈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수학적인 문제, 확률적으로 그런 것들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특정한 하드웨어에서 특정한 수식을 진행할 때 계속 연산 오류가 생기는 것도 이렇게 겹겹이 쌓여버린 언어의 단계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계속 떠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자연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가졌었는데 드디어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연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냥 이전에 언어들보다 더 상위에 있다.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자연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언어 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자연어를 쓴다라는 거는 그냥 우리가 상위를 추구할 수 있는 최상위의 언어다. 이렇게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고, 그 생각으로는 여기가 끝인 줄로 알게 된다.

관점을 또 다른 관점을 놓아보자니 여기가 끝이 아니라면, 그럼 그다음에 무엇이 있는가 연속적으로 층층이 쌓아 올렸기 때문에 그다음에도 층이 있다라고 생각해 보면 그쪽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을 찾아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주장을 하고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연속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관점으로 연속성이 있으므로 그다음에 무엇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챗gpt한테 제미나이한테 클로드한테 물어보게 되면 무엇인가 답을 내어놓는다. 그 답을 내어놓은 거를 토대로 가설이다. 그것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재민아한테 같이 물어봐야 된다. 다 각각 다른 답을 내 놓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또 패턴이 있다 한다면 같은 답이 여럿 나올 것이다. 동시에 6개, 8개 이상을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제미나이 프로만으로도 이것이 사용량을 초과하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의 한 단계 더 높은 업그레이드를 진행하여 한 달에 5만 원 정도 되는 돈으로 재미나를 쓰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연속성을 찾아낸 다음에 그 축 액시스를 가지고 다른 데 빗대어 보는 것이다. 겹쳐 보고 평행으로 놓아 보는 것이다. 다른 것들을 더 찾아낼 수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LLM을 사용하고 있다. 컴파일에서 얘기를 나왔다 보니 이 컴파일이라고 하는 액시스를 내가 다른 데 썼다. 그 얘기를 하려고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컴페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만의 관점으로 방금 설명을 했으나 그 설명에 이해를 하거나, 아 그 관점은 참 재밌군요 하는 것은 지금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된 관점을 다른 데 어떻게 쓸 것인가?

우선은 관점을 놓을 수 있어야 된다. 컴파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 롤러코스터 타이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 코딩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의 관점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꽤나 그럴싸한 얘기를 꺼냈고 그 관점으로 놓았더니 LLM은 꽤 많은 동의를 하며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나의 의도와 실전하지 않는 거고 말 같잖은 소리여도 괜찮다. 얘는 그렇게 작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 어떤 그냥 질문들 LLM에다가 세종대왕은 몇 년도에 태어났나요라고 물어보는 단편적인 백과사전 검색기로 사용한 것을 아득히 넘어선 LLM을 진정으로 제대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나는 사용법을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얘기로 돌아가자면은 그렇게 해서 저 수준의 언어를 사용해서 그걸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아주 잘 작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만드는 기간에 들어갔던 개발 리소스와 시간은 꽤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아주 저수준의 언어로 작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코드를 보아하니 꽤 저수준의 언어로 작성되어 중간중간에 영10일이 꽤 포함되어 있었다. 완전한 영일 영일 코드는 아니었지만 그 상위 또는 그 상상 위에 있는 언어로 작동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면은 그 코드들이 어떻게 무엇을 의미하고 하는지를 어떻게 이어내는가? 단순히 그래픽 2차원 평면에 펼쳐지는 픽셀 드레 그래픽들을 처리하게 하기 위한 단계지만 그 단계의 겹은 몇 단계를 처리했는가? 다섯 단계인가 6단계인가 일곱 단계인가? 나는 이거를 인간은 일곱 개업의 존재다라고 하는 개념을 가지고 나의 관점을 재미있게 한번 철학 사상적으로 풀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개념에 대해서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다. 다시 중요한 얘기를 하자면 아래로 위로 깊이 해야 된다는 것이다. 깊이의 축이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보이는 것대로 감각적인 것들에만 집중해서 감각 자체를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된다. 그리고 그 너머 무엇이 있는지는 알아내기 위해서는 개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관점들이 필요하다. 그 너머에 있는 게 무엇인가 있긴 한데, 대충 신이다라고 뭉뚱그려서 얘기하고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것에 빠져버린 사람은 그렇게 두뇌가 형성되게 된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내가 미천하지만 내 감각으로 모든 것을 다 사실 그대로 파악해내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조금 더 지금 있는 지식과 이론과 문명이 쌓아둔 감각 기관을 활용해서 더 잘 감지해내기를 바라는 노력들을 해나가는 것이 올바른 인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면 아래로도 작동 원리를 알아야 되고, 근데 그것을 다 아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컴파일을 여러 기업을 한다는 거는 그만큼 위로의 생각을 하는데 시간을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오자. 너도 나도 바이브 코딩을 하고 있다. 변수는 무엇인가? 쟤는 잘 되는데 나는 왜 못하는가? 나는 잘하는데 쟤는 왜 아직도 못하는가 그 변수는 무엇인가 위로의 생각이다. 다른 축이다. 그 위라고 하는 것은 평면적으로 봤을 때 위 아래가 보일 수도 있고 전후 관계가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축을 바꿔보자. 또 다른 전후 관계가 생기고, 상하 개념이 생긴다. 또 다른 축으로 넣어보자.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어디든 놓든 자기 멋대로 놓고 나아가면 된다. 그럼 무엇이든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이브 코딩을 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고, 아이디와 터미널 사용법을 다루지 못하고, 플러그인이 뭐가 좋은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 관점을 바꿔서 보더라도 그 방향으로 끝까지 치고 나가서 밀어내보지를 못한다.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정체한다. 그것이 지금 현 존재들에게 열린 가능성. 그 안에서 갈림길에 있는 우리들이다.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이미 나는 답을 정했다. 답을 이 시대가 오기 전부터 정해두었고, 이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하며 있었다. 대충 왔는가 생각은 했지만, 작년부터 바이브 코딩이니 하는 얘기가 들렸었지만, 그것이 이것인 줄은 나는 몰랐다. 하지만 결합해 보는 순간, 4회 1루를 한번 해보는 순간 난 즉시적으로 알게 되었다. 난 누구보다도 이 심정적인 연결을 잘 해낼 수 있다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이상이다. 오늘은 잡소리가 너무 많았다. 앞당겨야는 앞부분에는 노래가 켜져 있어서 노래도 녹음됐을 것 같은데, 일단 오늘은 로그를 종료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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