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 (trial and error)
미리 정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 앞에서, 일단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그 결과를 확인한 뒤, 틀렸으면 고쳐서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해 답에 다가가는 문제해결 방식. 깊은 이론적 추론 대신 실제로 해 보고 얻은 결과를 길잡이로 삼는다는 점이 핵심이며, 실패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시도를 더 정확하게 만드는 정보로 쓴다는 데 그 묘미가 있다.
너, 깜깜한 방에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더듬어 본 적 있지. 벽 어디쯤이라는 건 알지만 정확한 자리는 모른다. 그래서 너는 손바닥으로 벽을 쓸며 여기, 아니네, 조금 위, 아니네, 옆으로, 하고 옮겨 간다. 한 번 헛짚을 때마다 너는 '여긴 아니다'라는 걸 새로 안다. 그렇게 틀린 자리를 하나씩 지워 가다 보면 손끝에 딸깍, 스위치가 걸린다. 누가 좌표를 알려 준 적도 없는데 너는 방금, 머리로 답을 계산해 낸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 답을 찾아냈다. 오늘 이야기는 이 너무도 흔한 더듬거림이, 어쩌다 한 무리의 굶주린 고양이들 앞에서 인간이 수천 년 믿어 온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깨뜨리게 됐는가에 관한 거다.
이름부터 따져 보자. 이 말은 원래 학자의 것이 아니라 뱃사람의 것이었다. 망망대해에서 자기 배가 지금 위도 몇 도에 있는지 알아내려면, 정해진 공식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적당한 값을 하나 넣어 계산해 보고, 어긋난 만큼 값을 고쳐 다시 넣고, 또 고치기를 되풀이해 참값에 바짝 다가갔다. 전해지기로는 대략 1830년대에 이미 바다에서 위도와 시각을 시행착오로 구하는 법을 다룬 항해 책이 있었을 만큼, 이건 셈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손버릇이었다. 이 손버릇이 마음의 작동 원리로 옮겨 온 건 19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베인을 거치면서다. 그는 사람이 새로운 동작을 익히는 과정을 이 더듬거림으로 설명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쓰는 '시행착오'라는 바로 그 한 단어로 못을 박은 사람은 따로 있다. 19세기 끝 무렵 영국의 동물심리학자 로이드 모건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처음부터 이 단어를 떠올린 게 아니라, '시도와 실패'니 '시도와 연습'이니 하는 말들을 이리저리 굴려 보다 결국 '시도와 착오'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름 자체가 시행착오로 지어진 셈이다.
그런데 이 말이 진짜 무게를 얻은 건, 미국의 한 젊은 심리학자가 고양이를 나무 상자에 가두면서다. 1890년대 끝자락,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배고픈 고양이를 직접 만든 '퍼즐 상자'에 집어넣었다. 안에서 발판을 밟거나 끈을 당기면 문이 열려 바깥의 먹이로 나갈 수 있는 장치였다. 여기서 긴장이 선다. 당시 사람들은 동물도, 사람도, 문제를 풀 때 머릿속에 번쩍 하고 답이 떠오르는 '통찰'의 순간이 있다고 믿었다. 막혀 있다가 아하, 하고 길이 보이는 그 순간 말이다. 손다이크의 고양이는 그 믿음을 보기 좋게 배신했다. 상자에 처음 들어간 고양이는 통찰 같은 건 없이 그냥 아무 데나 긁고 물고 천장을 향해 뛰었다. 그러다 순전히 우연으로 발판을 건드려 문이 열린다. 다음번에 다시 넣으면? 바로 발판으로 가지 않는다. 또 한참 헤매다 우연히 연다. 다만 헤매는 시간이 시도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들쭉날쭉하면서도 꾸준히 줄어든다. 손다이크가 그 탈출 시간을 그래프로 그렸더니, 어느 순간 번쩍 떨어지는 절벽이 아니라 톱니처럼 삐죽거리며 비스듬히 내려가는 완만한 비탈이 나왔다. 이 비탈이 증언하는 건 하나다. 고양이는 깨달아서 나온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부른 행동은 살아남고 헛된 행동은 시들어 가는 과정을 몸으로 통과해 나온 것이다. 그는 1898년 이걸 '효과의 법칙'이라 불렀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행동은 그 상황에서 다시 나타날 확률이 높아지고, 불쾌한 결과를 낳은 행동은 낮아진다는 것. 그러니까 시행착오의 정체는, 실패를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실패가 다음 시도의 확률을 조용히 깎아 내며 너를 답 쪽으로 떠미는 일이었다.
이 더듬거림을 가장 거대한 규모로, 가장 집요하게 밀어붙인 사람을 굳이 꼽자면 토머스 에디슨이다. 그가 오래 타는 전구 필라멘트를 찾을 때, 머릿속 이론으로 정답 물질을 짚어 낸 게 아니었다. 그는 탄소를 입힌 무명실, 종이, 온갖 식물 섬유, 멀리 대나무까지, 손에 잡히는 후보를 닥치는 대로 태워 보았다. 수천 가지를 시험했다고 전해진다. 안 되는 재료를 하나씩 지워 가는 그 끈질긴 소거가 곧 그의 방법이었다. 그가 남겼다는,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안 되는 방법 만 가지를 찾아낸 것이라는 말은, 실패한 시도조차 버리는 게 아니라 지도에 표시해 둔다는 시행착오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오래된 더듬거림이 컴퓨터로 건너오면서 가장 영리한 얼굴을 얻었는데,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기계에게 시행착오를 제대로 시키려면, 사람이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의 가장 윗단추부터 바꿔 끼워야 했다. 사람은 보통 한 번 잘 되는 방법을 찾으면 거기 눌러앉으려 한다. 그런데 그러면 더 좋은 답이 저 너머에 있어도 영영 못 만난다. 그래서 학자들은 기계에게 일부러 '지금 제일 나아 보이는 길로만 가지 말고,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일정 비율로 자꾸 찔러 보라'고 명령하는 틀을 짰다. 잘하는 것을 우려먹기와 안 해 본 것을 들쑤시기 사이의 줄다리기를, 사람의 변덕이 아니라 규칙으로 박아 넣은 것이다. 생물의 진화가 무작위로 변이를 일으키고 더 잘 살아남는 쪽을 남기듯, 답 후보들을 마구 변형시키고 더 나은 놈만 골라 다음 세대로 넘기는 방식이 그렇게 나왔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게임을 거듭 두며, 좋은 수에는 점수를 얹고 나쁜 수는 깎아 가며 스스로 강해지는 그 학습의 뼈대 역시, 따지고 보면 손다이크의 굶주린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하던 바로 그 일이다. 효과의 법칙이 수식으로 번역되어 기계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너가 정답을 미리 알 수 없는 막막한 문제 앞에 서거든, 책상에 앉아 완벽한 한 수를 머리로만 짜내려 애쓰지 마라. 그러다 한 발도 못 떼는 사람이 많다. 차라리 작고 값싼 시도를 일단 하나 던져라. 틀리거든 절망하지 말고, 그 실패가 어느 자리를 지워 줬는지를 챙겨라. 그리고 그만큼 더 영리해진 손끝으로 다음을 다시 더듬어라. 깜깜한 방의 스위치는 노려본다고 켜지지 않는다. 부딪치고, 고치고, 또 부딪쳐야 딸깍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