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문제해결·발견술

제1원리 사고 (first principles)

어떤 문제를 풀 때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는 통념이나 비유에 기대지 않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까지 분해한 다음, 그 바닥에서부터 답을 다시 쌓아 올리는 추론법. 남이 내린 결론을 빌려 오는 대신 출발점 자체를 의심하고 새로 짓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너, 누가 '이건 원래 이만큼 들어'라고 말할 때를 떠올려 봐라. 배터리는 원래 비싸. 이 사업은 원래 마진이 이 정도야. 이 일은 원래 이 순서로 해. 그 '원래'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너는 보통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싶어서. 그런데 그 '원래'라는 말 속에는, 누군가 예전에 한 번 내린 결론이 오래 굳어 화석이 된 채 들어 있다. 오늘 이야기는, 그 화석을 깨고 맨 밑바닥 흙까지 파 내려가 거기서부터 다시 집을 짓는 사람들에 관한 거다. 그리고 이 사고법은 최신 실리콘밸리의 발명품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천삼백 년 전 한 그리스 사람의 서랍에서 나왔다.

먼저 그 서랍부터 열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앎이 어딘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봤다. 어떤 주장을 '왜?'라고 물으면 그 근거가 나오고, 그 근거에 또 '왜?'라고 물으면 더 깊은 근거가 나온다. 이걸 무한히 거슬러 갈 수는 없다. 어딘가에는 더 이상 '왜?'가 통하지 않는, 다른 무엇으로도 증명되지 않고 그 자체로 서 있는 바닥이 있어야 한다. 그는 그 바닥을 그리스어로 '아르케', 즉 시작점이라 불렀고, 이게 라틴어를 거쳐 '제1원리'라는 말이 됐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누가 새로 발명한 게 아니다. 모든 학문이 어차피 깔고 앉아 있던 그 맨 밑돌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이름표를 붙여 준 거다.

이 발상이 단순히 '바닥이 있다'를 넘어 '그 바닥까지 내가 직접 다시 파 내려가겠다'는 행동으로 바뀐 건 한참 뒤다. 대략 17세기,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가 한 일이 그거였다. 그는 자기가 평생 참이라 믿어 온 것들을 한번 죄다 의심해 보기로 했다. 책에서 배운 것, 스승이 가르친 것, 다들 당연하다 하는 것 —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일단 한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다 걷어내고 났을 때 마지막까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가 남았다. 지금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그는 거기를 맨 밑돌로 삼고, 그 위에 다시 하나씩 쌓아 올렸다. 빌려 온 결론을 전부 버리고 자기가 검증한 바닥에서 다시 짓는 것 — 제1원리 사고의 골격이 여기서 또렷해졌다.

그런데 이 오래된 사고법이 21세기에 와서 가장 통쾌하게 쓰인 장면을 하나 끝까지 따라가 보자. 전기차 이야기다. 2010년 무렵, 전기차를 만들려는 사람들 앞에는 절벽 같은 벽이 하나 있었다. 배터리가 너무 비쌌다. 당시 배터리 묶음 한 단위는 대략 600달러 선이었고, 업계의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배터리는 원래 비싼 거다, 늘 비쌌고 앞으로도 비쌀 거다, 그러니 싼 전기차는 불가능하다. 일론 머스크는 이 '원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비유로 따지길 멈추고 — 즉 '예전 배터리가 비쌌으니 이번 것도 비쌀 것'이라는 식의 유추를 끊고 — 바닥까지 분해해 물었다. 그래서 이 배터리는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코발트, 니켈, 알루미늄, 탄소, 그리고 분리막에 쓰는 약간의 고분자와 금속캔. 그게 전부다. 그러면 그 원재료들을 금속 거래소에서 시세 그대로 사 모으면 한 단위에 얼마인가. 따져 보니 대략 80달러였다. 600달러와 80달러. 그 사이의 거대한 틈은 물리법칙이 정한 게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며 한 번도 다시 파 보지 않은 관성이 만든 거품이었다. 재료를 사다 영리하게 조립하는 방법만 찾으면 그 틈은 좁혀진다. 이 한 번의 분해가 전기차의 경제성을 통째로 다시 그렸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머스크가 한 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게 아니다. 배터리 재룟값은 누구나 거래소에서 볼 수 있었다. 그가 한 건 '원래 비싸다'는 결론을 일단 쓰레기통에 넣고, 아무도 다시 안 세던 맨 밑의 숫자부터 직접 세어 본 것뿐이다. 제1원리 사고의 힘은 거창한 신지식이 아니라, 모두가 빌려 쓰는 결론을 거부하고 바닥에서 새로 합산하는 그 지독한 우직함에 있다.

그리고 이 사고는 기계에까지 내려가 앉았다. 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모든 정리를 몇 개의 더 못 쪼개지는 약속, 즉 공리에서 출발해 한 줄 한 줄 증명으로 쌓아 올렸는데, 이게 바로 제1원리 그 자체다. 오늘날 컴퓨터는 이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가장 밑의 공리 몇 개만 쥐여 주면 거기서부터 논리만으로 거대한 증명을 기계적으로 조립해 낸다. 물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실험으로 얻은 경험값에 기대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방정식에서 출발해 물질의 성질을 처음부터 계산해 내는 방식을, 사람들은 아예 '제1원리 계산'이라 부른다. 다만 기계에게 이걸 시키려면 사람의 머릿속 직관에 머물던 '근본까지 쪼갠다'를, 무엇을 끝점으로 삼고 어떤 규칙만 허용할지 한 치도 빠짐없이 미리 못박아 두는 일로 바꿔야 했다. 어디까지가 더 못 쪼개지는 바닥인지를 사람이 손수 정의해 넣고서야, 비로소 기계가 그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니 너가 '이건 원래 이렇습니다'라는 말을 듣거나, 스스로 그렇게 말하며 멈추려는 순간을 만나거든, 데카르트처럼 한번 의심하고 머스크처럼 한번 분해해라. 이 결론은 물리법칙이 정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옛날에 내린 판단이 굳어 화석이 된 것인가. 그 '원래'를 깨고 맨 밑돌까지 내려가 거기서부터 다시 세어 보는 것. 그게 이천 년 전 그리스 사람이 이름 붙인, 가장 오래되고 가장 무서운 생각의 삽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