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인식 (pattern recognition)
흩어져 보이는 여러 사례나 자료 속에서 반복되는 구조, 규칙, 닮은꼴을 알아채는 인지 능력이자 사고법. 낱낱의 정보를 따로따로 보는 대신 그것들이 이루는 전체의 모양과 관계를 한 덩어리로 파악한다는 점이 핵심이며, 인간과 동물에게 본래 갖춰진 능력이면서 동시에 과학과 기계가 갈고닦아 온 방법이기도 하다.
너, 한밤중에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본다고 해보자. 그냥 흩뿌려진 점들일 뿐인데, 너는 어느새 거기서 국자 모양을 찾고 사냥꾼의 허리띠를 찾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점과 점을 멋대로 이어 그림을 만든다. 이게 네 머리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하는 일이다. 흩어진 것들 사이에서 모양을 길어 올리는 일. 너무 당연해서 능력인 줄도 모르는 이 재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1854년 여름, 런던의 한 동네에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 나가던 때의 이야기다.
그 동네 이름은 소호. 8월 끝자락에 콜레라가 터져 열흘 만에 오백 명이 쓰러졌다. 당시 의사들은 병이 '나쁜 공기', 그러니까 냄새나는 독기를 들이마셔서 옮는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존 스노라는 한 의사는 그 통념을 의심했다. 그는 이상한 짓을 했다. 죽은 사람들의 집을 동네 지도 위에 하나하나 막대로 찍어 나간 것이다. 한 집에서 둘이 죽으면 막대 두 개, 셋이면 셋. 그렇게 지도가 점점 채워지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모양을 드러냈다. 죽음의 막대들이 동네 한복판의 어느 물펌프 하나를 중심으로 빽빽하게 모여 있었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집은 멀쩡했고, 그 펌프 곁은 새카맸다. 스노는 그 덩어리진 모양 하나로 확신했다. 범인은 공기가 아니라 저 물이다. 9월 7일, 그는 관리들을 설득해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내게 했고, 죽음의 행렬은 멎었다. 알고 보니 그 우물은 새는 하수에 오염돼 있었다. 그가 한 일은 새 약을 발명한 게 아니다. 흩어진 죽음들 속에서 '뭉쳐 있다'는 단 하나의 모양을 알아챈 것, 그게 전부였다.
스노가 한 일에는 한참 뒤에야 또렷한 이름과 설명이 붙었다. 사람의 눈은 어째서 별을 별개의 점이 아니라 국자로 묶고, 죽음을 낱낱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보는가. 20세기 초, 독일의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가 이 물음을 파고들었다. 전해지기로는 그가 기차를 타고 가다 철길 신호등의 두 불빛이 번갈아 깜빡이는 걸 보고는, 그게 두 개의 불이 아니라 하나의 불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사로잡혔다고 한다. 1912년 그는 이걸 실험으로 파고들어, 우리 머리가 부분을 따로 보기 전에 전체를 먼저 본다는 걸 보였다. 가까이 있는 것끼리 묶고, 닮은 것끼리 묶고, 끊긴 선도 이어서 완성된 모양으로 메우려는 — 이 묶는 버릇에 그와 동료들은 게슈탈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이라는 말. 패턴 인식이 신비한 재능이 아니라 마음이 작동하는 기본 방식임을 처음으로 또렷이 못 박은 셈이다.
이 알아채는 힘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패턴을 너무 잘 읽으면, 아직 없는 것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1869년 러시아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그랬다. 그는 알려진 원소들을 무게 순으로 늘어놓다가 성질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결을 알아챘고, 표를 짜 넣었다. 그런데 결을 따라가다 보니 표 군데군데 빈칸이 생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료가 부족하다 여겼을 그 구멍을, 멘델레예프는 거꾸로 읽었다. 패턴이 이렇게 가지런하니, 이 빈칸을 채울 원소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는 아직 발견되지도 않은 그 원소들의 무게와 성질까지 미리 적어 두었다. 사람들은 코웃음 쳤다. 그러나 1875년 그가 예언한 자리에 꼭 맞는 원소가 발견됐고, 1886년에 또 하나가 나왔다. 패턴을 끝까지 신뢰한 자가, 보이지 않는 것의 모양까지 그려낸 것이다.
이 오래된 인간의 재주를 기계에 옮기는 일은, 뜻밖에도 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끈질긴 난제였다. 처음 사람들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패턴을 규칙으로 적어 기계에 넣어 주면 되겠지. 손글씨 7을 알아보게 하려면 '위에 가로획, 아래로 빗금'이라고 일러 주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사람마다 쓰는 7이 다 달라서, 규칙은 끝없이 예외에 부딪혀 무너졌다. 수십 년을 그 벽에 막혀 헤맸다. 돌파구는 생각의 윗단추를 통째로 바꾸고서야 열렸다. 패턴을 사람이 일일이 짚어 주겠다는 발상을 버리는 것. 대신 7이라 적힌 손글씨 수만 장을 기계에 들이붓고, 거기서 '7스러움'이라는 모양을 기계가 스스로 길어 올리게 하는 쪽으로 틀을 갈아엎은 거다. 규칙을 주입하던 자리에서 사례로부터 배우게 하는 자리로 — 이 상위 틀의 전환이 일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기계는 사람 얼굴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알아듣게 됐다. 오늘날 네 사진첩이 친구 얼굴을 알아서 묶어 주는 것도, 베르트하이머가 말한 그 '묶는 마음'을 기계가 사례로 익힌 결과다.
그러니 너가 여기저기 흩어진 사례들 앞에 서거든 — 고객 불만 몇 건이든, 들쭉날쭉한 매출 숫자든, 자꾸 어긋나는 일정이든 — 하나씩 따로 처리하고 끝내지 마라. 한 걸음 물러나 전부를 한자리에 펼쳐 놓고 물어라. 이것들이 함께 만드는 모양은 무엇인가, 어디에 뭉쳐 있고 어디가 비어 있는가. 그 뭉친 자리가 스노의 펌프이고, 그 빈자리가 멘델레예프의 빈칸이다. 낱낱을 보는 자는 사건을 겪을 뿐이지만, 모양을 보는 자는 원인을 짚고 아직 오지 않은 것까지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