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의사결정·판단

시나리오 플래닝 (scenario planning)

하나의 미래를 맞히려 들지 않고, 일어날 법한 서로 다른 미래를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그려 그 각각에 미리 대비하는 사고법.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실성 속에서 '무엇이 맞을까'가 아니라 '어떤 미래가 와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봐 둬야 하나'를 묻는 것이 핵심이다.

너, 내일 우산을 챙길지 말지 정한다고 해보자. 그건 쉽다. 일기예보가 비 올 확률을 숫자로 찍어 주니까. 그런데 십 년 뒤에 네 회사가 어느 나라에 공장을 지을지를 오늘 정해야 한다면? 십 년 뒤의 유가, 환율, 전쟁, 규제 — 이걸 누가 확률로 찍어 주나. 아무도 못 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운에 맡길 수도 없다. 자, 이 막막함 앞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미래를 '맞히기'를 포기했다. 대신 미래를 '여러 개' 만들기로 했다. 오늘 이야기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앞날 앞에서 점쟁이가 되기를 그만두고 대신 이야기꾼이 되기로 한 사람들에 관한 거다.

이 발상이 처음 또렷한 꼴을 갖춘 자리는, 뜻밖에도 인류가 가장 떠올리기 싫어한 미래였다. 1950년대 미국, 핵전쟁. 랜드연구소라는 두뇌집단에 허먼 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맞닥뜨린 문제는 이거였다. 핵전쟁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어 통계도 전례도 없는데, 그래도 군은 '만약 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 둬야 한다. 데이터가 0인 미래를 어떻게 다루나. 칸의 답이 기발했다. 일어날 법한 전쟁의 전개를 마치 영화 대본처럼 여러 편의 줄거리로 써 내려간 것이다. 적이 이렇게 나오면 이렇게, 저렇게 나오면 저렇게. 바로 이때 그는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쓰던 '시나리오'라는 말을 빌려 와 이 작업에 붙였다. 미래를 한 줄의 예언이 아니라 여러 편의 각본으로 다루는 기술이 그렇게 태어났다. 칸은 사람들이 외면하던 끔찍한 가능성을 정면으로 펼쳐 보였다는 뜻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게 시나리오 사고의 정신을 가장 잘 압축한다. 외면이 아니라 직시, 그것도 여러 갈래로.

그런데 군사 기밀의 어둠 속에 머물던 이 기술이 기업의 회의실로 건너와 전설이 되는 사건이 따로 있다. 1970년대 초, 석유회사 로열더치셸. 거기 피에르 바크라는 프랑스 사람이 미래 연구 부서를 맡고 있었다. 당시 석유업계의 모두는 한 가지를 당연하게 믿었다. 기름값은 늘 싸고 안정적일 거라고. 지난 수십 년이 그랬으니까. 바크의 팀은 이 '당연함'을 의심하며 두 갈래의 미래를 그렸다. 하나는 다들 믿는 대로 값이 그대로인 세계, 다른 하나는 중동의 산유국들이 똘똘 뭉쳐 기름값을 한순간에 몇 배로 끌어올리는 세계. 두 번째는 거의 모두가 코웃음 친 시나리오였다. 바크는 이 불편한 이야기를 셸의 경영진 머릿속에 억지로라도 심으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리고 1973년, 그 두 번째 미래가 현실이 됐다. 중동발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폭등하며 세계 경제가 휘청였다. 그 충격 앞에서 경쟁사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셸은 달랐다. 이미 머릿속에서 그 미래를 한 번 살아 본 사람들이라,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 한 번의 대비로 셸은 거대 석유회사들 가운데 약체에서 최상위권으로 도약한다. 시나리오 사고가 실전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이보다 또렷한 증거는 없다.

여기서 바크가 거듭 강조한 핵심 하나를 너는 꼭 새겨야 한다. 시나리오의 목적은 미래를 맞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는 좋은 시나리오가 하는 일은 경영자의 '머릿속 지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1973년에 유가가 정확히 몇 달러까지 오를지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셸이 이긴 건 숫자를 맞혀서가 아니라, '값이 안 오른다'는 외길 믿음을 버리고 '오를 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길을 미리 머릿속에 깔아 둔 덕이었다. 닥쳤을 때 놀라지 않는 것, 그래서 한 박자 먼저 움직이는 것. 그게 전부다. 바크는 1980년대 중반 이 노하우를 두 편의 글로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고, 그 뒤로 시나리오 플래닝은 거대 조직과 정부의 장기 전략을 짜는 표준 도구로 퍼져 나갔다. 남아공이 인종차별 정권 이후의 길을 모색할 때 여러 미래를 함께 그려 본 작업도, 따지고 보면 이 셸의 회의실에서 갈라져 나온 줄기다.

그러니 너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결정 앞에 서거든 — 어느 시장에 들어갈까, 무엇에 회사의 십 년을 걸까 — 가장 그럴듯한 미래 하나를 골라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짓을 멈춰라. 그건 예언이지 전략이 아니다. 대신 서로 다른 미래를 서너 개 그려라. 잘 풀리는 세계, 무너지는 세계, 그리고 아무도 입에 안 올리는 불편한 세계까지. 그리고 물어라. 어느 미래가 와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은 무엇이고, 어떤 신호가 보이면 내가 어느 미래로 가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는가. 미래를 맞히려 들지 말고, 어떤 미래가 와도 미리 한 번 살아 본 사람이 되어라. 그게 핵전쟁 대본에서 시작해 석유회사의 회의실에서 증명된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