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의사결정·판단

옵션 사고 (optionality)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권리'를 늘리는 쪽을 우대하는 사고법. 되돌릴 수 없는 큰 결단을 서두르기보다, 되돌릴 수 있고 앞으로의 선택지를 넓혀 두는 길을 택해 정보가 더 모일 때까지 결정을 살려 두는 것이 핵심이다.

너, 동네에서 늘 무시당하던 한 남자를 떠올려 봐라. 사람들은 그를 보며 수군댔다. 머릿속에 별이며 숫자며 잔뜩 들었으면 뭐 하나, 주머니는 텅텅 비었는데. 가난은 곧 그 지식이 쓸모없다는 증거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겨울, 이 남자가 조용히 움직인다. 그는 하늘을 읽어 이듬해 올리브가 엄청나게 풍년이 들 거라 점쳤다. 하지만 그는 농사를 짓지도, 올리브밭을 사들이지도 않았다. 대신 마을과 이웃 섬에 있는 올리브 짜는 기계들을 찾아다니며, 겨울철 한가한 그 기계들을 추수철에 '쓸 수 있는 권리'를 헐값에 미리 잡아 두었다. 아무도 그 권리에 값을 매기지 않았으니 거의 공짜였다. 그리고 가을, 정말로 올리브가 쏟아졌고 너도나도 기계가 급해졌을 때, 그는 자기가 잡아 둔 권리를 부르는 값에 빌려주며 한몫 단단히 챙겼다.

이 남자가 탈레스다. 흔히 서양 철학의 첫 페이지에 이름이 박히는 그 사람. 이 일화를 우리에게 전해 준 건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의 책 정치학 첫 권에 짧게 적혀 있다. 전해지기로 탈레스가 증명하고 싶었던 건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지혜로 얼마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다. 그런데 그가 한 일의 속을 들여다보면, 너는 거기서 묘한 비대칭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산 건 기계를 쓸 '의무'가 아니라 '권리'였다는 점이다. 만약 그해 흉년이 들었다면? 그는 헐값에 걸어 둔 보증금만 날리고 기계는 안 쓰면 그만이었다. 손실은 그 작은 보증금에서 딱 멈춘다. 그런데 풍년이 들면 이득은 위로 활짝 열려 있다. 손실은 바닥이 막혀 있고 이득은 천장이 뚫려 있는 이 기울어진 저울 — 이게 옵션이라는 물건의 정체이고, 오늘 이야기의 씨앗이다.

이 직관은 수천 년을 그저 영리한 장사 수완으로만 떠돌았다. 권리에 정확히 얼마를 매겨야 하는지를 아무도 풀지 못했으니까. 그 자물쇠가 열린 건 1973년이다.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스가, 그리고 거의 동시에 로버트 머튼이, 주식을 사고팔 권리의 값을 계산하는 공식을 세상에 내놓았다. 기초 자산의 가격, 그것이 출렁이는 정도, 권리의 만기와 이자율만 넣으면 권리의 공정한 값이 똑 떨어지는 식이었다. 탈레스가 감으로 헐값에 잡았던 그 권리에, 드디어 정직한 가격표가 붙은 것이다. 이 공식은 곧 시카고 옵션거래소를 폭발적으로 키웠고, 머튼과 숄스는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다만 블랙은 1995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그 자리에 함께 서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금융의 이야기다. 진짜 반전, 이 도구가 너와 나의 삶으로 넘어온 결정적 도약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1977년, MIT의 스튜어트 마이어스라는 학자가 묻는다. 잠깐, 권리에 값을 매기는 이 논리가 어디 주식에만 통할 일인가. 새 공장을 지을지 말지, 신약 개발을 다음 단계로 끌고 갈지 접을지, 유전을 지금 팔지 더 묻혀 둘지 — 기업이 마주하는 이 모든 결정의 속살이 사실은 옵션 아닌가. 그는 이런 현실의 선택지들에 '리얼 옵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식이 아닌 진짜 자산, 진짜 사업에 깃든 옵션이라는 뜻이다. 이 작명이 왜 중요한가. 사람들은 그동안 투자를 '지금 들어가서 끝까지 간다'는 외길로만 봤다. 그런데 마이어스가 이름을 붙여 준 순간, 결정 속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 다 걸지 않고, 지을 권리만 쥔 채 상황을 더 지켜보다가, 좋아지면 들어가고 나빠지면 발을 뺄 수 있는 그 유연함 자체에 값이 매겨진다는 것. 옵션 사고가 도박판이나 증권가를 벗어나, 모든 의사결정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이다.

이 발상을 가장 묵직하게 써먹은 자리는 뜻밖에도 광산과 유전이었다. 1986년, 로버트 맥도널드와 대니얼 시겔이 던진 물음은 이거였다. 되돌릴 수 없는 큰 투자는 언제 집행해야 하는가. 낡은 교과서는 답이 간단했다. 이득이 비용을 넘으면 즉시 투자하라. 그런데 두 사람이 계산해 보니, 미래가 출렁이는 한 그 답은 틀렸다. 지금 당장 땅을 파지 않고 '팔 수 있는 권리를 살려 둔 채 기다리는 것'에 진짜 값이 있더라는 거다. 그들의 시뮬레이션은, 어떤 경우엔 이득이 비용의 두 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들어가는 게 옳다고 가리켰다. 광산 회사가 광맥의 값을 제대로 매기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금값이 오르면 더 캐고 떨어지면 멈출 수 있는 그 유연성을, 옛 방식은 셈에서 통째로 빠뜨렸던 것이다. 기다림에, 그리고 발을 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값을 매기는 것 — 이게 탈레스의 직관이 한 단계 더 자라난 대목이다.

이 사고를 삶의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린 사람을 들자면 나심 탈레브를 빼기 어렵다. 그는 손실은 작게 막혀 있고 이득은 위로 열린, 바로 그 탈레스식 비대칭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미래는 어차피 못 맞힌다는 전제 위에서, 그는 예측을 잘하려 애쓰기보다 '틀려도 거의 안 다치고, 맞으면 크게 먹는' 자리에 자신을 세워 두라고 말한다. 그가 즐겨 든 그림이 아령이다. 한쪽엔 절대 안전한 것을 무겁게 쥐어 바닥을 막고, 다른 한쪽엔 작은 돈으로 위가 활짝 열린 모험들에 잘게 걸어 두는 것. 가운데의 어정쩡한 베팅은 비운다. 옵션 사고를 자산 배분이 아니라 사람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고 번창하는 태도로 번역한 셈이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 사고가 컴퓨터로 들어갈 때, 그냥 계산만 빨라진 게 아니었다. 머릿속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리얼 옵션의 값은 미래가 갈래갈래 뻗는 통에 손으로는 도저히 다 셀 수가 없어서, 사람들은 기계에 수십만 갈래의 미래를 무작위로 펼쳐 보게 하는 방식으로 그 값을 더듬는다. 그런데 더 깊은 전환은 따로 있다. 스스로 배우는 인공지능을 만들 때, 만든 이들은 곤란한 역설에 부딪힌다. 기계가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길만 고집하면, 더 나은 길을 영영 못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부러 기계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안 가 본 길을 찔러 보도록, 즉 '선택지를 닫지 않고 열어 두도록' 설계해야 했다. 지금의 최선에 다 걸지 말고 탐색의 여지를 살려 두라는 것 — 이건 정확히 옵션 사고다. '예측해서 한 번에 최적을 고른다'는 생각의 윗단추를, '되돌릴 여지를 남기고 정보가 모일 때까지 선택지를 살려 둔다'로 갈아 끼우고 나서야, 기계는 비로소 갇히지 않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 너가 되돌릴 수 없어 보이는 큰 결정 앞에 섰을 때 — 지금 다 걸어야 할 것 같고,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아 마음이 급할 때 — 한 박자 멈추고 이렇게 물어라. 이걸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 바꿀 길은 없는가.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걸어 발을 들여놓되 빼낼 여지를 남길 수는 없는가. 틀렸을 때 손실은 작게 막고, 맞았을 때 이득은 위로 열어 둘 수는 없는가. 미래를 더 잘 맞히려 용쓰는 대신, 어떻게 틀려도 덜 다치고 맞으면 크게 먹는 자리에 너 자신을 세워라. 헐값에 권리만 쥔 채 겨울을 기다린 한 철학자가, 수천 년 전 올리브밭에서 우리에게 남기고 간 생각의 전부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