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의사결정·판단

파레토 분석 (80/20)

어떤 결과의 대부분이 원인 가운데 극히 일부에서 나온다는 경험적 규칙, 그리고 그 소수의 핵심을 찾아내 거기에 힘을 몰아주는 분석법. 흔히 결과의 약 80퍼센트가 원인의 약 20퍼센트에서 비롯된다고 하여 80/20 법칙이라 불리며, 비율 자체보다 '기여가 고르게 흩어져 있지 않고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통찰이 핵심이다.

너, 네 옷장 앞에 서 본 적 있지. 빼곡히 걸린 옷이 수십 벌인데, 막상 한 주를 돌아보면 네가 실제로 꺼내 입은 건 늘 같은 대여섯 벌이다. 나머지는 옷걸이만 차지하고 철 따라 한두 번 손이 갈까 말까. 단골 식당 메뉴판도 그렇다. 적힌 음식은 마흔 가지인데 주방이 진짜 바쁘게 만드는 건 그중 몇 개뿐이고, 가게 매출도 거기서 거의 다 나온다. 너는 살면서 이 묘한 쏠림을 수도 없이 마주쳤다. 무언가의 결과가 그 원인들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게 아니라, 늘 한 줌의 소수가 거의 전부를 만들어 낸다는 것. 오늘 이야기는, 이 흔한 쏠림을 처음으로 숫자에 박아 넣은 한 까칠한 경제학자와, 정작 그 발견에 이름을 붙여 세상에 퍼뜨린 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반전에 관한 거다.

이야기는 대략 19세기 끝자락,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빌프레도 파레토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는 철도와 제철소를 굴리던 공학자 출신이라 머릿속이 온통 측정과 곡선으로 차 있던 사람이다. 늦깎이로 경제학에 들어선 그가 1896년 무렵 펴낸 책에서 토지대장을 뒤지다 이상한 걸 발견한다. 이탈리아 땅의 대략 8할을 인구의 2할이 쥐고 있더라는 거다. 여기까지면 그저 '세상 불공평하네' 하고 넘길 관찰이다. 파레토가 비범했던 건 그 다음이다. 그는 영국으로, 프로이센으로, 손에 잡히는 나라마다 옛 세금 기록과 인구 자료를 끌어와 같은 걸 재 봤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부와 땅은 늘 한쪽으로 비슷하게 쏠려 있었다. 그는 이 쏠림이 우연한 흐트러짐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수학적 꼴, 곧 곡선 하나로 그려지는 법칙임을 알아챘다. 소득이 두 배 높은 사람의 수는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가운데가 봉긋한 종 모양이 결코 아닌, 한쪽 끝이 길게 늘어진 곡선. 우리가 지금 파레토 분포라 부르는 그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살짝 어두워진다. 파레토 본인은 이 발견을 그리 따뜻하게 쓰지 않았다. 그는 어느 사회를 뒤엎어 봐야 결국 또 다른 소수가 꼭대기를 차지할 뿐이라며, 소수 엘리트의 지배는 자연의 이치라는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갔다. 만년의 그가 남긴 글들은 훗날 이탈리아 파시즘이 제 입맛대로 끌어다 쓰기도 했다. 즉 이 '소수가 거의 전부를 쥔다'는 발견은, 발견자의 손안에서는 체념과 위계의 논리에 가까웠다. 도구를 만든 사람이 그 도구의 가장 쓸모 있는 용도를 끝내 못 본 셈이다.

이 발견에 진짜 생명을 불어넣은 건 반세기 뒤,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이었다.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 조지프 주란. 공장의 불량을 줄이는 일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다. 그는 불량의 원인을 들여다보다 파레토의 그 곡선과 똑같은 쏠림을 발견한다. 수백 가지 불량 원인 중 정작 사고의 대부분을 일으키는 건 손에 꼽을 몇 가지뿐이라는 것. 1940년대 무렵 그는 이 통찰이 토지나 소득에만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현장에 두루 통하는 보편 원리임을 알아채고, 거기에 그 경제학자의 이름을 붙였다. 파레토 원리라고. 그리고 그 소수의 결정적 원인을 '치명적인 소수', 나머지 다수를 '사소한 다수'라 불렀다. 재밌는 건, 주란은 훗날 자기가 이름을 잘못 붙였다고 솔직히 인정했다는 거다. 정작 쏠림을 보편 도구로 키운 건 자신인데 남의 이름이 박혀 버렸으니. 어쨌든 이 순간, 부의 불평등을 한탄하던 곡선이 '어디에 힘을 몰아줄지 가려내는' 실전 도구로 다시 태어났다.

주란은 이 도구로 무엇을 이뤘나. 그는 공장 관리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모든 불량을 똑같이 잡으려 들지 마라. 원인들을 많이 일으키는 순서대로 줄 세워라. 그러면 거의 언제나 맨 앞 몇 개가 전체 문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치명적인 소수부터 부숴라. 사소한 다수에 똑같은 힘을 쏟는 건 낭비다. 이 단순한 줄 세우기 — 원인을 기여도 순으로 늘어세워 어디서 칼을 멈출지 보는 그 막대그래프가, 오늘날 우리가 파레토 차트라 부르는 것이다. 주란의 이 가르침은 전후 일본 제조업의 품질 혁명에 깊이 스며들었고, 훗날 식스 시그마 같은 현대 품질 경영의 뼈대 한 축이 됐다. 한 줌의 핵심에 집중하라는 이 사고가, 자동차와 반도체의 불량률을 거짓말처럼 끌어내린 것이다.

이 쏠림이 컴퓨터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너는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을 만난다. 디지털 세계는 파레토의 곡선으로 가득 차 있다. 웹사이트 트래픽의 대부분은 전체 페이지 중 극히 일부에 몰리고, 그래서 그 인기 있는 소수만 빠른 기억장치에 미리 얹어 두면 시스템 전체가 날아간다. 프로그램이 느릴 때도 마찬가지다. 수천 줄의 코드 중 시간을 잡아먹는 건 늘 손에 꼽는 몇 군데뿐이라, 거기만 손보면 속도가 확 산다. 그래서 노련한 기술자는 무턱대고 전부 고치는 대신, 먼저 '어디가 진짜 병목인지'부터 측정해 그 뜨거운 소수를 찾는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생각의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우리 머리는 본능적으로 세상이 '평균을 중심으로 고르게 퍼져 있다'고, 저 가운데가 봉긋한 종 모양을 그린다고 가정한다. 평균 키, 평균 점수처럼. 그런데 사람이 만든 세계 — 도시 인구, 단어 빈도, 책 판매량, 부의 분포 — 는 종 모양이 아니라 한쪽 끝이 길게 늘어진 파레토 곡선을 그린다. 여기서는 '평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을 속인다. 소수의 거대한 값이 평균을 끌어올려, 정작 대다수는 평균 근처에도 못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은 '세상은 평균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낡은 윗단추를 빼고, '세상은 한쪽으로 쏠린다, 그러니 중심값이 아니라 쏠림의 꼬리를 봐야 한다'는 단추로 갈아 끼워야 했다. 그 관점의 전환 위에서야 비로소 검색 엔진도, 추천 알고리즘도, 이른바 롱테일 전략도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그러니 너가 한정된 시간과 돈과 사람을 앞에 두고 무엇부터 손댈지 막막해지거든, 모든 일에 똑같이 힘을 나눠 주려는 본능부터 의심해라. 먼저 물어라 — 내 성과의 대부분은 어느 한 줌에서 나오고 있나. 매출을 떠받치는 그 몇 안 되는 고객, 불만의 대부분을 만드는 그 몇 가지 원인, 시간을 다 잡아먹는 그 몇 개의 일. 그것들을 기여도 순으로 줄 세워 맨 앞을 찾아내고, 거기에 힘을 몰아라. 나머지 사소한 다수는 과감히 뒤로 미뤄도 좋다. 세상은 고르게 퍼져 있지 않다 — 그 한 가지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게 한 까칠한 경제학자의 곡선에서 시작된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