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편익분석 (cost-benefit)
어떤 선택이 가져올 이득과 손실을 모두 같은 척도(보통 돈)로 환산한 뒤, 둘을 맞세워 이득이 손실보다 큰지를 따져 결정하는 방법. 직접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것들 — 절약된 시간, 깨끗해진 공기, 구해진 생명 — 까지 굳이 하나의 자로 재어 비교 가능한 숫자로 만든다는 점이 핵심이다.
너, 다리를 하나 놓을지 말지 결정하는 자리에 앉았다고 해보자. 강 건너 마을과 이쪽을 잇는 다리다. 짓는 데 드는 돈은 셈하기 쉽다. 자재값, 인건비, 공사 기간, 숫자가 또렷이 나온다. 그런데 반대편이 문제다. 이 다리가 생기면 사람들이 매일 나룻배를 기다리던 시간이 사라진다. 장이 더 자주 선다. 급한 환자가 제때 병원에 닿는다. 자, 이 '좋아지는 것들'은 대체 얼마짜리인가. 시간이, 편리가, 어쩌면 목숨이 몇 원인가. 한쪽 접시에는 또렷한 비용이 쌓이는데 다른 쪽 접시에는 값을 알 수 없는 좋은 것들이 수북하다. 저울이 기울긴 기우는데, 어느 쪽으로 얼마나 기우는지 읽을 수가 없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읽을 수 없던 저울 눈금을 처음으로 종이에 그려 넣은 사람과, 그 셈법이 끝내 사람 목숨에까지 값을 매기게 된 사연에 관한 거다.
대략 19세기 중엽, 프랑스에 쥘 뒤퓌라는 다리·도로 짓는 토목 기사가 있었다. 1844년, 그는 동료 기사들을 향해 묘한 글 하나를 내놓는다. 제목이 '공공사업의 효용 측정에 관하여'였다. 그가 붙든 물음이 바로 그 다리 문제였다. 통행료를 한 푼도 안 내거나 쥐꼬리만큼 내고 건너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렇다면 이 다리가 세상에 주는 진짜 값어치는 어떻게 재는가. 뒤퓌의 대답이 절묘했다. 사람마다 그 다리를 건너려고 '최대한 낼 용의가 있던 돈'이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만 원이라도 냈을 테고 어떤 이는 천 원이면 충분했을 텐데, 실제로는 다 같이 백 원만 낸다. 그 '냈을 법한 값'과 '실제로 낸 값'의 차이 — 사람들이 거저 챙긴 이득 — 을 전부 합치면, 다리가 세상에 안긴 보이지 않는 편익이 숫자로 잡힌다. 거래된 적 없는 가치를 숫자로 끄집어낸 이 발상에 훗날 소비자잉여라는 이름이 붙는다. 비용편익분석의 씨앗이 토목 기사의 책상에서 떨어진 순간이다.
씨앗이 제도가 되기까지는 한 세기가 걸렸다. 결정적 무대는 1936년 미국이었다. 미시시피강이 거듭 범람해 마을을 통째로 쓸어 가자, 연방 정부가 거대한 치수 사업에 나서며 홍수통제법을 만든다. 그 법조문에 인류 의사결정사에 길이 남을 한 문장이 박힌다. 연방은 치수 사업을 벌이되, '그 이득이 누구에게 돌아가든 간에, 추정 비용을 넘어설 때에만' 하라는 것. 말은 간단했지만 이 한 줄이 기사들의 책상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댐 하나의 편익이 비용을 넘는지 증명하려면, 범람하지 않은 마을, 떠내려가지 않은 농토, 잃지 않은 목숨까지 전부 달러로 환산해 한 접시에 올려야 했으니까. 여기서 비용편익분석 고유의 가시가 살을 파고든다.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모두가 믿는 것에, 기어이 값을 매겨야 한다는 것.
이 가시를 가장 슬기롭게 뽑아낸 사람이 토머스 셸링이다. 1936년의 법은 댐이 막아 줄 '목숨 값'을 정직하게 계산하라 요구했지만, 누구도 사람 하나에 얼마라고 적어 넣을 엄두를 못 냈다. 무례하고 끔찍했으니까. 1968년, 셸링은 '당신이 구하는 목숨은 당신 자신의 것일지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생각의 매듭을 통째로 풀어 버린다. 우리는 특정한 누구의 목숨에 값을 매기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위험을 '아주 조금' 줄이려고 실제로 얼마를 치르는지를 보면 된다는 것. 더 위험한 일에 사람들이 요구하는 웃돈, 안전장치에 기꺼이 더 내는 돈 — 그런 자잘한 거래를 모으면, '목숨 값'이 아니라 '위험을 조금 낮추는 일의 값'이 자연스레 잡힌다. 이름 붙은 한 사람이 아니라 통계 속 익명의 위험을 다룬다는 이 전환으로, 도덕의 수렁을 우아하게 건너뛴 것이다. 여기서 나온 '통계적 생명의 가치'는 지금도 각국 정부가 도로 난간을 세울지, 약값을 댈지, 매연 규제를 조일지 정할 때 실제로 쓰는 잣대가 됐다. 다리의 통행료에서 시작한 셈이, 사람 목숨을 저울에 올리는 법을 끝내 찾아낸 셈이다.
이 셈법이 기계로 옮겨 가는 길목에서, 너는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을 만난다. 오늘날 네 화면에 무엇을 띄울지, 광고 한 칸에 얼마를 부를지, 창고의 물건을 어디로 보낼지 고르는 기계들의 속에는 죄다 이 비용편익의 논리가 박혀 있다. 그런데 기계가 이걸 해내려면 생각의 가장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기계는 '빠른 배송도 좋고, 비용 절감도 좋고, 고객 만족도 좋다'는 식의 여러 갈래 바람을 동시에 좇지 못한다. 좋은 것이 여럿이면 무엇 하나 고를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은 그 모든 이득과 손해를 단 하나의 숫자 — 기계가 끌어올릴 단 하나의 목표값 — 으로 욱여넣어야 한다. 서로 견줄 수 없어 보이는 가치들을 굳이 한 자 위에 세워 더하고 빼는 것, 뒤퓌가 다리 앞에서 했던 바로 그 일을, 이제는 모든 가치에 강제로 시켜야 기계가 비로소 최적의 선택을 계산해 낸다. 무엇 하나를 진짜로 최적화하려면, 그것을 다른 모든 것과 같은 축 위에 올려놓길 거부해선 안 된다는 것 — 그 윗단의 깨달음이 도구를 기계 속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니 너가 무언가를 결정하다 한쪽 접시에는 또렷한 비용이, 다른 쪽엔 '값을 매길 수 없는 좋은 것'이 쌓여 막막해지거든, 그 '잴 수 없다'는 말 앞에서 멈추지 마라. 잴 수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자를 안 댄 것뿐이다. 시간이든 편리든 안심이든, 사람들이 그걸 위해 실제로 얼마를 치르는지를 더듬어 같은 척도로 끌어내려라. 그렇게 두 접시를 같은 단위로 맞세워야 비로소 저울 눈금이 읽힌다.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같은 자에 올려 비교하는 것 — 그게 한 토목 기사가 다리 앞에서 시작한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