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 (induction)
관찰한 개별 사례들을 모아 그것을 넘어서는 일반 규칙을 끌어내는 추론법. '지금까지 본 것들이 모두 그러했으니 아직 보지 못한 것도 그러하리라'는 비약이 핵심이며, 결론이 전제보다 늘 더 많은 것을 말하기에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만을 준다.
너,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누군가 먹이를 주는 닭이 한 마리 있다고 해보자. 첫날에도 먹이가 왔고,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왔다. 닭은 멍청하지 않아서 슬슬 규칙을 세운다. '저 사람이 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 백 일이 지나자 이 믿음은 거의 신앙이 된다. 매일 빠짐없이 들어맞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늘 그랬듯 그 사람이 다가온다. 그런데 이번엔 손에 든 게 먹이가 아니라 칼이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거다. 백 번의 관찰로 쌓아 올린 닭의 완벽한 규칙은, 백한 번째에 목과 함께 잘려 나간다. 이 잔인한 닭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다. 그는 이걸로 너와 나, 그리고 모든 과학이 매일 저지르는 어떤 도박 하나를 보여주려 했다.
그 도박의 이름이 귀납이다. 본 것들을 모아 아직 안 본 것까지 단정하는 비약. 해가 어제도 떴고 그제도 떴으니 내일도 뜬다, 지금껏 마신 물이 멀쩡했으니 이 물도 괜찮다 — 너는 하루에도 수백 번 이 비약을 한다. 안 그러면 단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게 논리적으로는 영 수상하다. '지금까지 그랬다'와 '앞으로도 그렇다'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하나 흐른다. 닭은 그 강 앞에서 죽었다.
이 사고를 처음 또렷한 방법으로 세운 사람은 17세기 초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때까지 천 년 넘게 학문의 왕은 아리스토텔레스식 연역이었다. 큰 원리에서 시작해 따져 내려가는 방식. 베이컨은 그게 머릿속에서만 도는 헛바퀴라고 봤다. 1620년에 그는 '노붐 오르가눔', 곧 '새로운 도구'라는 책을 내놓고 정반대를 외쳤다. 머리에서 내려오지 말고 자연에서 올라가라. 사실을 모으고 또 모아 거기서 법칙을 길어 올려라. 이 위아래 뒤집기가 훗날 과학혁명의 엔진이 됐다. 우리가 '실험하고 관찰해서 결론 내린다'고 할 때, 그 밑바닥에 깔린 게 베이컨이 손에 쥐여 준 이 도구다.
그런데 이 도구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흠집을 낸 사람이 또 한 명의 영국인, 18세기의 데이비드 흄이다. 그는 짓궂게 물었다. 너는 무슨 권리로 '지금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렇다'고 말하느냐? 자연이 어제와 내일 똑같이 굴러간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하느냐? 증명하려 들면 결국 '지금껏 자연이 한결같았으니까'라는, 바로 그 증명하려던 말을 다시 끌어와야 한다. 제 꼬리를 무는 뱀이다. 흄은 결론 내렸다. 귀납은 논리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습관으로 그렇게 믿을 뿐이다. 이게 철학사에서 '귀납의 문제'라 불리는, 삼백 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깔끔히 풀지 못한 골칫거리다.
그러면 과학은 모래 위에 선 건가. 여기서 20세기에 칼 포퍼라는 사람이 통째로 판을 갈아엎는 한 수를 둔다. 그의 답은 충격적이었다. 애초에 귀납으로 진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버려라. 아무리 흰 백조를 많이 봐도 '모든 백조는 희다'는 영영 증명 못 한다 — 실제로 유럽인들은 그렇게 믿다가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만나고 무너졌다. 하지만 검은 백조 단 한 마리면 그 법칙을 즉시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니 과학의 일은 증명이 아니라 반증이다. 대담하게 추측을 던지고, 깨질 때까지 두들겨 보고, 살아남은 놈을 잠정적으로 쥐고 가는 것. 닭이 살 길은 '먹이 가설'을 더 굳게 믿는 게 아니라, 그게 틀릴 수 있는지 끝없이 의심하는 데 있었다.
이 오래된 도구가 지금 가장 화려하게 부활한 곳은 컴퓨터 안이다. 기계학습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베이컨식 귀납을 기계에 시킨 것이다. 고양이 사진 수백만 장을 들이부으면, 기계가 거기서 '고양이임'의 규칙을 스스로 길어 올려 처음 보는 사진도 알아맞힌다. 누가 규칙을 짜 넣은 게 아니라 사례에서 올라온 거다. 그런데 기계에 이걸 제대로 시키려면 생각의 윗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다. 1960년대에 레이 솔로모노프 같은 사람들이 물었다. 같은 데이터를 설명하는 규칙이 수없이 많을 때, 기계는 어느 것을 골라야 하나? 사람은 '제일 단순한 설명'을 직관으로 고르지만 기계는 그 '단순함'을 숫자로 정의해 줘야 움직인다. 귀납을 코드로 옮기는 일은, 흄이 들춘 그 빈틈 — 무한히 많은 가능한 규칙 중 무엇을 믿을지 — 을 수학으로 메우는 작업이었다. 닭의 비약을 기계가 더 영리하게 하도록, 그 비약의 규칙 자체를 새로 설계해야 했던 거다.
그러니 너가 몇 번의 성공이나 몇 건의 데이터를 손에 쥐고 '이건 늘 이렇다'는 규칙을 세우려는 순간이 오거든, 그 닭을 떠올려라. 사례를 모으는 건 좋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니까. 다만 네 규칙에 대고 스스로 물어라. 이걸 단번에 깨뜨릴 검은 백조 한 마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한 마리를 먼저 찾아 나서는 자가, 백한 번째 아침에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