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추론의 기본형

유비추론 (analogy)

이미 잘 아는 영역의 관계 구조를 아직 모르는 영역으로 옮겨 와, 둘이 닮았다면 나머지도 닮았으리라 미루어 짐작하는 추론법. 두 대상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관계의 짜임을 맞대어 본다는 점이 핵심이며, 새로운 것을 익숙한 것의 언어로 처음 이해하게 해 주는 가장 오래된 사고 도구다.

너, 처음 보는 물건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해 보자. 가령 심장이 뭔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에게. 너는 십중팔구 이렇게 말할 거다. "그건 펌프 같은 거야. 물을 퍼 올리는 펌프 알지? 그게 몸 안에서 피를 밀어내는 거야."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보면 놀랍다. 아이는 펌프를 안다. 손잡이를 누르면 물이 나오고, 멈추면 안 나오고, 고장 나면 물이 안 오는 그 관계의 짜임을 안다. 너는 지금 그 짜임 통째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살덩어리 위에 살짝 포개 얹은 거다. 펌프와 심장은 생긴 것도 재료도 전혀 안 닮았다. 그런데도 설명이 통한다. 왜냐하면 너가 옮긴 건 모양이 아니라 관계였으니까. 오늘 이야기는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위험한 생각의 다리, 바로 이 건너뛰기에 관한 거다.

이 다리에 처음 이름을 붙이고 그 위험까지 짚은 사람은 멀리, 대략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사람을 설득하고 사물을 분류하는 자기 논리학 안에서, 하나의 사례에서 다른 사례로 건너뛰는 이 추론을 따로 떼어 살폈다. 그가 본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 이건 엄밀한 증명이 아니다. 앞에 놓인 둘이 어떤 점에서 닮았다고 해서 나머지 모든 점이 닮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둘, 그런데도 인간은 새것을 만나면 반드시 헌것에 빗대어 처음 이해한다. 그러니까 유비는 증명의 도구가 아니라 발견의 도구다. 아직 모르는 땅으로 첫발을 내딛는 다리이지, 거기 집을 짓는 주춧돌은 아니라는 것. 그는 이걸 또렷이 구분해 두었다.

그 뒤로 이 다리는 인간이 미지를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놓은 도구가 되었다. 의사는 몸을 기계에 빗대어 장기를 이해했고, 빛을 모르던 시절 사람들은 빛을 물결에 빗대어 더듬었다. 익숙한 것이 없으면 낯선 것을 붙들 손잡이조차 없으니까. 그런데 이 도구를 그저 설명의 편의가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캐는 곡괭이로 휘두른 사람이 있었다.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다.

케플러가 붙든 수수께끼는 이거였다. 행성은 도대체 무엇에 떠밀려 태양 둘레를 도는가. 그때까지 사람들은 행성이 보이지 않는 천구에 박혀 저절로 돈다고 믿었다. 케플러는 그 답이 못마땅했다. 마침 같은 시대 영국의 윌리엄 길버트가 지구 자체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걸 밝혀 둔 참이었다. 케플러는 여기서 다리를 놓는다. 자석이 쇠를 보이지 않게 끌어당기듯, 태양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뿜어 행성을 붙들고 끌고 가는 게 아닐까. 또 하나, 등불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멀수록 옅어지듯, 태양의 그 힘도 퍼져 나가며 멀리 있는 행성일수록 약하게 미치는 게 아닐까. 자석과 등불, 누구나 아는 두 물건의 관계 구조를, 그는 아무도 본 적 없는 하늘의 역학 위에 통째로 옮겨 얹었다. 이 빗댐이 그를 끌고 간 자리에서 그는 행성이 태양에 가까울수록 빨라진다는 사실을 붙잡았고, 끝내 행성 운동의 법칙을 적어 냈다. 훗날 뉴턴이 그 보이지 않는 힘에 중력이라는 이름과 정확한 식을 입혔지만, 그 힘이 거기 있을 거라고 처음 더듬어 낸 손은 자석과 등불에 빗댄 케플러의 유비였다. 도구의 비유는 비록 부분적으로 틀렸어도, 옳은 질문이 있는 자리로 그를 정확히 데려다 놓았다.

그러니 유비를 가장 잘 쓴다는 건 무엇인가. 케플러가 보여 준 건, 겉이 닮은 걸 찾는 게 아니라 관계의 짜임이 닮은 걸 찾는 일이다. 자석과 행성은 겉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 닮은 건 오직 '보이지 않게 끌어당긴다'는 그 관계 하나였다. 바로 이 지점이, 세월이 흘러 이 오래된 사고법을 컴퓨터에 옮겨 심으려던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대목이기도 하다. 1980년대 들어 인지과학자들은 사람의 유비 능력을 기계에 가르치려 들었는데, 미국의 데드리 겐트너가 정리한 통찰이 물꼬를 텄다. 기계가 자꾸 헛다리를 짚는 이유는, 겉모습이 비슷한 것끼리 짝지으려 들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태양과 농구공은 둥글다는 점에서 겉이 닮았지만 그 닮음은 아무 쓸모가 없다. 정작 옮겨야 할 건 '중심을 무엇이 도느냐'는 관계의 그물이다. 그래서 그는 유비란 표면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를 통째로 사상하는 일이라고 못 박았고,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같은 이들은 이 구조 맞대기를 흉내 내는 프로그램을 짜 보였다. 기계에게 빗대기를 가르치려다, 인간이 천 년 넘게 무심코 해 오던 그 일의 정체가 비로소 또렷해진 것이다. 빗댐의 핵심은 겉의 닮음이 아니라 속의 닮음이라는, 생각의 윗단추 하나가 그제야 제대로 끼워졌다.

그러니 너가 한 번도 풀어 본 적 없는 문제 앞에서 막막해지는 순간을 만나거든, 케플러처럼 되물어라. 이거, 내가 이미 잘 아는 무엇과 관계의 짜임이 닮지 않았나. 단, 모양이 비슷한 것에 속지 말고 관계가 비슷한 것을 찾아라.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 새 땅에 발을 디딘 뒤에는, 거기가 진짜 단단한 땅인지 반드시 따로 두드려 보아라. 유비는 너를 옳은 질문 앞으로 데려다주는 다리일 뿐, 그 답을 보증하는 도장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