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추론의 기본형

귀추 / 가설추론 (abduction)

눈앞의 결과나 현상을 보고, 그것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는 원인이나 가설을 거꾸로 추정하는 추론법. 반드시 참인 결론을 보장하는 연역과 달리, 여러 가능한 설명 중 '가장 잘 들어맞는 하나'를 잠정적으로 골라내는 것이 핵심이다.

너, 병원 진료실에 처음 들어선 환자라고 해보자. 의사는 네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아직 한 마디도 묻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자네, 최근까지 군대에 있었군. 부사관이었고, 얼마 전 열대 지방에서 막 돌아왔지. 왼팔을 다쳤고. 너는 소름이 돋는다. 다 맞았으니까. 점쟁이인가 싶지만, 의사는 차분히 풀어 준다. 들어올 때 자세가 군인의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위엄이 몸에 밴 걸 보니 명령을 내려 본 사람이라 부사관이지 사병은 아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는데 손목은 흰 걸 보니 햇볕 강한 더운 나라에서 막 온 거다. 왼팔을 부자연스럽게 두는 걸 보니 거기를 다쳤다. 자, 의사는 점을 친 게 아니다. 그는 결과를 보고 원인을 거꾸로 더듬은 것뿐이다. 오늘 이야기는, 이 거꾸로 더듬는 재주가 어떻게 하나의 어엿한 사고법으로 이름을 얻었는가에 관한 거다.

방금 그 의사는 실존 인물이다. 19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의과대학의 조지프 벨 교수. 외과의이자 전설적인 진단가였다. 그는 강의실에서 환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직업과 병력과 사연을 줄줄이 알아맞혀 학생들을 경악시키곤 했다. 비결은 신통력이 아니라 미친 듯이 집요한 관찰이었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어디 박였는지, 바짓단에 묻은 흙 색깔이 어떤지, 사투리에 어느 지방 억양이 섞였는지 — 그 자잘한 흔적 하나하나를 단서로 모아, 그 흔적들을 한꺼번에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인생 이야기를 역산했다. 그 강의실에 벨의 조수로 앉아 그를 홀린 듯 지켜보던 의학도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아서 코넌 도일. 훗날 그는 스승의 그 재주를 그대로 본떠 한 탐정을 만들어 낸다. 셜록 홈스다. 홈스가 처음 보는 사람의 흙 묻은 구두와 손가락의 잉크 자국만 보고 직업과 행적을 읊어 내는 그 장면들은, 에든버러의 진료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던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함정이 하나 숨어 있다. 코넌 도일은 홈스의 그 재주를 줄곧 '연역'이라 불렀다.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홈스를 연역의 화신처럼 떠받든다. 하지만 논리를 따지는 사람들 눈에는 그게 영 잘못된 이름표다. 연역이란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무조건 참인, 빈틈없이 맞물리는 추론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죽는다 — 여기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런데 홈스가 하는 일은 그게 아니다. 그을린 얼굴과 흰 손목이라는 결과를 보고 '더운 나라에서 막 왔다'는 원인을 추정하는 건, 틀릴 수도 있는 추측이다. 실내 태닝을 했을 수도, 배우라 분장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결과에서 가장 그럴듯한 원인으로 거슬러 오르는 이 추론은 연역이 아니다. 이름이 따로 있어야 했다.

그 이름을 붙인 사람이 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다. 대략 19세기 말, 그는 인간의 추론에 연역과 귀납만 있는 게 아니라 세 번째 종류가 있다고 못 박았다. 연역은 규칙에서 결과로 내려가고, 귀납은 여러 사례를 모아 규칙을 길어 올린다. 그런데 결과를 먼저 손에 쥐고 '이게 왜 이렇지'를 거꾸로 묻는, 설명을 찾아 가설을 던지는 세 번째 길이 있다 — 퍼스는 이걸 처음엔 가설(hypothesis)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귀추(abduction), 또는 역행추론(retroduction)이라 이름 지었다. 그가 보기에 이게 가장 중요한 추론이었다. 왜냐하면 연역도 귀납도 새로운 발상 자체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가설, 처음 떠오르는 설명의 씨앗 — 그건 오직 귀추에서만 나온다. 모든 과학적 발견의 첫 단추가 바로 이 거꾸로 더듬기라고 그는 봤다.

퍼스가 이름을 지어 줬지만, 그 뒤로 이 사고법은 거듭 다듬어졌다. 20세기 중반, 철학자들은 퍼스의 막연하던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좀 더 또렷한 규칙으로 벼렸다. 대략 1960년대에 길버트 하먼이라는 철학자가 이걸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이라는 한결 분명한 이름으로 다시 세웠다. 같은 현상을 놓고 설명이 여럿 경쟁할 때, 무엇이 더 나은 설명인가를 따지는 잣대들 — 더 단순한가, 더 많은 걸 설명하는가, 기존 지식과 덜 충돌하는가 — 을 갖춰 가며 이 추론은 점점 정교해졌다. 의사가 여러 병을 후보로 놓고 그중 환자의 증상 전부를 가장 깔끔하게 설명하는 하나를 짚는 임상 진단, 형사가 흩어진 증거를 한 줄로 꿰는 수사, 과학자가 관측 데이터를 설명할 이론을 세우는 일 —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슬러야 하는 거의 모든 자리에 이 사고가 깔리게 됐다.

이 거꾸로 더듬기는 컴퓨터로도 옮겨 갔다. 환자의 증상을 입력하면 가능한 병명들을 후보로 띄우고 가장 잘 맞는 진단을 추려 주는 초창기 의료 진단 프로그램이 바로 이 귀추의 기계판이었다. 고장 난 기계의 증상을 보고 어느 부품이 원인인지 짚어 내는 자동 진단 시스템도 같은 골격이다. 다만 여기서 네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기계가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고르려면 '그럴듯함'이라는 말랑한 말을 숫자로 바꿔야 했다. 그래서 현대에 와선 귀추가 확률의 언어로 다시 입혀진다. 여러 가설 각각이 지금의 증거를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를 확률로 매겨, 그중 가장 높은 걸 고르는 식이다. 베이즈식 계산이 결국 '관측된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하는 원인을 역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퍼스의 귀추에 정밀한 산수를 입힌 후신인 셈이다. 막연한 직관이던 '거꾸로 더듬기'가 기계 위에서 돌아가려면, 설명의 좋고 나쁨을 잴 수 있는 수치의 틀로 한 단계 올라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너가 무언가 결과만 덜렁 놓인 상황을 만나거든 — 매출이 갑자기 꺾였든, 고객이 말없이 떠났든 — 이렇게 하라. 곧장 한 가지 원인에 꽂히지 말고, 이 결과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후보들을 여럿 늘어놓아라. 그런 다음 물어라. 이 가운데 무엇이 지금 눈앞의 사실들을 가장 적게 우기고 가장 많이 설명하는가.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잠정적으로 붙들되, 그게 어디까지나 잠정임을 잊지 마라. 그게 한 시골 의사의 진료실에서 시작해 철학자가 이름 붙인, 거꾸로 더듬는 생각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