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급인 (推己及人)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의 처지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내가 바라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실마리 삼아 남도 그러하리라 헤아리는 사고법. 동아시아에서는 어진 마음(仁)을 실제로 실천하는 길이자, 다스림의 근본 원리로 오래 가르쳐 왔다.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한 문장이 그 가장 단단한 뼈대다.
너, 펄펄 끓는 냄비 손잡이를 무심코 잡았다가 화들짝 손을 뗀 적 있을 거다. 그리고 잠시 뒤, 옆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 손잡이로 손을 뻗는 걸 보면 너도 모르게 '앗, 뜨거워' 하고 막아선다. 네가 데어 본 그 아픔이, 아직 데지 않은 남의 손끝으로 건너간 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는 방금, 네 안의 한 조각을 떼어 남의 처지에 갖다 붙였다. 오늘 이야기는 이 사소해 보이는 마음의 건너감을, 천하를 다스리는 가장 큰 원리로 끌어올린 사람들에 관한 거다. 그리고 그 한복판엔, 소 한 마리 때문에 백성에게 구두쇠라 비웃음당한 임금이 있다.
대략 기원전 4세기,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대청에 앉아 있는데 누가 소를 끌고 마당을 지나갔다. 새로 만든 종에 짐승의 피를 발라 길들이는 의식, 흔종(釁鐘)에 쓸 소였다. 그런데 그 소가 벌벌 떨고 있었다.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듯한 그 떨림을 차마 볼 수 없어, 왕은 소를 놓아주고 양으로 바꾸라 명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백성들은 이 소문을 듣고 수군댔다. 큰 소가 아까워 작은 양으로 바꿔치기한, 인색한 임금이라고. 왕 자신도 어리둥절했다. 나는 분명 가엾어서 그랬는데 왜 구두쇠 소리를 듣는가. 이 뒤엉킨 자리에 맹자가 들어선다. 그는 왕을 변호하지 않았다. 대신 정확히 짚었다. 왕께서 소는 보셨지만 양은 보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눈앞에서 떠는 짐승은 차마 못 견디는 그 마음 — 맹자가 불인지심(不忍人之心), 남의 고통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이라 부른 그것이 왕에게 분명히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맹자의 처방은 이거였다. 짐승에게까지 그 마음이 닿았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밀고 나가(推) 백성에게까지 미치게(及) 하십시오. 그러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 놓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내 집 노인을 모시는 마음을 미루어 남의 집 노인에게 미치고, 내 집 아이를 아끼는 마음을 미루어 남의 집 아이에게 미친다 — 맹자가 왕 앞에서 펼친 이 한 문장이, 추기급인이라는 생각이 가장 또렷하게 살아 움직인 장면이다.
이 씨앗을 처음 심은 건 맹자보다 한 세대 위, 공자였다. 제자 자공이 물었다. 평생토록 지키며 행할 만한 한 마디가 있습니까. 공자는 답했다. 그것은 서(恕)이리라.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또 다른 자리에서는 어짊의 방법을 이렇게 일렀다. 내가 서고 싶으면 남부터 세워 주고, 내가 이루고 싶으면 남부터 이루게 하라. 그러면서 덧붙인 한 구절이 핵심이다. 능히 가까운 데서 견주어 취하라(能近取譬). 가장 가까운 것, 곧 네 자신을 자(尺)로 삼아 남을 재라는 말이다. 공자가 '서'와 '가까운 데서 견줌'으로 던진 이 실마리를, 맹자가 '밀어서 미친다'는 동사로 바꿔 정치의 무대까지 끌고 나갔고, 천 년쯤 뒤 송나라의 성리학자들이 그것을 네 글자로 단단히 굳혔다. 주희가 전한 풀이가 깔끔하다. 자기를 다 쏟는 것이 충(忠)이요, 자기를 미루는 것이 서(恕)다. 바로 그 '자기를 미룬다(推己)'가, 남에게 미친다(及人)와 짝을 이뤄 추기급인이라는 이름표로 자리 잡았다.
이 도구를 가장 멀리 밀어붙인 사람은 단연 맹자다. 그의 손에서 추기급인은 한낱 개인의 착한 마음씨가 아니라, 어진 정치(仁政)의 엔진이 됐다. 임금이 제 한 몸의 욕망을 미루어 백성의 헐벗음과 굶주림을 제 일처럼 헤아릴 수 있다면, 그 헤아림 하나로 천하의 민심이 돌아선다는 논리다. 이 사고가 이뤄낸 것은 작지 않다. 동아시아 이천 년 동안 '좋은 다스림이란 무엇인가'의 표준 답안이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공자의 그 한 문장,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동양의 울타리를 넘어섰다. 1993년 세계 종교인들이 시카고에 모여 인류 공통의 윤리를 한 장의 선언으로 묶을 때, 여러 전통을 가로지르는 황금률의 한 갈래로 바로 이 공자의 말이 나란히 올랐다. 가장 사사로운 '내 마음'에서 출발한 자가, 가장 보편적인 '모두의 규칙' 후보가 된 셈이다.
다만 여기 너가 꼭 새겨야 할 함정이 하나 있다. 추기급인은 내 마음을 남에게 '미루는' 일이라, 자칫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리라 단정하는 쪽으로 미끄러진다. 내 입에 단 것을 남의 입에 억지로 떠넣는 친절이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공자가 굳이 긍정형이 아니라 부정형으로 — 무엇을 해 주라가 아니라, 내가 싫은 것을 하지 말라로 빗장을 질러 둔 것은 깊은 노림수다. 미루기는 하되, 먼저 멈춰 묻는 데서 시작하라는 거다. 그러니 너가 누군가를 돕거나 설득하거나 배려해야 하는 자리에 서거든, 네 머릿속 정답을 곧장 그 사람에게 미루기 전에 한 박자 멈춰라. 내가 이 처지라면 무엇이 가장 견디기 힘들까를 먼저 묻고, 그다음엔 저 사람의 마음이 정말 내 마음과 같은지를 확인하라. 끓는 냄비에서 남의 손을 막아서던 그 반사신경은 옳다. 다만 남이 쥔 것이 냄비가 아니라 그가 아끼는 무엇일 수도 있음을, 미루기 전에 한 번 더 보는 것. 그것이 자기에서 출발해 남에게 가닿는 이 오래된 길을, 독선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끝까지 어질게 걷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