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동양·관조 전통

거경궁리 (居敬窮理)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곳으로 모아 경건하게 다잡은 상태에서, 사물과 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밝히려는 성리학의 수양법. 안으로 마음을 거두는 '거경'과 밖으로 이치를 캐는 '궁리'를 한 쌍으로 본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둘이 떨어지면 공부가 무너진다고 여겼다.

너, 책상 앞에 앉긴 앉았는데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와 본 적 있을 거다. 같은 문단을 세 번째 읽는데 머리는 어제 일에 가 있고, 손은 슬그머니 휴대폰을 더듬는다. 분명 공부를 '하고는' 있는데 무엇 하나 안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반대로 어쩌다, 새벽이든 마감 직전이든, 마음이 딱 한 점으로 모여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어려운 대목이 환히 뚫리던 순간도 있었을 거다. 그 두 순간의 차이가 머리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마음이 모였느냐 흩어졌느냐'에 있다는 걸 너는 이미 몸으로 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차이를 천 년 전에 공부의 가장 밑바닥 토대로 끌어올린 사람들에 관한 거다. 그들은 머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어떤 상태로 만들어 둘 것인가를 물었다.

배경은 11세기 송나라다. 그 무렵 유학은 한 번 크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불교와 도교가 인간의 마음과 우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드는 동안, 유학자들은 자기네 옛 경전 안에도 그만한 깊이가 있음을 새로 길어 올리려 했다. 그 흐름의 한복판에 정호와 정이 형제가 있었다. 특히 동생 정이는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한 문장으로 못 박았는데, 전하기로는 이런 뜻이었다. 마음을 기르고 다잡는 데는 '경(敬)'으로써 하고, 배움으로 나아가는 데는 이치를 끝까지 캐는 '치지(致知)'에 있다. 안으로 마음을 경건하게 거두는 일과 밖으로 이치를 파고드는 일, 이 둘을 처음으로 나란히 묶어 공부의 두 기둥으로 세운 거다. 여기서 '경'이라는 글자가 핵심인데, 흔히 '공경'으로 옮기지만 본뜻은 그보다 깊다. 마음이 이리저리 새지 않도록 한곳에 거두어 깨어 있게 하는 것, 게으르지도 들뜨지도 않은 팽팽한 각성의 상태 — 그게 경이다. 정이 형제가 이 경을 처음으로 철학의 한가운데 끌어다 놓았다.

이 씨앗을 거대한 체계로 키운 사람은 12세기의 주희, 흔히 주자라 부르는 이다. 그는 정이가 세운 두 기둥에 지붕을 얹어 하나의 집을 지었다. 마음을 다잡는 쪽을 '거경(居敬)', 곧 경에 머문다 했고, 이치를 캐는 쪽을 '궁리(窮理)', 곧 이치를 끝까지 파고든다 했다. 그러고는 이 둘이 결코 따로 놀아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흔히들 이 한 쌍을 수레의 두 바퀴, 혹은 새의 두 날개에 비긴다. 한쪽 바퀴만 굴리면 수레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고, 한쪽 날개만 퍼덕여선 새가 날지 못한다. 마음만 고요히 가다듬고 이치를 안 캐면 멍하니 앉은 명상에 그치고, 이치만 바삐 좇고 마음이 흩어져 있으면 아무리 책을 쌓아도 제 것이 되질 않는다. 여기서 너는 정명이나 다른 가르침과 다른 이 사고법만의 묘한 지점을 봐야 한다. 보통 우리는 '무엇을 알 것인가'만 따지지, '아는 동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여야 하는가'는 잘 묻지 않는다. 거경궁리는 바로 그 잊힌 절반, 인식의 그릇인 마음 자체를 먼저 닦아 두라고 말한다.

이 가르침이 가장 깊고 절절하게 산 사람을 찾으려면 바다 건너 조선으로 와야 한다. 16세기의 퇴계 이황이다. 그는 주자의 거경궁리를 단순히 이어받은 게 아니라, 그것을 평생 자기 몸으로 살아 낸 사람이었다. 그가 일흔에 가까워 임금을 위해 성리학의 핵심을 열 폭의 그림으로 간추려 올린 「성학십도」라는 글이 있는데, 그 한복판을 관통하는 한 글자가 바로 경이다. 그는 마음을 어떻게 한곳에 모아 깨어 있게 할 것인가를,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아침에 눈떠 밤에 잠들 때까지의 구체적 몸가짐으로 풀어 놓았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자세를 바로 하고,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오롯이 두는 그 깨어 있음을, 그는 거창한 도(道)가 아니라 매일의 습관으로 보았다. 그가 이 가르침을 어떻게 끝까지 밀고 갔는지를 보여 주는 한 장면이 전한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석에 누운 그가 곁의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 중 하나가, 머리맡에 둔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 한다.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까지, 한 그루 매화 앞에서조차 마음을 거두어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던 사람. 거경이 입에 발린 구호가 아니라 숨 쉬듯 몸에 밴 결이었음을, 이 한 토막이 말없이 보여 준다.

그가 이 도구로 이룬 것은 책 몇 권이 아니다. 그는 도산서당을 열어 제자들을 길렀고, 그 가르침은 조선 선비들이 학문과 삶을 대하는 기본 태도가 되어 수백 년을 흘렀다. 마음을 다잡는 일과 이치를 캐는 일이 둘이 아니라는 이 단순한 한 쌍이, 한 사회가 사람을 길러 내는 방식의 골격이 된 셈이다. 다만 이 가르침은 본디 컴퓨터나 데이터를 향한 적이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마음을 향한, 안으로 거두고 밖으로 캐는 살아 있는 공부였다. 굳이 기계에 끼워 맞출 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너가 무언가를 제대로 익히고 싶은데 아무리 읽고 들어도 겉돌기만 하는 상황을 만나거든, 더 좋은 자료나 더 긴 시간을 먼저 찾지 마라. 먼저 네 마음이 지금 한곳에 모여 깨어 있는지부터 물어라. 휴대폰을 멀리 치우고,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을 한 번 고르고, 오직 이 한 가지에만 마음을 거두어라. 그 다음에야 비로소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라. 마음을 모으는 일과 이치를 캐는 일, 그 두 바퀴를 함께 굴려야 비로소 앎이라는 수레가 앞으로 나아간다. 천 년 전 그들이 책보다 마음을 먼저 챙기라 한 이유가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