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동양·관조 전통

격물치지 (格物致知)

사물에 직접 다가가 그 안에 깃든 이치를 끝까지 캐냄으로써 참된 앎에 이르려는 사고법. 동아시아 유학의 오랜 화두로, '사물을 궁구하여 앎을 이룬다'는 짧은 구절 하나가 천 년에 걸친 논쟁을 낳았다. 앎이란 밖의 사물을 파고들어 얻는 것인가, 아니면 안의 마음을 바로잡아 얻는 것인가를 두고 갈린다.

너, 마당에 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고 해 보자. 누군가 너에게 진지하게 이렇게 말한다. 저 대나무 앞에 앉아 그 속에 담긴 이치를 끝까지 들여다보면, 마침내 천하 만물의 이치를 깨치게 되리라. 너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한번 해 보기로 한다. 첫째 날, 댓잎의 결을 본다. 둘째 날, 마디의 생김을 본다.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대나무는 그저 대나무일 뿐, 어떤 이치도 입을 열어 주지 않는다. 이레째 되는 날, 너는 머리에 열이 오르고 자리에 드러눕는다. 깨달음은커녕 병을 얻은 거다. 오늘 이야기는, 실제로 이 일을 저질렀던 한 젊은이와, 그를 그 대나무 앞으로 떠민 한 줄의 짧은 가르침에 관한 거다.

그 한 줄은 까마득히 오래된 책에서 왔다. 본래 예법을 적은 두툼한 책 한가운데 짧게 끼어 있던 대학(大學)이라는 글에, 배움의 차례를 늘어놓은 대목이 있다. 그 첫 칸에 여덟 글자가 박혀 있었다. 사물에 다가가 이치를 궁구하면 앎이 이루어진다 — 격물(格物)하면 치지(致知)한다. 그런데 묘한 것은, 정작 이 책이 격물이 무엇이고 치지가 무엇인지를 끝내 풀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첫 단추 자리에, 뜻이 비어 있는 글자만 덩그러니 놓인 거다. 이 빈자리가 그 뒤 천 년 가까이 동아시아 최고의 머리들을 끌어들인 수수께끼가 됐다.

이 빈칸을 처음으로 정색하고 채우려 든 이들은 대략 십일 세기 송나라의 학자들이었다. 그중 정이(程頤)라는 사람이 격물의 '격(格)'을 '다다른다, 이른다'로 새겼다. 사물 하나하나에 바싹 다가가 그 안의 이치를 캐라는 거다. 그리고 한 세대 뒤, 이 흩어진 실마리를 거대한 체계로 엮어 올린 사람이 주희(朱熹)다. 그는 십이 세기 후반 사람으로, 본래 예법서 한구석에 묻혀 있던 대학을 끌어내 사서(四書)라는 유학의 핵심 교과 맨 앞자리에 앉히고, 격물치지를 모든 공부의 출발점으로 못 박았다. 주희의 그림은 이랬다. 만물에는 저마다 이치가 깃들어 있다. 책 한 권, 풀 한 포기, 사람 사이의 일 하나하나를 오늘 하나 내일 하나 꾸준히 파고들어 이치를 쌓다 보면, 어느 날 막혔던 둑이 터지듯 환하게 꿰뚫리는 순간이 온다. 격물은 그렇게 바깥의 사물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공부였다.

자, 이제 대나무 앞에 드러누웠던 그 젊은이로 돌아가자. 그는 왕수인(王守仁), 뒷날 양명(陽明)이라는 호로 더 알려진 사람이다. 대략 1492년 무렵, 스무 살 안팎의 그는 주희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믿고 실행에 옮겼다. 천하의 이치가 사물마다 들어 있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선 이 대나무부터. 그는 벗과 함께 관아 뜰의 대나무를 마주하고 앉아 그 이치를 궁구하기 시작했다. 벗은 사흘 만에 지쳐 병이 났고, 그는 오기로 버티다 이레 만에 똑같이 앓아누웠다. 대나무는 끝내 아무 이치도 내주지 않았다. 여기서 보통은 '내 정성이 모자랐구나' 하고 넘어가겠지. 그런데 이 실패가 그의 가슴에 박혀 평생을 따라다녔다. 정말 정성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이치를 찾는 방향이 틀렸던 게 아닐까. 천하의 이치를 다 더듬으려면 몇 생을 살아야 하나. 이 의심이 십수 년을 곪았다.

답은 가장 밑바닥에서 터졌다. 1508년, 그는 권력자에게 대들었다가 곤장을 맞고 멀고 험한 용장(龍場)이라는 변방으로 유배된다. 사는 곳도 마땅찮고 죽음이 멀지 않은 그 궁벽한 땅에서, 어느 밤 그는 벌떡 깨어 깨달았다고 전한다. 이치는 저 바깥 대나무 속에 있는 게 아니었다. 이치는 본래 내 마음(心) 안에 갖춰져 있다. 그러니 격물이란 바깥 사물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 일이 아니라, 일과 사물을 대하는 내 마음의 비뚤어짐을 바로잡는 일이다. '격'을 '바로잡는다'로 다시 읽은 거다. 같은 여덟 글자를 두고, 주희가 '바깥으로 나아가 캐라'로 읽은 것을 그는 '안으로 돌이켜 바로잡으라'로 뒤집었다. 한 그루 대나무 앞의 그 처참한 실패가, 마음을 근본으로 삼는 심학(心學)이라는 거대한 한 갈래의 씨앗이 된 셈이다.

이 두 갈래가 부딪힌 자리에서 동아시아 지성사 가장 깊은 논쟁 하나가 자라났다. 앎은 밖에서 오는가 안에서 오는가. 주희를 따른 쪽은 사물을 널리 궁구하는 학문과 책 읽기로 기울었고, 후대 조선의 선비들이 평생 경전을 파고든 학풍의 뿌리에도 이 격물이 깔려 있다. 양명을 따른 쪽은 앎과 행함이 둘이 아니라며 마음을 닦아 곧장 실천으로 옮기는 길을 갔다. 흥미로운 건, 양명 자신은 책상물림이 아니라 반란을 평정하고 군대를 이끈 실무가였다는 점이다. 그가 격물을 '마음 바로잡기'로 옮겨 놓자, 앎은 더 이상 서재에 쌓이는 지식이 아니라 일을 당장 옳게 처리하는 힘이 됐다. 같은 네 글자가 한쪽에선 끝없는 탐구의 깃발이 되고, 다른 쪽에선 즉각적 실천의 칼이 된 거다.

여기서 너에게 가장 솔직하게 짚어 둘 게 하나 있다. 격물치지는 본디 바깥 자연을 측정해 법칙을 뽑아내려는 실험과학의 방법이 아니었다. 주희의 사물 궁구가 오늘날의 관찰·실험과 닮아 보여 더러 그렇게 갖다 붙이지만, 그 본령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가를 향한 도덕의 공부였다. 그러니 이걸 억지로 데이터나 기계의 일로 옮겨 읽을 필요는 없다. 이건 자연을 향한 망원경이 아니라, 사물과 마주한 나 자신을 향한 거울에 더 가깝다.

그러니 너가 어떤 문제 앞에서 도무지 길이 안 보여 막막할 때, 두 목소리를 같이 떠올려라. 한쪽은 말한다. 책상에서 그만 가정하고, 그 사물에 직접 다가가 끝까지 캐 보라. 다른 한쪽은 말한다. 답이 안 보이거든 바깥만 뒤지지 말고, 그 일을 대하는 네 마음이 어디서 비뚤어졌는지부터 바로잡으라. 한 젊은이가 대나무 앞에서 이레를 앓고서야 깨친 것이 바로 이 둘 사이의 거리다. 밖을 궁구할 때인지 안을 바로잡을 때인지, 그걸 가릴 줄 아는 데서 참된 앎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