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관점·변증

6색 사고모자 (Six Thinking Hats)

하나의 문제를 사실, 감정, 위험, 이익, 창의, 통제라는 여섯 가지 역할로 나누고, 모자를 바꿔 쓰듯 한 번에 한 역할씩만 골라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는 회의·사고 기법.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맞붙어 싸우는 대신, 같은 색 모자를 동시에 쓰고 한 방향을 함께 파고드는 '나란히 생각하기'가 핵심이다.

너, 회의실에서 한 시간을 통째로 날려 본 적 있을 거다. 누가 새 안을 꺼내자마자 한쪽에서 '그거 위험해'가 튀어나오고, 제안한 사람은 발끈해서 장점만 변호하고, 또 한 사람은 '나는 느낌이 안 좋다'며 끼어든다. 그 순간부터 회의는 토론이 아니라 진지전이 된다. 각자 자기 참호를 파고 들어앉아, 상대 말의 약점만 노린다.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나와도 누군가 즉시 쏘아 떨어뜨리니, 아무도 위험한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게 된다. 너도 알지, 그 답답함. 사람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한 방 안에서, 사실과 감정과 위험과 기대가 동시에 뒤엉켜 서로 멱살을 잡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는, 이 뒤엉킴을 푸는 어이없을 만큼 단순한 장치 하나에 관한 거다. 모자 여섯 개.

이걸 고안한 사람은 에드워드 드 보노라는 몰타 출신 의사다. 1933년에 태어나 몰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 건너가 생리학과 심리학을 파고든 사람인데, 그가 평생 붙든 물음은 의외였다. 사람의 뇌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기술처럼 가르칠 수는 없는가. 1967년 그는 '래터럴 싱킹', 우리말로 수평적 사고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냈다. 늘 가던 길로 곧장 파고드는 수직적 사고 말고, 옆으로 비켜서 엉뚱한 데서 답을 끌어오는 사고를 가리킨 말이었다. 모자라는 발상의 싹도 이 무렵에 텄다. 전해지기로 그는 1971년의 한 경영서에서 이미 '다른 모자를 써 보라'는 비유를 흘렸다. 머리에 무엇을 쓰느냐로 생각의 방향을 갈아 끼운다는 그 착상이, 십수 년을 묵어 1985년 한 권의 책으로 영글었다. 제목이 그대로 '여섯 색깔 생각모자'였고, 펴낸 곳은 리틀브라운이었다.

장치 자체는 우습도록 간단하다. 색깔 입힌 모자 여섯 개를 떠올려라. 흰 모자를 쓰면 오로지 사실과 숫자만 말한다. 우리가 아는 게 뭐고 모르는 게 뭔지, 감정도 해석도 빼고 데이터만 깐다. 빨간 모자를 쓰면 반대로 느낌만 말한다. '왜 그렇게 느끼냐'는 추궁이 금지된다. 직감과 불안과 설렘을, 변명 없이 그냥 꺼내 놓을 면허를 준다. 검은 모자는 위험과 약점을 맡는다. 이게 왜 안 될지, 무엇이 무너질지 깐깐하게 따진다. 노란 모자는 그 반대편, 이익과 가능성을 캔다. 초록 모자는 새 아이디어와 대안을 마구 틔우는 창의의 자리다. 그리고 파란 모자는 이 모든 걸 위에서 내려다보며 진행을 잡는 사회자의 모자다. 지금 무슨 모자를 쓸지, 다음은 무엇으로 넘어갈지, 결론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관장한다.

여기서 네가 놓치면 안 될 핵심이 있다. 진짜 발명은 모자 색깔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모자를 동시에 쓴다'는 규칙이다. 검은 모자를 쓰는 동안은 방 안의 전원이 비판자가 된다. 평소 같으면 제안자와 반대자로 갈려 싸웠을 사람들이, 이 순간만큼은 한편이 되어 같은 약점을 함께 노려본다. 그러다 파란 모자가 '이제 노란 모자로 갑시다' 하면, 방금까지 깎아내리던 그 입들이 일제히 장점을 찾기 시작한다. 드 보노는 이걸 '나란히 생각하기'라 불렀다. 서로 마주 보고 칼을 겨누는 대신,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 한 면씩 차례로 비추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그리스에서 물려받은 '논쟁으로 진리를 가린다'는 오래된 습관이야말로 회의를 잡아먹는 주범이었다. 두 사람이 각자 옳다고 싸우면, 둘은 자기 입장을 지키느라 에너지의 절반을 방어에 쓴다. 모자는 바로 그 방어를 해제한다. 너는 지금 이 안의 편도 반대편도 아니다, 그냥 '위험'이라는 한 면을 모두와 함께 들여다보는 중일 뿐이다.

이 장치가 말장난이 아니라는 건 숫자로 증명됐다. 가장 인상적인 기록은 스위스·스웨덴계 거대 엔지니어링 기업 ABB의 핀란드 법인에서 나왔다. 여러 나라가 얽힌 다국적 안건을 두고 예전엔 토론에만 한 달가량을 쏟던 사람들이, 이 여섯 모자를 도입한 뒤로는 같은 결론을 이틀 만에 냈다. 그 회사 연구책임자 유하니 퓔캐넨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 옛 방식으로는 최소 한 달이 걸렸을 일을, 여섯 모자로는 이틀이면 결과가 나온다고. 한 달이 이틀로 줄었다는 건, 회의가 빨라진 게 아니라 회의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 안에 사실 검토, 감정 토로, 위험 점검, 이익 발굴, 대안 창출을 뒤엉키지 않고 순서대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IBM과 지멘스, 듀폰, 일본의 NTT 같은 곳들이 줄줄이 이 방식을 회의에 들였다. 한 의사가 종이 위에 그린 비유가, 세계 곳곳의 거대 조직 회의실을 다시 설계한 셈이다.

작은 예로 직접 한 바퀴 돌려 보자. 네가 동네에 무인 카페를 낼지 말지 고민한다 치자. 흰 모자부터 쓴다 — 보증금이 얼마, 유동인구가 하루 몇, 근처 경쟁점이 몇 곳. 사실만 깐다. 빨간 모자로 갈아 쓴다 — 솔직히 무인이라는 게 좀 불안하고, 그래도 내 가게라는 설렘이 크다. 느낌 그대로다. 검은 모자 — 기계가 고장 나면 매출이 통째로 멈추고, 도난과 진상 손님을 막을 사람이 없다. 노란 모자 — 인건비가 거의 안 들고, 24시간 돌릴 수 있고, 나 혼자 다른 일과 병행이 된다. 초록 모자 — 그럼 낮엔 직원을 두고 심야만 무인으로 돌리면? 아니면 무인 매대만 입구에 두고 본 매장은 유인으로? 마지막에 파란 모자가 정리한다 — 자, 검은 모자에서 나온 도난 위험이 가장 크니, 그것부터 해결되면 노란 모자의 장점이 산다. 보안 문제 해결을 다음 단계 과제로 못 박자. 보았나. 같은 머리 하나로 다섯 면을 따로따로 비추니, 뭉뚱그려 '할까 말까' 끙끙대던 것이 또렷한 다음 행동으로 떨어졌다.

이 사고법은 디지털 세계로도 건너왔는데, 그 방식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협업 화이트보드나 회의 도구 안에 여섯 색 칸을 그대로 박아 넣어,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지금은 다 같이 초록 칸을 채우는 시간'을 맞추게 했다. 더 깊은 변화는 요즘 인공지능에서 일어난다. 똑똑한 언어 모델 하나에게 어려운 결정을 시킬 때, 한 번에 답을 토해 내게 하지 않고 일부러 역할을 쪼개 여러 번 다른 시선으로 검토시키는 방법이 자리 잡았다. 한 번은 사실만 정리하는 흰 모자로, 다음은 허점만 캐는 검은 모자로, 또 한 번은 대안을 짜내는 초록 모자로 같은 문제를 돌리고 그 결과를 파란 모자가 종합하게 한다. 여기서 생각의 윗단추가 한 번 갈렸다는 데 주목해라. 예전엔 '한 지능이 한 번에 정답을 내는 게 최선'이라 여겼는데, 모자식 발상이 들어오면서 '하나의 지능이라도 역할을 갈아 끼우며 여러 번 다투게 하는 편이 낫다'로 바뀐 것이다. 결정의 질은 머리가 얼마나 좋은가보다, 시선을 몇 갈래로 갈라 차례로 비추는가에 달렸다는 깨달음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결정을 앞두고 머릿속이 사실과 불안과 기대로 뒤엉켜 옴짝달싹 못 하거든, 그 다섯 가지를 한꺼번에 굴리려 들지 마라. 모자를 하나씩 갈아 써라. 지금은 사실만, 다음은 느낌만, 그다음은 위험만, 또 그다음은 이익과 대안만. 회의에서도 똑같이, 사람을 편으로 가르지 말고 시간을 색으로 갈라라. 모두가 같은 순간 같은 모자를 쓰게 하면, 싸움이던 자리가 합동 작업이 된다. 한 몰타 의사가 남긴 가르침은 결국 한 줄이다 — 어려운 생각은 한 번에 다 하려 들지 말고, 한 번에 한 색씩 비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