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관점·변증

중도 (madhyamaka)

쾌락과 고행, 있음과 없음 같은 양극단을 모두 물리치고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길을 내는 사고법. 멀리 고대 인도 붓다의 첫 가르침에서 출발했으며, 가운데란 두 극단을 반씩 섞은 미지근한 절충점이 아니라 그 둘을 가르던 틀 자체를 벗어나는 자리라고 본다.

너, 두 갈래 길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해 본 적 있을 거다. 한쪽은 '될 때까지 죽기 살기로 밀어붙여라', 맞은편은 '힘 빼고 흘러가는 대로 둬라'. 둘 다 어디선가 들어 본 옳은 말 같은데, 정작 둘을 합치면 '적당히 하라'는 맥 빠진 소리밖에 안 나온다. 가운데를 택한다는 게 늘 이렇게 두 극단을 반씩 섞어 묽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건 답이 아니라 회피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가운데'라는 말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끝까지 밀고 간 사람들에 관한 거다. 그리고 그들이 도달한 가운데는, 네가 지금 떠올리는 미지근한 절충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장면 하나로 시작하자. 전해지기로 붓다가 살아 있던 무렵, 소나라는 제자가 있었다. 원래 비파를 켜던 사람인데, 깨달음에 닿겠다고 어찌나 모질게 걷는 수행을 했는지 발이 다 터져 피로 길을 적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그는 절망에 빠져 차라리 수행을 접고 속세로 돌아갈까 마음먹는다. 그 마음을 알아챈 붓다가 찾아와 묻는다. 너 비파 켤 때, 줄을 너무 팽팽히 조이면 소리가 어떻더냐. 소나가 답한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너무 늘어지면. 그래도 나지 않습니다. 줄이 너무 조이지도 너무 늘어지지도 않게 알맞게 맞췄을 때라야 소리가 곱고 제대로 울리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네 정진도 꼭 그러하다 — 지나치게 다잡으면 들떠 흐트러지고, 지나치게 놓으면 게을러진다. 줄을 고르듯 그 사이를 잡아라. 소나는 그 말에 막힌 데가 뚫렸다. 이 비파 줄의 비유가, 양극단 사이의 가운데 길이라는 생각이 세상에 또렷이 박힌 가장 오래된 장면 가운데 하나다. 붓다 자신이 왕자 시절 호사의 극단과 출가 뒤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간 고행의 극단을 둘 다 살아 보고 둘 다 버린 끝에 길어 올린 가르침이라, 머리로 지어낸 중간이 아니라 몸으로 양끝을 다 찍어 보고 돌아온 가운데였다.

여기까지면 중도는 그저 '적당히, 균형 있게'라는 처세훈처럼 들린다. 그런데 대략 2세기 무렵, 인도의 나가르주나라는 사람이 이 말을 붙들고 훨씬 아찔한 데까지 끌고 간다. 그는 우리가 무언가를 두고 다툴 때 늘 네 칸짜리 덫에 갇힌다는 걸 봤다. 그것은 있는가, 없는가, 있으면서 없는가, 있지도 없지도 않은가. 보통은 이 넷 중 하나는 답이려니 한다. 그런데 나가르주나는 네 칸을 하나하나 따라 들어가 전부 모순으로 무너뜨린다. 있다고 하면 영원불변의 알맹이를 인정하는 꼴이라 틀리고(상주의 극단), 없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로 굴러떨어져 틀린다(단멸의 극단). 그러면 둘 다? 둘 다 아니다? 그것도 안 된다. 네 칸 모두 부정하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 같은데, 바로 그 자리가 그가 말하는 중도다. 그러니까 그의 가운데는 '있음'과 '없음'을 반반 섞은 점이 아니라, 애초에 모든 것이 저 홀로 선 알맹이 없이 서로 기대어 일어날 뿐이라는 깨침 — 그가 공(空)이라 부른 것 — 과 같은 말이었다. 사물은 인연 따라 함께 일어나니 고정된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니 있다고도 없다고도 못 박을 수 없다는 것. 더 놀라운 건 그가 한 발 더 나가 '나에게는 내세울 주장이 따로 없다'고 못 박은 대목이다. 상대의 입장을 무너뜨릴 뿐, 그 자리에 자기 깃발을 새로 꽂지 않는다. 가운데란 양쪽을 다 비운 자리지 그 사이 어딘가에 새로 세운 또 하나의 입장이 아니라는 거다.

이 위태로운 칼을 가장 정교하게 휘두른 후예가 대략 7세기의 찬드라키르티다. 그는 나가르주나의 '주장 없음'을 끝까지 밀어붙여, 자기 명제는 한 톨도 세우지 않고 오직 상대 논리의 안으로 들어가 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 무너뜨리는 방식 — 뒷날 귀류논증이라 불린 길 — 을 갈고닦았다. 적의 칼로 적을 베되 내 칼은 끝내 뽑지 않는 싸움법이다. 이 결벽에 가까운 방법으로 중관(中觀)이라는 사유의 갈래는 동요 없이 단단해졌고, 그 뒤로 대승불교 철학 전체를 떠받치는 등뼈가 됐다. 인도에서 길은 두 갈래로 크게 뻗었다. 하나는 티베트로 넘어가 그곳 불교의 가장 높은 이론으로 자리 잡고, 14~15세기의 총카파 같은 이들이 체계로 다듬어 오늘날 달라이 라마로 이어지는 전통의 골격이 됐다.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 건너가 삼론종이라는 학파로 꽃피며 동아시아 사유에 깊이 스몄다. 비파 줄을 고르라던 소박한 균형의 가르침이, 천 년에 걸쳐 '있음과 없음이라는 물음 자체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라는 가장 깊은 사유로 거듭 자라난 셈이다.

그러니 너가 양극단 사이에 끼여 어느 쪽도 못 고른 채 굳어 버리거든, 둘을 반씩 섞어 묽게 타협하려 들기 전에 한 번 의심해 봐라. 나를 이 둘 중 하나로 몰아넣는 그 물음 자체가, 혹시 처음부터 잘못 짜인 덫은 아닌가. 진짜 가운데 길은 두 극단의 한복판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둘을 갈라놓던 틀에서 한 발 빠져나오는 데 있다. 한 비파 켜던 수행자와 주장을 세우지 않던 한 논사가 남긴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