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논리·정합성 점검

오컴의 면도날 (Occam's razor)

여러 설명이 똑같이 현상을 설명한다면, 가정을 더 적게 끌어들이는 쪽을 택하라는 사고의 원칙. 14세기 수도사 윌리엄 오브 오컴의 이름이 붙었으며, 불필요한 전제를 군더더기처럼 잘라 낸다는 뜻에서 '면도날'이라 불린다. 단순한 쪽이 늘 옳다는 보장이 아니라, 설명력이 같을 때 잠정적으로 어느 쪽에 걸지를 정하는 규칙이다.

너, 한밤중에 집에 들어왔는데 거실 화분이 깨져 바닥에 흙이 쏟아져 있다고 해보자. 머릿속에 두 그림이 동시에 뜬다. 하나는, 낮에 창문을 열어 둔 사이 바람이 들이쳐 화분이 넘어졌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 몰래 들어와 그 화분을 건드렸다가 흔적을 지우려 다른 건 그대로 두고 조용히 나갔다. 두 이야기 다 깨진 화분을 설명한다. 그런데 너는 거의 본능적으로 첫 번째를 고른다. 왜? 두 번째는 침입자라는 존재를, 그가 들어온 경로를, 하필 화분만 건드린 동기를, 흔적을 지운 솜씨를 줄줄이 더 끌어와야 하니까. 똑같은 흙더미를 설명하는 데 두 번째 이야기는 짐을 너무 많이 짊어진다. 오늘 이야기는, 이 '짐 적은 쪽을 골라라'를 누가 칼처럼 벼려 휘둘렀고, 정작 그 칼날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은 그 칼을 만든 적도 없다는, 좀 묘한 사연에 관한 거다.

때는 대략 14세기 초, 잉글랜드에 윌리엄 오브 오컴이라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가 있었다. 1287년쯤 태어나 1347년쯤 세상을 떴다 하니,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기 직전 사람이다. 그가 살던 시대의 학문은 설명이 자꾸 살이 찌는 병에 걸려 있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면 보이지 않는 본질이니 형상이니 숨은 성질이니 하는 것들을 새로 자꾸 불러들였다. 오컴은 이 군더더기를 못 견뎠다. 그가 즐겨 쓴 말은 이랬다. 필요 없이 여럿을 끌어들이지 마라. 더 적은 것으로 될 일을 더 많은 것으로 하는 건 헛수고다. 여기서 네가 꼭 알아 둘 게 있다. 이 발상은 오컴이 처음 생각해 낸 게 아니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그 뒤 아퀴나스에게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오컴은 발명가가 아니라, 남들이 어렴풋이 알던 원칙을 누구보다 자주, 누구보다 날카롭게 휘두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대가 그 칼에 그의 이름을 새겨 준 거다.

그런데 진짜 묘한 대목은 따로 있다. 우리가 흔히 '오컴의 면도날'이라며 외우는 그 유명한 라틴어 문장 —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지 말라 — 그건 정작 오컴이 쓴 적 없는 문장이다. 그 문구는 그가 죽고 거의 삼백 년이 지난 1639년, 아일랜드의 또 다른 프란치스코회 학자 존 펀치가 던스 스코터스를 풀이하다 적어 넣은 것이다. 펀치는 그걸 자기 발명이라 하지도 않고 '학자들이 흔히 쓰는 격언'이라 불렀다. '면도날'이라는 별명조차 한참 더 뒤, 대략 19세기에 가서야 붙었다. 그러니 정리하면 이렇다. 원칙은 오컴 이전부터 있었고, 그 유명한 문장은 오컴 이후에 다른 사람이 썼다. 한 사람의 이름이,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칼과 자기가 쓰지도 않은 문장에 영영 새겨진 셈이다. 이름이 붙는다는 게 이렇게 우연하고, 또 이렇게 끈질기다.

이 칼이 가장 통쾌하게 쓰인 자리를 하나 끝까지 따라가 보자. 하늘 이야기다. 옛사람들은 행성이 지구를 도는데 그 길이 영 매끄럽지 않다는 걸 알았다. 화성은 가다가 멈칫 뒤로 돌기까지 한다. 이걸 지구 중심으로 설명하려니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큰 원 위에 작은 원을 얹고, 그 위에 또 원을 얹어야 했다. 행성마다 원이 수십 개씩 불어났다. 그래도 신기하게 하늘의 위치는 꽤 잘 맞혔다. 설명력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17세기에 케플러가 와서 그 원 무더기를 통째로 들어내고 단 하나, 타원이라는 곡선 하나로 갈아 끼웠다. 행성은 그냥 찌그러진 원을 그리며 돈다. 끝. 수십 개의 덧원이 가정 하나로 줄었다. 두 설명이 하늘을 비슷하게 맞힌다면, 가정을 한 무더기 짊어진 쪽과 하나만 진 쪽 중 어디에 걸겠는가. 이게 면도날이 하는 일이다. 똑같이 맞히는 두 그림 앞에서, 군더더기 가정을 쳐 내고 가벼운 쪽으로 판돈을 옮기는 것. 그리고 시간이 그 판단의 손을 들어 줬다.

여기서 면도날의 무서운 점 하나를 짚어야 공정하다. 단순한 게 늘 옳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거다. 때로는 세상이 정말로 복잡해서, 짐을 더 진 설명이 진짜일 때도 있다. 면도날은 진리를 증명하는 칼이 아니라, 증거가 같을 때 어느 쪽에 먼저 걸지를 정하는 칼이다. 새 증거가 나와 단순한 설명이 깨지면, 그때는 군말 없이 가정을 하나 더 얹어야 한다. 함부로 휘두르면 봐야 할 복잡함까지 베어 버린다. 좋은 칼일수록 언제 멈출지를 아는 손에서 산다.

이 오래된 칼이 요즘 가장 치열하게 쓰이는 곳은 뜻밖에도 기계를 가르치는 자리다. 컴퓨터에게 데이터를 주고 규칙을 찾게 하면, 기계는 눈앞의 데이터에 자기를 너무 꼭 맞추려 든다. 점 몇 개를 지나는 선을 그으랬더니, 모든 점을 한 치 오차 없이 꿰는 구불구불한 괴물 곡선을 그려 온다. 그 곡선은 가진 데이터는 완벽히 설명하지만 새 데이터 앞에선 와르르 무너진다. 이 병을 사람들은 과적합이라 부른다. 면도날을 잊은 기계의 병이다. 그래서 공학자들은 기계에게 일부러 벌점을 매긴다. 설명이 복잡해질수록, 곡선이 요란해질수록 점수를 깎는 장치를 심어, 데이터를 그럭저럭 맞히면서도 가장 단순한 답으로 끌어내린다. 여기서 네가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걸 기계에 심으려면, '단순함'이라는 그 흐물흐물한 말을 기계가 잴 수 있는 무엇으로 바꿔야 했다는 거다. 수도사의 머릿속 직관에 머물던 '가정이 적다'를, '이 설명을 적어 내리는 데 글자가 몇 자나 드는가' 같은 길이의 문제로 다시 정의하고서야 비로소 기계가 면도날을 쥘 수 있었다. 막연한 미덕이던 단순함이, 숫자로 재고 깎을 수 있는 양으로 윗단추부터 새로 끼워진 것이다. 칠백 년 전 수도사의 손버릇이 그렇게 인공지능의 안전장치로 들어앉았다.

그러니 너가 어떤 일을 두고 설명이 둘 셋 갈리는 자리에 서거든 — 매출이 왜 빠졌나, 고객이 왜 떠났나 — 이렇게 물어라. 이 설명들이 똑같이 사실을 맞히고 있나. 그렇다면, 각자가 새로 끌어들이는 가정의 수를 세어 봐라. 침입자와 음모와 숨은 손을 줄줄이 불러야 하는 이야기보다, 열어 둔 창문 하나로 끝나는 이야기에 먼저 걸어라. 단, 흙더미가 그것만으론 도저히 안 맞는 날이 오면 그땐 군말 없이 창문을 거두고 다음 가정을 얹어라. 적게 가정하되, 필요하면 늘릴 줄 아는 것. 그게 한 수도사의 이름을 빌린, 칠백 년 묵은 칼의 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