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증주의 (falsification)
어떤 주장이 과학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증명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반박될 수 있느냐로 갈린다고 보는 입장. 깨질 조건을 스스로 내거는 주장만이 참된 앎의 자격이 있으며, 좋은 이론이란 틀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인 예측을 하는 이론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너,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 본 적 있을 거다. 네가 어떤 얘기를 꺼내든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하고 받아치는 사람. 네가 화를 내면 '거봐 억눌린 분노가 터진 거야', 네가 차분하면 '거봐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거야'. 어느 쪽이 나와도 그의 이론은 이긴다. 처음엔 대단해 보인다. 세상 모든 일을 다 설명하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무엇이 나와도 맞는 말이라면, 그건 정말로 뭔가를 맞힌 걸까, 아니면 애초에 틀릴 수가 없게 만들어 둔 걸까.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서늘함의 정체를 평생을 걸어 파헤친 한 청년에 관한 거다.
때는 대략 1919년, 1차 대전이 막 끝난 빈. 열일곱 살 남짓의 카를 포퍼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 시절 빈의 똑똑한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세 가지 사상이 있었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알프레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포퍼도 한동안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를 평생 놓아주지 않은 사건이 하나 터진다. 그는 당시 아들러 밑에서 잠깐 일을 도왔는데, 어느 날 도무지 아들러의 이론에 들어맞아 보이지 않는 한 아이의 사례를 그에게 가져갔다. 아들러는 그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 단박에 자기의 '열등감 이론'으로 술술 풀어냈다. 놀란 포퍼가 물었다. 선생님은 그 애를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아들러가 답했다. 나의 천 번의 경험 때문이지. 그러자 포퍼가 받아쳤다. 그럼 이번 사례까지 더해 이제 천한 번의 경험이 되셨겠군요.
이 한마디에 그의 일생이 들어 있다. 포퍼가 깨달은 건 이거였다. 아들러의 이론은 어떤 아이를 데려와도 설명할 수 있었다. 겁 많은 아이도, 겁 없는 아이도, 똑같이 열등감으로 풀린다. 프로이트도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실이 나와도 자기 이론의 또 하나의 증거로 삼켜 버렸다. 신봉자들은 그 무한한 설명력을 이론의 위대함이라 자랑했지만, 포퍼가 보기엔 정확히 그게 약점이었다.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는다는 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 말은 사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 무렵 그의 눈에 정반대의 물건이 들어왔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별빛이 태양 곁을 지날 때 중력에 휘어 정확히 얼마만큼 꺾인다고 못 박았다. 이건 위험천만한 예측이었다. 1919년 에딩턴이 일식을 틈타 그 별빛의 휘어짐을 실제로 쟀는데, 만약 숫자가 어긋났다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그 자리에서 끝장날 판이었다. 포퍼가 전율한 대목이 바로 이거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이론이 죽을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내걸었다. '이렇게 안 나오면 내가 틀린 거다'라고 목을 내민 것이다. 무엇으로도 안 깨지는 아들러와, 한 방에 깨질 수 있도록 표적을 자청한 아인슈타인. 이 둘의 차이가 과학과 사이비를 가르는 진짜 경계선이라고 그는 확신했고, 1934년 그 생각을 책으로 묶어 냈다.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건 증명 가능성이 아니라 반증 가능성이라는 것 — 사람들은 이 사고법을 반증주의라 부르게 됐다.
여기엔 논리의 짓궂은 비대칭이 숨어 있다. '모든 백조는 희다'는 주장을 생각해 봐라. 흰 백조를 백 마리, 천 마리, 백만 마리를 봐도 그 명제는 영영 증명되지 않는다. 다음 한 마리가 검을지 누가 아는가. 그런데 검은 백조 단 한 마리면 그 명제는 그 즉시 무너진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천 년 넘게 백조는 다 희다고 철석같이 믿다가, 호주에 가서 검은 백조를 보고 한순간에 깨진 일이 있다. 아무리 쌓아도 증명은 안 되지만 반례 하나로 무너지는 이 기울어진 저울 — 포퍼는 바로 이 비대칭에 앎의 운명을 걸라고 했다. 그러니 똑똑한 자세는 내 주장을 떠받칠 증거를 그러모으는 게 아니라, 내 주장을 무너뜨릴 단 하나의 반례를 내가 먼저 사냥하러 나서는 거다.
포퍼는 나치를 피해 멀리 뉴질랜드로 갔다가 전후 런던정경대로 옮겨 학문의 거목이 됐고, 1965년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94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반증 정신은 철학 강의실 밖에서 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네가 매일 쓰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를 보면 안다. 프로그램을 검사하는 일의 으뜸가는 격언이 이거다 — 테스트는 결함이 '있음'을 보일 수 있을 뿐, 결함이 '없음'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검은 백조 사냥과 똑같은 논리다. 그래서 실력 있는 개발자는 자기 프로그램이 잘 도는 경우만 골라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든 망가뜨릴 입력을 일부러 들이민다. 요즘 인공지능을 다루는 사람들이 모델을 일부러 공격해 허점을 캐내는 이른바 적대적 시험, 레드팀이라는 것도 결국 같은 뿌리다. 잘 되는 걸 백 번 확인하는 대신, 깨지는 단 한 지점을 먼저 찾아 나선다. 포퍼의 죽은 검은 백조가 코드와 알고리즘 속에서 여전히 헤엄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기획이나 가설을 손에 쥐었을 때, 또는 무슨 말을 해도 다 맞는다는 그럴듯한 이론 앞에 섰을 때, 이렇게 물어라. 이게 어떻게 되면 틀린 게 되는가. 그 답이 안 나오는 주장은 강한 게 아니라 빈 거다. 네 생각을 사랑한다면 그걸 떠받칠 증거를 모으지 말고, 그걸 죽일 수 있는 조건을 네 입으로 먼저 말하고 그 표적을 향해 직접 활을 당겨라. 그러고도 살아남는 생각만, 잠시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