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 (dialectic)
서로 맞부딪히는 두 주장(정과 반)의 모순을 덮거나 한쪽을 버리는 대신, 둘을 함께 끌어안아 더 높은 차원의 결론(종합)으로 밀어 올리는 사고법. 고대 그리스의 문답 기술에서 출발해, 모순을 진리가 자라나는 동력으로 보는 관점으로 발전했다.
너, 회의실에서 두 사람이 끝장을 보겠다는 듯 맞붙는 걸 본 적 있을 거다. 한 사람은 '가격을 올려야 산다'고 하고, 맞은편은 '가격을 내려야 산다'고 한다. 둘 다 데이터를 들고 왔고, 둘 다 진심이고, 둘 다 한 발도 안 물러선다. 이럴 때 흔한 결말은 셋 중 하나다. 목소리 큰 쪽이 이기거나, 어정쩡하게 가운데서 반씩 깎아 둘 다 망치거나, 윗사람이 '둘 다 일리 있네' 하고 덮어 버리거나. 그런데 아주 오래된, 전혀 다른 네 번째 길이 있다. 그 두 모순을 억지로 화해시키지도 말고 한쪽을 죽이지도 말고, 둘을 동시에 끌어안은 채 '도대체 어떤 더 큰 그림이라야 둘 다 옳을 수 있나'를 캐묻는 길이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길에 관한 거다.
시작은 멸시였다. 대략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엘레아에 제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히 믿는 것 — '세상은 여럿이고, 사물은 움직인다' — 을 무너뜨리려고 짓궂은 덫을 놓았다. 화살이 날아간다고 해 보자. 그런데 어느 한 순간을 딱 멈춰 찍으면, 그 순간 화살은 자기 길이만큼의 공간에 가만히 '있다'. 모든 순간에 화살이 정지해 있다면, 정지의 합이 어떻게 운동이 되나. 그러니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 너도 지금 '말도 안 돼' 싶지? 바로 그 '말도 안 되는데 반박이 안 되는' 답답함, 멀쩡한 상식과 멀쩡한 논리가 정면으로 들이받는 그 지점 — 거기서 변증법이라는 사고가 태어났다. 상대의 전제를 일단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모순을 끄집어내 상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이 문답 기술을, 그리스인들은 '디알렉티케', 곧 '말을 주고받는 기술'이라 불렀다.
이 기술을 가장 매섭게 쓴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아테네 한복판에서 자칭 전문가를 붙들고 묻기만 했다. '용기가 뭐냐'고 물어 답을 받고, 그 답이 데려가는 결론을 한 발씩 따라가 결국 그 사람 입으로 처음 답과 반대되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망신을 주려는 게 아니라, 안다고 믿던 것이 실은 모순덩어리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거였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은 거기서 멈춘다. 낡은 믿음을 깨 부수는 데까지다. 부순 자리에 무엇을 새로 세울지는 비워 두었다.
그 빈자리를 메우며 변증법을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바꿔 놓은 사람이, 대략 19세기 초 독일의 헤겔이다. 그는 모순을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진리가 자라나는 엔진'으로 뒤집었다. 어떤 생각(정)이 서면, 그 안에는 반드시 그것이 미처 품지 못한 것이 남아 결국 반대 생각(반)을 불러낸다. 둘은 충돌한다. 그런데 한쪽이 다른 쪽을 이기는 게 아니라, 양쪽의 진짜배기만 살아남아 더 넓은 생각(종합)으로 올라선다. 그리고 그 종합은 다시 새로운 정이 되어 또 다른 반을 부른다. 헤겔이 쓴 독일어 동사 하나가 이 운동의 핵심을 절묘하게 품고 있다. 그는 '아우프헤벤'이라 했는데, 이 말은 동시에 세 가지를 뜻한다 — 없애 버린다, 그리고 간직한다, 그리고 더 높이 들어 올린다. 버리되 버리지 않고 끌어올린다. 정과 반을 한꺼번에 끌어안는다는 게 바로 이거다. 한 가지는 짚고 가자. '정-반-종합'이라는 그 깔끔한 삼박자 표어는 정작 헤겔 본인이 거의 쓴 적이 없고, 후대가 그의 사상을 요약하느라 붙인 틀로 전해진다. 헤겔의 실제 운동은 그 표어보다 훨씬 끈적하고 살아 있다.
이 도구를 가장 크게 휘둘러 세상을 실제로 움직인 사람은 헤겔의 제자뻘인 카를 마르크스다. 그는 스승의 변증법을 통째로 가져오되 거꾸로 뒤집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헤겔에게서 변증법은 머리로 서 있으니, 다시 두 발로 세워야 한다. 헤겔이 생각과 정신의 충돌로 역사가 굴러간다고 본 자리에, 마르크스는 실제 먹고사는 조건의 충돌 —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생산하는 힘과 그것을 묶어 두는 낡은 제도의 정면충돌 — 을 끼워 넣었다. 그 모순이 곪다가 터지면 사회가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 그의 역사 읽기였다. 좋든 싫든, 한 시대의 정치와 혁명과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통째로 흔든 이 사상의 골격이 바로 변증법이었다. 한 철학자의 사고 도구가 책상을 떠나 거리로 나가 역사를 밀어붙인, 흔치 않은 사건이다.
그러니 너가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주장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 하게 되거든, 가장 게으른 세 가지 — 한쪽 편들기, 가운데서 반씩 깎기, '둘 다 맞다'며 덮기 — 를 먼저 의심하라. 대신 이렇게 물어라. 이 둘이 동시에 옳으려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얼마나 더 큰 판이라야 하는가. 모순은 덮을 골칫거리가 아니라, 네 생각이 한 층 올라설 다음 계단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표지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