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비판·검증

삼각측량 (triangulation)

닿을 수 없는 한 점의 위치를, 이미 아는 두 점에서 각각 바라본 방향이 만나는 자리로 알아내는 측량 기법. 여기서 번져 나와, 하나의 주장을 서로 독립된 둘 이상의 출처나 방법으로 교차 확인할 때 비로소 믿을 만해진다는 검증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너, 강 건너편 산꼭대기까지의 거리를 재야 한다고 해 보자. 줄자를 들고 헤엄쳐 갈 수도 없고, 그 위에 올라가 깃발을 꽂을 수도 없다. 손에 닿지 않는 지점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그 산을 건드리지도 않고 거리를 정확히 알아냈다. 비결은 단순하다. 강 이쪽 편에 두 지점을 잡아 그 사이 거리를 자로 정확히 잰다. 그 두 지점에서 각각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방향이 얼마나 꺾이는지 각도만 잰다. 그러면 밑변 하나와 양 끝 각 두 개를 아는 삼각형이 손에 들어오고, 닿을 수 없던 꼭짓점의 위치가 자동으로 떨어진다. 한 점에서는 절대 알 수 없던 것이, 떨어진 두 점에서 바라본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잡힌다. 오늘 이야기는 이 단순한 기하학이, 어떻게 산의 높이를 넘어 진실을 가려내는 방법으로까지 자라났는지에 관한 거다.

이걸 처음 글로 또렷이 적어 둔 사람은 16세기 네덜란드의 학자 헤마 프리시우스다. 그는 1533년에 낸 작은 소책자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들의 위치를 지도에 정확히 앉히려면 기준이 되는 한 변을 정해 두고 양쪽 끝에서 잰 방향이 만나는 자리를 찾으라고 적었다. 종이 위 발상으로 그쳤던 이 방법을, 한 세기 뒤 같은 네덜란드의 빌레브로르트 스넬리우스가 실제 땅 위에서 해냈다. 대략 1615년, 그는 알크마르에서 브레다까지 약 116킬로미터를 서른세 개의 삼각형 그물로 이어 가며 지구의 크기를 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삼각측량의 아버지라 부른다. 여기서 너가 붙잡아야 할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자세다. 직접 못 가는 곳은, 갈 수 있는 두 자리에서 겨눈 시선을 교차시켜 잡는다.

이 기법이 인간이 해낸 일 중 가장 거대한 자 노릇을 한 무대가 19세기 인도다. 영국은 1802년부터 인도 아대륙 전체를 삼각형 그물로 덮는 대삼각측량을 시작했고, 1823년부터 조지 에버레스트가 이어받아 남쪽 끝에서 히말라야까지 1500마일에 이르는 자오선 호를 수천 개의 삼각형으로 이어 갔다. 그 그물의 끝자락에서 사람이 발 한번 못 디딘 지구 최고봉의 높이가 잡혔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856년 측량팀이 그 봉우리를 계산해 보니 정확히 2만 9천 피트가 나왔는데, 너무 반듯한 숫자라 사람들이 대충 어림한 줄 알까 봐 일부러 2피트를 더 붙여 보고했다고 한다. 발도 안 디딘 산의 높이를, 멀찍이 떨어진 여러 지점에서 겨눈 각도들이 교차해 알아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이 산을 떠나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온 건 20세기 중반이다. 1959년 미국의 심리학자 도널드 캠벨과 도널드 피스크가, 하나의 측정 도구만으로는 그게 진짜를 재는지 그 도구의 버릇을 재는지 가릴 수 없다는 골치 아픈 문제 앞에서 이 측량 용어를 빌려 왔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잰 결과들이 한 점에서 만날 때라야 비로소 믿을 만하다는 뜻에서, 그들은 그걸 방법론적 삼각측량이라 불렀다. 몇 해 뒤 유진 웹을 비롯한 학자들이 이 생각을 한 문장으로 벼려 냈다. 어떤 주장이든, 서로 독립된 둘 이상의 측정 과정이 그것을 떠받칠 때 해석의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1970년에는 노먼 덴진이 이걸 사회 조사 전체의 원리로 끌어올렸다. 한 명의 관찰자, 하나의 이론, 하나의 자료, 하나의 방법에 매달리지 말고 여러 시선을 교차시키라는 것. 산꼭대기를 잡던 기하학이, 진실을 잡는 인식의 규칙으로 옮겨 앉은 순간이다.

여기엔 한 가지 무서운 전제가 깔려 있다. 시선이 정말로 떨어진 두 자리에서 와야 한다는 것.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본 건 두 시선이 아니라 한 시선이다. 같은 신문이 베껴 쓴 기사 세 개를 나란히 놓고 셋이 일치하니 사실이라 우기는 건, 한 지점에서 세 번 본 걸로 삼각형을 그리겠다는 소리다. 그런 삼각형은 닫히지 않는다. 출처가 같은 곳에서 흘러나왔다면 그건 교차검증이 아니라 메아리를 진실로 착각하는 일이다. 삼각측량의 힘은 시선의 개수가 아니라 시선들이 서로 얼마나 독립적인가에서 나온다.

이 원리가 디지털로 넘어간 자리에서는 짚고 갈 오해가 하나 있다. 흔히들 위성항법 GPS가 삼각측량으로 위치를 잡는다고 말하는데, 엄밀히는 틀린 말이다. GPS는 각도가 아니라 위성까지의 거리를 재서 위치를 잡는 삼변측량에 가깝다. 다만 떨어진 여러 기준점을 교차시켜 한 점을 못 박는다는 발상의 뼈대는 한 핏줄이다. 그리고 삼각측량 본연의 정신 — 독립된 여러 출처로 하나를 교차 확인한다 — 이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은 디지털 자리는 따로 있다. 자율주행차가 카메라와 레이더와 라이다라는 서로 다른 눈으로 같은 장애물을 동시에 확인하고서야 브레이크를 밟는 센서 융합, 그리고 인공지능이 내놓은 한 문장을 서로 무관한 출처들에 대조해 사실인지 가려내는 교차 검증이 그것이다. 하나의 센서, 하나의 모델은 확신에 차서 틀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기계조차 한 시선만 믿지 말라는 옛 측량가의 규칙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사실 하나를 손에 쥐었을 때, 그게 아무리 또렷하고 출처가 그럴듯해도 한 시선만으로 못 박지 마라. 너 자신에게 물어라. 이걸 본 또 하나의 눈은 어디 있는가, 그 눈은 첫 번째 눈과 정말로 떨어진 자리에 서 있는가. 전혀 다른 출처, 전혀 다른 방법에서 온 두 번째 선을 끌어와 첫 번째 선과 교차시켜라. 두 독립된 시선이 한 점에서 만나거든 그제야 거기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라. 닿을 수 없는 진실일수록, 떨어진 두 자리에서 겨눠야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