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
어떤 안건을 통과시키려 할 때, 일부러 한 사람을 세워 그 안건의 약점과 반대 논거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게 하는 검증법. 누군가 진심으로 반대해서가 아니라, 합의가 너무 빨리 굳는 것을 막고 숨은 허점을 미리 드러내려고 '반대편 역할'을 맡기는 데 핵심이 있다.
너, 어떤 자리에서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을 떠올려 봐라. 회의실이든 가족 식탁이든. 누군가 그럴듯한 안을 내놓고, 한 사람이 좋다 하고, 둘째가 동의하고, 그러면 셋째 넷째는 이미 분위기에 실려 따라간다. 반대하면 괜히 까칠한 사람이 되고 흐름을 깨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십 분 만에 만장일치가 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상하지 않나. 정말 그 안이 완벽해서 다들 찬성한 걸까, 아니면 아무도 먼저 반대하기가 싫어서 그냥 떠밀려 간 걸까.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위험한 만장일치를 막으려고 무려 사백 년 동안 한 사람을 일부러 '악역'으로 고용했던 어느 조직에 관한 거다.
장면을 옛날 로마로 옮겨 보자. 가톨릭교회가 누군가를 성인(聖人)으로 모시려 한다. 죽은 이의 삶이 거룩했고 그가 일으킨 기적이 진짜라고 공식 인정하는, 엄청나게 무거운 결정이다. 한번 성인으로 선포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떤 인물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의 좋은 면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후보를 떠받드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미담만 쌓아 올리면, 검증은 그저 칭찬 대회가 되어 버린다. 교회는 이 함정을 알았다. 그래서 묘한 직책을 하나 만들었다. 후보의 편이 아니라, 작정하고 후보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 그의 임무는 단 하나, 이 인물이 성인이 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가 일으켰다는 기적이 사실은 우연 아니었는지, 그의 삶에 감춰진 흠은 없었는지, 증언이 부풀려진 건 아닌지를 이 잡듯 뒤졌다. 사람들은 이 역할을 라틴어로 '신앙의 검증관'이라 불렀지만, 입에 더 착 붙은 별명은 따로 있었다. 악마의 변호인. 신을 위한 자리에서 일부러 악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자리가 언제 정식으로 만들어졌는지는 꽤 또렷하다. 대략 1587년, 교황 식스토 5세 때 교회 안의 공식 직책으로 세워졌다. 그 전에도 후보의 흠을 따지는 일은 있었지만, 이때 비로소 '반대를 전담하는 상설 직책'으로 못 박힌 것이다. 여기서 네가 놓치면 안 될 묘한 대목이 있다. 그 반대자는 진짜로 그 후보를 미워해서 반대한 게 아니다.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부여받은 역할로서 반대했다. 미워서가 아니라 검증을 위해 미운 척을 했다는 것 — 이게 이 사고법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무서울 만큼 효과가 있었다. 악마의 변호인이 버티고 선 사백 년 동안, 성인의 문턱은 높고도 깐깐했다. 흠 하나만 잡혀도 심사는 수십 년씩 멈췄다. 통과되는 자가 적었다는 건 실패가 아니라, 거름망이 제대로 일했다는 증거였다.
그러다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 심사 절차를 크게 손보면서 이 악역의 힘을 대폭 줄였다. 깐깐하게 물고 늘어지는 반대자 대신, 자료를 함께 모아 검토하는 협력적인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결과는 즉각 숫자로 드러났다. 반대편을 지키던 문지기가 약해지자 성인의 수가 눈에 띄게 불어났다. 누가 옳았는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보라, 일부러 세워 둔 반대자 한 명이 있고 없고가 결과를 이렇게까지 바꾼다. 그 자리의 무게가 바로 거기서 증명된다.
교회 담장 밖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더 실감 난다. 20세기 자동차 왕국 제너럴모터스를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이끈 앨프리드 슬론이라는 경영자가 있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중요한 안건을 두고 임원 회의를 하는데 모두가 단번에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슬론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가 이 결정에 완전히 합의한 것 같으니, 나는 다음 회의까지 결정을 미루자고 제안합니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반대 의견을 만들어 내고, 이 결정이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좀 이해해 보자는 겁니다. 너무 빠른 만장일치를 그는 신뢰하지 않았다. 합의가 매끄럽다는 건 충분히 두들겨 보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본 것이다. 교회가 악마의 변호인을 세운 것과 똑같은 직관이, 자동차 공장 회의실에서 다시 살아난 셈이다.
왜 이런 장치가 필요한가는 한 세대 뒤 심리학이 이름까지 붙여 설명해 줬다. 사람들이 화목한 집단을 이루면, 화목을 깨기 싫어 반대 의견을 스스로 삼켜 버리고, 그래서 빤히 보이는 위험조차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게 된다. 의심스러운 침묵이 만장일치로 둔갑하는 이 병을 두고 집단사고라 불렀다. 치료법은 단순했다. 누군가에게 공식적으로 반대편을 맡겨, 반대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자 권리가 되게 하는 것. 그러면 더는 그가 까칠한 사람이 아니라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된다. 미운 척할 면허를 한 사람에게 쥐여 주는 것, 그게 핵심이다.
오늘날 이 사고법은 컴퓨터와 디지털 세계에서 새 옷을 입고 산다. 보안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레드팀이라는 게 있다. 우리 편이면서도 일부러 적군 역할을 맡아, 우리 시스템을 진짜 해커처럼 작정하고 부수려 드는 팀이다. 약점을 적이 찾기 전에 내 편이 먼저 찾아내려는 것이니, 악마의 변호인의 정확한 디지털 후예다. 의사결정 분야에는 사전 부검이라는 기법도 자리 잡았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모여 '이 계획은 이미 처참하게 실패했다, 자 그 이유를 각자 적어 보라'고 시키는 방식이다. 성공을 가정하고 박수 칠 때는 안 보이던 구멍이, 실패를 기정사실로 깔고 반대편에서 거꾸로 들여다보는 순간 우수수 드러난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 모델을 일부러 공격해 허점을 캐내는 일도 결국 같은 핏줄이다. 다만 도구가 손에서 코드로 옮겨 가면서 한 가지가 바뀌었다. 옛날엔 악역을 한 사람에게 맡겼지만, 이제는 그 반대자의 시선을 아예 절차와 시스템 안에 못 박아 둔다. 반대를 한 개인의 용기에 기대지 않고, 누가 그 자리에 앉든 반드시 반대하게끔 구조로 박제해 둔 것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자리에서 다들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을 만나거든, 그 매끄러움을 오히려 의심해라. 그리고 누군가에게 — 그게 남이든 네 자신이든 — 분명히 면허를 줘라. 지금부터 너는 이 안을 죽이는 역할이다, 작정하고 약점만 찾아라, 라고. 미워서가 아니라 검증을 위해 미운 척을 시키는 것. 통과시키기 전에 일부러 한번 무너뜨려 보고도 살아남는 안만, 비로소 믿어라.